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의역 추모현장, 지나가거나 멈춰서거나
[김홍배 기자]구의역 스크린도어(승강장 안전문) 사망 사고를 계기로 서울메트로와 용역업체 간 비리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직 직원의 채용을 보장하도록 한 서울메트로의 위탁사업 입찰 조건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4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희생자가 소속된 용역업체 은성PSD가 2011년 서울메트로와 맺은 ‘외부위탁 협약서’의 위법 여부를 살펴보는 중이다.

해당 협약서에는 서울메트로의 전출 직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해 우선 배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부대약정서’에는 서울메트로 출신 분사 직원에게 퇴직 전 임금의 60∼80%를 서울메트로 잔여 정년에 따라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메피아(메트로+마피아)’ 논란이 제기됐다.

단순히 특정 한 원청업체(서울메트로)와 하청업체(은성PSD) 사이의 오랜 관행과 거래로 치부하기보다는 사회에 만연한 각종 비리를 모아놓은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사회 전체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메피아, 낙하산…서울메트로는 甲?

서울메트로와 은성PSD의 스크린도어 정비·관리 용역계약 이면에는 이른바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가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경영효율화의 일환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수많은 명예퇴직자들을 용역업체로 떠넘겼다.

서울메트로는 은성PSD측에 일감을 주는 전제조건으로 전적자(서울메트로 출신 퇴직자)를 정규직으로 우선 채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른바 조건부 민간 위탁으로 은성PSD 설립초기 직원 125명중 90명(72%)이 서울메트로 출신이었다. 또 퇴직전 임금의 60∼80%를 서울메트로 잔여 정년에 따라 지급하고 복리후생은 서울메트로와 동일한 수준의 보장을 요구했다.

서울메트로 출신 퇴직자들이 '낙하산'처럼 용역업체로 옮겨갔지만 업무의 질이나 양은 은성PSD의 '계약직'보다도 덜했다.

구의역 사고로 목숨을 잃은 정비계약직 김모(19)씨가 끼니를 컵라면으로 해결하고 그나마 한 시간 내 출동해야하는 내부 규정상 식사시간도 거를 만큼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월급은 144만원에 불과했던 것과 달리, 대다수가 정비 업무와 무관한 직종 출신의 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은 관리업무, 비상대기, 육안검수 등과 같은 단순한 일을 하는데도 평균 연봉 5100만원을 받았다.

업무의 질이나 양은 덜한데도 서울메트로 출신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을 보장받는 것은 물론 높은 수준의 임금과 복리후생을 누린 것이다.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의 특징이다.

◇'乙' 쥐어짜는 불합리한 하도급 계약

구의역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건설업계에서만 자주 지적돼온 불합리한 하도급 계약 관행도 드러났다.

국내에서 불합리한 하도급 거래는 주로 건설업계에서 많이 지적받아온 문제다. 하도급 공사업체들이 계약을 쉽게 따내는 대신 원청업체에 공사대금의 일부를 돌려주는 관행이 팽배해있다.

서울메트로는 이와 다른 방식으로 '갑질'을 했다. 은성PSD와 계약을 맺으면서 모든 사고의 책임을 이른바 '을(乙)'에 전가시켰다.

서울메트로의 과업지시서 제7조는 '계약 상대자가 계약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아 승강장 안전문의 고장·사고 등이 발생한 경우 원상복구 및 손해발생 등에 대한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제14조는 스크린도어 보수작업중 발생한 모든 고장·사고와 그로 인한 피해, 원인 규명 책임을 계약상대자가 지게끔 했다.

이처럼 '을'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항임에도 은성PSD가 수용한 데에는 공개입찰·공고를 거치지 않는 수의계약 방식으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일감을 따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 입장에서는 은성PSD에 책임을 전가한 계약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을 면하고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

◇안전불감증 '여전'

지난달 28일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는 지난해 8월 강남역에서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발생한 지 1년도 안돼 일어났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강남역 사고 이후 3개월에 걸친 고심끝에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고 개선책을 내놓았지만 안전불감증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서울메트로는 시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사실상 손을 놓고 방관했다.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용역업체에 책임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리·감독의 부실로 이어졌다.

정비원 김씨가 구의역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를 받고 출동해 당시 보수 업무를 진행중이었던 사실을 서울메트로에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문에 김씨가 지하철에 치여 숨지는 어이없는 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강남역 사고 이후 수립한 근무수칙(2인1조)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여부를 감독하지 않거나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구의역 사고 직후에는 은성PSD 직원들의 근무기록을 2인1조로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다.

스크린도어 정비시 필요한 마스터키도 당초 역무원들이 관리할 계획이었으나 역무원들의 반대로 서울메트로가 용역업체에 넘겨준 것으로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스크린도어 고장이 잦은 것을 놓고 부실공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2013년~2015년 8월 기간 동안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스크린도어 고장 건수는 846건에 불과한 반면 서울메트로는 총 7222건으로 8.5배 더 많았다.

정수영 서울메트로 사장직무대행도 스크린도어의 부실공사 가능성을 인정했다.

정 대행은 지난 3일 서울시의회 업무보고에서 "건설할 당시부터 너무 짧은 시간에 건설하다보니 외국기술이 제대로 표준화되거나 우리기술화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설치가 되어 문제점이 많다"며 "부실시공된 걸 운영하다보니 문제가 있다. 나름대로 유지보수를 하려고 했지만 현장에선 많은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매번 지하철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세우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정작 책임을 회피하고 관리감독 소홀로 안전불감증에 빠지면서 사고는 되풀이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세월호 사고 등으로 인해 안전불감증 사회, 안전불감 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19세, 꽃다운 나이에 횡사한 것에 대해 은성PSD든 서울메트로든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여러가지 구조에 대해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분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서울시나 서울메트로, 중앙정부에서는 그동안 일이 터져서 뜨겁게 난리를 치면 그때가서 하는 척하다가 시간 지나면 어물쩡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며 "그런 점은 지자체나 정치권이든 해당기관이든 제대로 반성하고 수정해야 한다. 안 그러면 국민이나 시민들의 분노는 여러가지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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