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논란의 중심축이 돼온 사외이사제도 폐해가 검찰의 KT&G 비리, 대우조선 부실경영 수사 등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오너와 경영진의 방패막이로 전락한 사외이사제도의 개선요구와 함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협력·납품업체를 상대로 한 전방위적 비리로 전·현직 사장 등 40여 명이 재판에 넘겨진 'KT&G 사태'. 산업은행 관리하에 16년간 사실상 공기업으로 연명하며 온갖 비리의 온상이 돼온 대우조선 사태 등은 부실한 공기업 지배구조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단 공기업뿐 아니라 민간기업도 후진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회사를 관리하고 지배하는 체계'를 말하는 기업지배구조는 회사의 관리·감독 체계, 투명한 이사회 결정 구조, 경영진과 주주 간의 관계 문제가 핵심이다.

이 중에서 특히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미국식 사외이사제도는 당초 공기업·금융기관 최고경영자 및 민간기업 대주주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필요성에 따라 도입됐지만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최근에는 아예 사외이사 제도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KB금융 사태' 때 KB금융의 전직 사외이사들은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당시 임영록 KB금융지주회장을 감싸기에 바빴고, 한국가스공사 사외이사들도 비리혐의를 받고 있던 장석효 사장을 비호하며 해임안을 부결시키는 등의 상식 밖의 행태를 보였다.

이는 애초에 사외이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회사와 직·간접적인 이해관계, 최대주주 등과의 특수관계, 과거 해당회사나 계열회사에 재직한 경력 등 관리 감독 역할을 하기에 부적격한 사람을 뽑는 경우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올해 4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은 12월 결산법인 237개사의 정기주주총회 안건 1675건을 분석한 결과, 211개사가 제출한 949건의 임원 선임 안건 중 244건인 25.7%에 대해 이 같은 이유로 부적격 사유를 발견해 반대 권고를 하기도 했다. 올해 주총에서 선임된 사외이사나 감사위원 4명 중 1명은 부적격하다고 본 것이다.

세부적으로 회사와 직·간접적인 특수관계가 있는 후보가 사외이사나 감사(위원)로 추천되는 경우는 107건(44%, 중복 허용)에 달했다. 이해관계가 있는 법인의 현직 임직원이 추천된 사례도 79건(32%)을 차지해 이사회 및 감사기구의 독립적 운영이 우려됐다.

신규 임기를 포함해 20년간 회사의 사외이사로 재임하는 후보가 있는 등 장기연임으로 인해 경영진과 독립성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 해당되는 사례도 60건(25%)으로 집계됐다. 이 밖에 특정 사업연도에 개최된 이사회나 이사회 내 위원회에 단 한 번도 참석한 기록이 없는 후보가 재선임 후보로 추천되는 등 충실한 이사회 활동이 가능할 지 의심되는 경우도 39건으로 집계됐다.

CGS 관계자는 "사외이사는 경영진이나 회사와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견제·감독해야할 의무를 지니고 있지만 이해관계나 장기연임 등으로 독립성에 의문이 드는 사람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주주의 독단적인 경영이나 전횡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를 그 취지에 맞게 손질했어야 할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면서 "방패막이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는 사외이사 제도를 폐기하고 집단소송 등 다른 관련 제도를 강화·정비하는 것이 기업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와야 장기적으로 기업 미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재계는 '관피아·정피아' 선호

대우조선해양의 낙하산 논란으로 재계의 이른바 '관피아·정피아' 적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자윤리법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관료 출신 낙하산'들은 곳곳에 산적해 있다.

특히 사외이사가 경영진과 최대주주로부터 독립돼 회사의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권력기관 출신들로 사외이사를 선임, 이른 바 '방패막이' 용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해 30대그룹 사외이사 중 관료 출신은 235명으로 전체의 38.6%에 달했으며, ▲법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등 4대 권력기관 출신에 집중됐다.

올해 역시 이 같은 현상은 되풀이 중이다.

9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10대그룹 소속 상장사의 올해 정기주총 안건을 분석한 결과, 신규 또는 재선임 예정인 사외이사 140명 중 정부 고위 관료 출신이거나 ▲국세청 ▲금감원 ▲판·검사 ▲공정위 등 권력기관 출신 인사는 전체의 43.6%인 61명이었다.

출신별로 보면 전직 장·차관 16명을 포함해 정부 고위 관료 출신이 28명이었고, 검사와 판사 출신이 17명, 국세청 출신이 7명, 금감원 출신이 6명, 공정위 출신이 3명이었다. 특히, 올해는 전직 장관출신이 8명에 달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삼성중공업),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GS건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두산인프라코어),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한화생명),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오리콤) 등이 10대그룹 계열사 신규 사외이사로 영입됐다.

판·검사 출신 중에서는 박용석 전 대검찰청 차장(롯데케미칼), 정병두 춘천지검장(LG유플러스), 노환균 전 대구고검장(현대중공업), 천성관 전 서울지검장(두산건설), 채동헌 전 춘천지법 부장판사(코스모신소재) 등이 신규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30대 그룹에서도 사외이사에 주요 권력기관 출신의 인물들이 이름을 올렸다. 동부그룹이 2명의 사외이사를 모두 관료 출신으로 뽑아 비중이 가장 높았다. 관료 출신이 5명 중 4명인 현대자동차가 80.0%로 2위, 삼성이 9명 중 7명(77.8%)으로 3위다.

롯데와 두산, 신세계는 70% 이상이 관료 출신이었다. GS, 현대중공업, CJ, 현대백화점, 동국제강도 절반인 50%의 신규 사외이사를 관료 출신으로 택했다.

기업이 의혹의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관료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데는 대 정부 및 정치권 등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편의'를 얻기위한 의도가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기업들이 뽑는 '관료' 사외이사진들이 해당 기업들의 문제점과 밀접하다고 지적했다. '관피아'로 세금 관련 문제나 분쟁 등을 막기 급급한 기업들이 전문성 이쓴 관련 분야의 관료 출신을 많이 끌어온다는 분석이다. 관료 출신인 낙하산 사외이사가 많은 기업은 자연스럽게 부실화의 우려를 떠안게 된다는 것.

사외이사진에 관료 출신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전문성이 떨어지고 경영이 투명하게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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