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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전설’ 이중섭을 만나다
김승혜 기자  |  s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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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03  21: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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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억6000만원짜리 황소
[김승혜 기자]"1950년대 전후의 명동 밤거리에서 딱 한 번 대향(大鄕) 이중섭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얼굴 한쪽에 흙 잔뜩 묻히고 어슬렁거리는 훤칠한 키의 예술가였습니다. 그 사이 이중섭이 국민적인 애호의 대상이 되어온 것과 달리 나에게는 하나의 익명이 되었습니다. 이번 대기획전으로 현대 한국 미술의 한 절정을 증거하는 곳에서 이중섭의 천진난만한 고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인 고은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이중섭을 기렸다.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 개막식이 2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다.

이중섭은 명실상부한 ‘국민작가’로 1970년대 이후 가히 ‘붐’이라고 할 만큼 폭발적인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중섭에 대한 가치평가는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그의 작품이 수차례 시장거래를 반복하며 상당부분 흩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중섭의 작품 값을 천문학적으로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일반인들이나 연구자들이 원작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그만큼 제한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산발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이중섭의 원작을 최대한 한 자리에 모아 대중들이 감상하고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이번 전시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 이중섭, 세 사람, 1945년경, 종이에 연필,
◇황소·은지화등 원작 한자리 모아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 서귀포 이중섭미술관과 조선일보사가 3일부터 넉 달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여는 이번 전시에는 '황소', '길 떠나는 가족' 등 이중섭의 대표 유화 작품과 은지화, 드로잉, 엽서, 편지 등 총 200여점이 전시됐다.

'소'그림하면 이중섭(1916~56)이다. 특히 '황소'는 이중섭의 주가를 올려놓은 작품. 2010년 6월 서울옥션 117회 경매에서 35억6000만원에 낙찰되면서 화제였다. 이중섭의 최고가 기록이다.

'황소'는 세로 35.3㎝, 가로 51.3 ㎝ 크기로 이중섭 '소 작품' 중 대형 작품이다. 홍익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흰소 작품(세로30cm, 가로 41.7cm)보다 큰 작품이다. 1953년 '통영에서 맨 먼저 그린 소'로 기록되어 있다.

'이중섭의 소' 10마리가 전시장으로 나온다. 홍대박물관 소장 '흰소'(1955), 빨간 배경으로 소의 머리부분을 집중해 그린 황소(1953~1954·서울미술관 소장)등 격동적인 붓질이 압권인 소들의 행진이다.

이중섭은 서양회화의 기초 위에 동양의 미학을 실현시킨 화가였다. 해부학적 이해와 엄밀한 데생 실력을 연마한 기초 위에 한국 고유의 미의식을 담아내고자 했다. 서예와 같은 일필휘지의 필력이 유화의 붓 자국에 드러나고, 분청사기와 같은 겹쳐진 재료의 은은한 효과가 작품의 표면에 묻어나온다. 순수한 어린이와 같은 장난스러운 ‘해학’이 있는가 하면, 자유롭고 유려한 선조(線彫)의 아름다움에서 일종의 ‘격조’가 풍겨 나온다.

이중섭의 은지화 3점을 소장하고 있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하여 총 60개 소장처로부터 200여점의 작품, 100여점의 자료를 대여했다.

'황소'등 소그림 10여점과, '욕지도 풍경', '길 떠나는 가족' 등 이중섭의 대표적인 유화 60여점 외에 드로잉, 은지화, 엽서화, 편지화, 유품 및 자료 등이 총망라됐다.

전시는 식민, 해방, 전쟁을 관통하며 정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중섭이 거쳐 간 ‘시공간’을 따라 전개된다.

상대적으로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부산·제주도 피란시기’의 작품이 첫 전시실에 전시되며, 전쟁 직후 최고 절정기 작품을 남겼던 ‘통영 시대’, 가족을 그리워하며 수많은 편지와 가족그림을 남긴 ‘서울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적 궁핍과 절망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에 휩싸였던 ‘대구와 서울(정릉) 시대’의 작품들이 순차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4개의 전시장에 소개한다.

   
▲ 이중섭, <돌아오지 않는 강>, 1956, 종이에 유채, 18.8 x 14.6, 임옥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에 출품된 작품과 자료를 소장가의 허락을 받아서 기가픽셀 촬영, 디지털스캔 작업 등을 하여, 전시장에서 영상으로도 감상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또한 각종 사진과 영상 데이터를 영구 기록, 보존하여 향후 이중섭 연구의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다.

생전 ‘정직한 화공’, ‘민족의 화가’가 되고자 했던 이중섭의 신념을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전시다. 이중섭은 1945년 일본 문화학원 후배였던 야마모토 마사코와의 결혼, 1950년 한국전쟁 중 부산과 제주도로 피란, 1952년 가족과 이별했다. 이후 1956년 만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통영, 진주, 서울, 대구, 왜관 등지를 전전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말년에는 가족과 재회할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적인 질환을 앓으며,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많은 이중섭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건 이중섭 30주기전이 열린 1986년 이후 꼭 30년 만이다.

개막식에 참석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국공립미술관 최초로 이중섭의 보석 같은 작품들이 한데 모였다는 것 자체가 뜻깊은 사건"이라며 "그동안 노을에서 울부짖는 '황소'만 봤는데 이번엔 눈에 힘 있고 활기찬 황소가 처음 나오는 등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귀한 작품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이중섭미술상' 1회 수상자인 황용엽 화백은 전시장을 둘러보며 "그림 모두가 절실함이 담긴 일기 같다"며 "캔버스를 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어 큰 그림이 없다는 게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고 했다. 스페인 출신의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중섭전을 한국 작가의 목소리를 주인공으로 삼아 세계 미술 역사의 새 장을 여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미술 애호가로 소문난 배우 이정재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중섭이 지인과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개막식에서는 하루라도 일찍 이중섭을 만나려고 달려온 일반 관람객 400여명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개막식이 열린 미술관 2층 로비가 꽉 차자 일부 관객은 3층 난간에 기대서 개막식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이중섭의 작품을 보기 위해 달려왔다는 여환숙(66)씨는 "그림 한 점 한 점마다 이중섭의 내면세계가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을 저민다"고 했다.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피란 가 1년을 보냈던 서귀포에선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를 비롯해 100여명이 단체로 참석하기도 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이왈종 화백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최고의 전시"라며 "이중섭의 작품 세계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전시 구성을 훌륭히 한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현을생 서귀포시장,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 이면영 홍익대 이사장, 장재영 신세계 사장,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 홍라영 삼성미술관리움 부관장, 김영순 부산시립미술관장, 오광수 뮤지엄산 관장(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미술평론가 서성록·최석태, 김봉태 화백, 오숙환 이화여대 교수,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 등 500여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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