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보 기자]"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

20세기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꼽히는 전 프로복서 무하마드 알리(미국)가 4일(한국시간) 향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AP,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알리의 대변인 밥 거닐은 3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알리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알리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자택에서 지내다가 최근 병원으로 긴급 호송됐다.

은퇴 후 수십 년간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던 알리는 최근 폐렴과 호흡기 질환까지 겹치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에서 생명보조장치에 의존하던 알리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았다.

이날 알리에 버금가는 복싱 선수로 평가받는 마이크 타이슨(미국)은 자신의 트위터에 "신께서 챔피언을 데리러 오셨다"고 적었다.

아시아의 복싱 영웅인 매니 파퀴아오(필리핀)는 "우리는 오늘 위대한 거인을 잃었다. 복싱은 알리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 혜택은 알리의 인간성으로부터 받은 혜택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말로 고인을 추모했다.

미국프로농구(NBA) 올랜도 매직은 구단 공식 트위터에 "알리는 스포츠와 세계를 초월하는 아이콘"이라고 업적을 기렸고 지난 시즌 포뮬러원(F1) 챔피언인 루이스 해밀턴(영국)은 "힘든 시간을 보낼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

이밖에도 NBA 스타 크리스 폴과 레지 밀러(이상 미국) 등도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다.

◇차별과 싸운 알리... 강물에 던진 ‘금메달’

19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리스트인 알리는 프로로 전향해 숱한 명승부를 연출해내며 세계 최고의 복서로 우뚝 섰다. 통산 전적은 56승5패다.

1942년 켄터키 주 루이빌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알리는 본명이 캐시어스 클레이로, 성인이 된 후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꿨다. 아마추어 복서로 데뷔해 180승을 거둔 알리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고향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 손님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식사를 거부당하며 큰 충격을 받은 알리는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리고 프로 선수로 전향을 선언했다.

데뷔 15연승을 달린 뒤 16번째 경기로 치른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아치 무어와의 대결에서는 4라운드 만에 TKO를 거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경기 전 상대의 KO라운드를 예고하는 쇼맨십과 철저한 자기 관리는 미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1964년 세계 헤비급 통합 챔피언이던 소니 리스턴에게 도전한 알리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TKO 승리를 거두며 새로운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당시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라는 호언장담은 복싱 역사상 최고의 명언으로 꼽힌다.

1967년 3월 조라 폴리전까지 29연승으로 승승장구하던 알리에게 때 아닌 위기가 찾아왔다. 종교적 신념과 미국 내 인종차별을 이유로 징집 요구를 거부한 뒤 모든 것을 잃었다. 징역형을 받아 선수자격 박탈은 물론 챔피언 벨트까지도 빼앗겼다.

물론 여기서 알리의 복싱 인생이 끝났다면 세기의 선수라는 칭호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알리는 1974년 조지 포먼을 누르고 WBC, WBA 헤비급 타이틀을 되찾은데 이어 33세이던 이듬해에는 프레이저에게 14라운드 TKO승으로 설욕에 성공했다.

알리는 1981년 12월 트레버 버빅전 판정패를 끝으로 프로 통산 56승5패의 성적을 남긴 채 정들었던 링과 작별을 고했다.

선수 시절 링 위에서 수많은 혈투를 벌였던 알리에게 은퇴 후 파킨슨병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하지만 알리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서른 후반으로 접어들며 전성기가 지난 알리는 1980년 래리 홈즈와의 경기에서 패하며 챔피언 타이틀을 잃었고, 이듬해 트레버 버빅과의 경기에서 패한 것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링을 떠났다.

 
◇링 밖에서 더 위대했던 알리

알리의 인생은 링 밖에서도 파란만장했다. 흑인에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백인 사회의 편견과 비난에 맞서 싸워야 했고, 베트남전 징집을 '양심적 거부'하며 선수 자격을 정지당하고 온갖 살해 협박에도 시달렸다.

복서 생활의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알리는 거동이 불편함에도 흑인 민권운동과 파킨슨병 퇴치를 위한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많은 존경과 박수를 받았다. 또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에서 마지막 성화봉송 주자로 나서 떨리는 손으로 성화에 불을 붙여 큰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또한 2003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시구자로 나서고, 2005년에는 백악관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는 등 대중 앞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으나 최근 수년간 건강 악화로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알리는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 금지 공약을 펼치자 "무슬림은 자신의 개인적 의제를 위해 이슬람을 이용하려는 이들과 강력히 맞서야 한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알리와 최고의 명승부를 펼쳤던 포먼은 "나의 큰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그가 없는 세상에 내가 남아있다는 것이 괴롭다"라고 애도했다. 알리의 유족은 고향 루이빌에서 장례식을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