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세계 4위 조선사였던 STX조선해양이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법원이 회생가치와 청산가치를 따져본 뒤 처리 방향을 결정하겠지만 업황 개선 가능성이 낮은 점을 감안하면 청산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무엇보다 1만명 가까운 STX조선 및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STX조선의 법정관리행은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나아가 국책은행이 주도한 구조조정의 실패라는 점에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리 커졌나

2014년 하반기 시장에서는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에 대한 통합·합병 아이디어가 급부상했다. 두 회사를 통합하고 ‘몸집’을 가볍게 해 경기침체기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이었다. STX조선의 기술력과 넓은 야드(작업장)를 가진 성동조선의 강점이 더해지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하지만 논의는 진척되지 않다가 결국 백지화됐다. 합병의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STX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성동조선해양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이 합병에 따른 손실을 조금이라도 더 적게 부담하겠다고 나서면서 싸운 것이다. 정부도 두 국책은행의 갈등을 말리지 못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포기했다.

2년이 흐른 지금 두 조선사 중 STX조선해양은 끝내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됐고 성동조선은 여전히 경영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이 실패한 데는 조선업황이 부진한 영향도 있지만 위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무능과 채권단의 이기주의도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또 총선과 대선 등 ‘정치적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의 외풍이 산업계의 순조로운 구조조정을 지연시켰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증발한 6조, 누구 책임인가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 행이 유력해지면서 책임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STX조선을 살리기 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은 물론 시중은행까지 모두 5조9600억원을 투입했다.

지원 내역은 ▲산은 3조원 ▲수은 1조원 ▲무역보험공사 600억원 등이다. 농협이 1조1000억원, 하나·신한·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이 9000억원을 보탰다.

특히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인 산은과 수은, 무보의 지원액이 4조600억원에 이르는 만큼 채권단인 금융공기관과 이들을 감독하는 금융당국, 뒤에서 압력을 행사한 정치인들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채권단은 정치권의 압박에 의해 지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이들의 주장은 당시 경남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들이 국책은행 및 금융당국 등을 상대로 지원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STX조선이 2013년 자율협약을 신청했을 때 대부분이 법정관리를 주장했다"며 "정치권 압박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회생가능성이 있다면 왜 몇몇 은행들이 반대매수권을 청구하고 채권단에서 빠져나가려고 했겠느냐"며 "STX조선이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산은 전 회장이 면책권을 보장해 달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비해 조선업계에서는 산은의 구조조정이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산은 수장이 STX조선의 사업장이 있는 진해에 단 한번도 방문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됐지만 결과는 비참했다"며 "앞으로 책임문제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수 많은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지역경제가 무너지면 구조조정 자금 투입을 둘러싼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불구경하는 정부, 갈팡질팡 채권단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실패한 데는 정부의 구조조정 청사진이나 채권단 간 의사소통이 부족했던 영향이 크다. 정부는 ‘시장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내세우며 언제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고 이는 컨트롤타워 부재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단은 부실기업을 ‘살릴지, 말지’를 두고 갈팡질팡하기만 했고 구조조정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실제로 자율협약 중이던 SPP조선은 지난해 말 유조선 8척을 수주하고도 채권단 일부에서 환급보증서(RG)의 발급을 거부함에 따라 수주가 취소됐다. 뒤늦게 채권단이 2월 신규 수주 건에 대해 RG를 제공하기로 입장을 바꿨지만 이미 SPP조선은 일감 상당수를 놓친 뒤였다. 채권단 관계자는 “정상화를 위해서는 신규 수주가 필수적인데 리스크가 커질 것을 걱정한 일부 은행이 나서지 않아 애로사항이 많았다”며 “당국도 ‘관치금융’이란 비판을 우려해 개입을 꺼리다 보니 채권은행 간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채권단의 보신주의도 구조조정을 늦추는 주된 원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홍기택 전 산은 회장도 그랬지만 시중은행장들도 법정관리를 결정지었을 때 감당해야 할 수조 원의 부실을 두려워한다”며 “그래서 ‘내 임기만은 피하자’며 해당 기업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고 전했다.

성동조선 역시 채권단의 안이함이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친 케이스다. 2010년 4월 자율협약을 개시한 성동조선에는 지금까지 총 2조5000억 원의 채권단 자금이 수혈됐다. 상당수 민간은행 등이 “성동조선은 이미 망가진 기업”이라며 채권단에서 빠졌지만 수은은 고집스럽게 지원을 계속했고 지난해에는 2019년까지 4200억 원을 독자 지원키로 결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남창우 연구위원은 “국책은행들이 부실기업의 워크아웃 개시 시점을 지체시키고 지원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제성 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하다 보니 자산 매각 및 인력 구조조정에도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外風도 구조조정 지연시켜

정치권의 입김도 방해 요인이다. 홍기택 전 산은 회장, 이덕훈 수은 행장 등 대선 캠프 출신이 국책은행 수장이 됐지만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기에는 역량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4·13총선 등 선거철이 올 때마다 ‘속도 조절’도 이어졌다. 지난해 말 채권단이 STX조선해양에 대해 추가 지원을 결정했던 배경에도 총선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기업이 부실을 숨기지 못하도록 ‘감시견(watchdog)’ 역할을 해야 할 회계법인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통상 회계법인은 구조조정에 직면한 기업의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를 종합 분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처럼 수익을 부풀리고 경영 환경을 낙관적으로 예상하는 사례가 많았다. 국내 회계법인 고위 임원은 “용역을 받는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기업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도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회계법인에 큰 역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기업이 부실을 숨기기로 작정하고 회계 부정을 저지르면 수사나 조사 기능이 없는 회계법인은 현실적으로 이를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은 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며 “부실 회계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정확한 회계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한 기업 구조조정 타이밍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치가 횡행하고 투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길 기대할 수는 없다. 오죽하면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이 “원칙도, 사령탑도 없는 깜깜이 구조조정”이라고 쓴소리를 하겠는가. 실제 정부는 조선·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책은행 자본확충’에만 관심을 둘 뿐 책임을 묻거나,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구조조정 방식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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