▲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제2브리핑룸에서 오는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 법)' 시행령안의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홍배 기자]국민권익위원회가 공직사회의 구조적 비리를 뿌리 뽑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안을 9일 입법 예고했다. 법이 제정되고 1년 2개월, 법 시행 4개월을 앞두고 나온 시행령안이다.

이에 따라 공직자 등이 앞으로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에게서 3만원 이상의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또 선물 금액은 5만원 이내로, 경조사비 상한액은 10만원 이내로 제한했다.

김영란법은 공무원, 사립대학 교수, 언론인 등이 제3자에게 고액 금품(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 초과)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직자뿐만 아니라 금품을 제공한 국민도 같이 형사처벌이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단,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의례·부조 등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금액 내에서 허용하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이날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시행령 제정안에 따르면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유치원 임직원·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인으로부터 3만원 이상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현행 공무원 행동 강령에서 규정한 상한액 3만원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시행령 제정안은 또 공무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가격을 5만원으로 제한했다. 기존 공무원 행동 강령에는 선물 비용에 대한 기준은 없었다. 경조사비 비용은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렸다.

제정안은 외부강의에 대한 상한액도 결정했다. 공직자에 대해선 작년 9월 발표한 대로 장관급은 원고료를 포함해 상한액이 시간당 40만원, 차관급은 30만원, 4급 이상은 23만원, 5급 이하는 12만원으로 정해졌다.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의 경우 민간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직급별 구분없이 시간당 100만원까지 사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권익위는 “청탁금지법의 입법취지,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로 나타난 일반 국민의 인식수준, 금품을 받은 공직자뿐만 아니라 이를 제공한 국민도 처벌받게 되는 점, 상호부조 성격의 경조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작년 7월 일반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음식물의 경우 3만원이 적절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다수였다. 선물의 경우 5만원, 경조사비는 5만원 또는 10만원 응답이 가장 많았다.

또 작년 5월 개최된 공개토론회에서는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해 일반국민으로부터 음식물과 경조사비는 각각 3만원, 5만원 이하만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선물 수수는 금지한 현행 ‘공무원 행동 강령’보다는 상향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김영란법은 지난해 3월3일 국회를 통과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같은 달 27일 공포됐다. 1년6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권익위는 김영란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5월13일~6월22일)한 뒤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확정할 계획이다.

한편,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의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시행령 제정안을 발표한 가운데 법조계는 "비현실적이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회의적 반응이 대부분이다.

변협 관계자는 "아직 법이 시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식사비 3만원 이내 등은 너무 낮은 금액"이라며 "정부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시행령 제정안 기준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금액이므로, 명절 때 선물을 주고받는 우리사회 관습을 곤란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같은 허용 기준은 농수산물축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며 "실제로 농수산물축산업 종사자들은 '명절 선물 제공이 불가능해진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정부의 시행령 기준은 이상주의적"이라며 "공직사회 청렴성을 재고하기 위한 목적은 인정되지만 다소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의 부작용을 언급했지만 여야는 일단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사건의 심리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언론사와 사립학교를 '공공기관'에 포함해 이 법을 적용하는 것이 언론·사학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를 가리는 사건의 심리를 9월 법 시행 이전에 마칠 계획이다. 헌재가 일부 조항에 위헌 판단을 하게 되면 국회 차원에서 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김영란법이 당초 취지대로 과감한 비리 척결로 공직사회를 일신하는 힘을 발휘할지, 아니면 시행도 못 하고 표류할지는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에 달려있다 하겠다.

◇ 골프장·고급 음식점·술집 영향 받을 듯

한편 김영란법에 따른 부패 감소는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고급 음식점이나 술집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골프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주말 접대 골프는 통상 1인당 대략 5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린피가 25만원을 넘고 캐디피, 카트비 등을 합치면 30만원이 초과된다. 여기에 주류와 간식·식사에 5만원, 선물까지 별도로 하면 약 10만원 정도가 든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이 동일인으로부터 한 번에 100만원, 1년에 3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형사처벌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1명으로부터 접대 골프를 5∼6번 받으면 금세 300만원이 넘어간다.

양주 1병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술집과 1인당 5만원을 넘어서는 고급 음식점에서의 접대 역시 직무 관련이 있으면 법에 저촉되게 된다.

유통업계에선 김영란법 시행이 상품권과 선물 판매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상품권이나 선물은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 수요가 몰리는데 김영란법 통과로 주요 구입처인 법인들의 수요가 감소할 수 있으며 굴비 등 명절 선물세트의 판매 단가가 낮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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