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작 논란 이우환 화백, '나는 피해자예요'
[김홍배 기자]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원로 중 한 명인 이우환(80) 작가가 위작(僞作) 의혹이 ‘점입가경’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우환 화백은 작품 전부가 자신이 그린 것이라고 거듭 완고하게 단언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이 작가는 경찰이 압수한 위작 13점이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한 데 더해,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경찰의 회유가 있었다는 폭탄 발언까지 한 상황이다.

위작 판정과 관련해 이우환 화백은 “경찰이 나에게 13점 가운데 4점만 위작으로 인정하라고 회유했다”고 주장한 것.

경찰이 지목한 4점은 이 화백의 대표작인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이고 위조책 현 모 씨가 직접 그렸다고 경찰에 진술한 그림들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그런 말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며 이 화백의 주장을 반박했다.

현재 이 작가는 미술계 거장으로서 자신의 '권위'와 '감각'을 주된 근거로 위작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앞서 제시된 전문가들 견해와 과학 감정, 법원·검찰·경찰의 판단 모두와 배치된다.

무엇보다 범인이 "내가 이우환 작가 그림을 위조했다"고 옥살이를 각오하며 자백까지 한 마당에 정작 작가가 위조 가능성이 '0'이라고 고집하고 있어 경찰로서는 골머리를 썩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작가 자신이 “내가 그린 그림”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경찰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이우환 "작품 진위는 작가가 안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자신만의 호흡과 색채'를 주된 근거로 다른 화가가 흉내 낼 수 없는 진품임을 강조하고 있다. 유명 작가 특유의 화법은 쉽게 위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작가 주장대로 작품의 진위 여부는 그것을 창조해낸 작가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점 자체를 전적으로 부인하기는 어렵다.

미술 작품의 위작 여부는 안목 감정, 과학 감정, 작가 감정 등과 사용된 재료 및 기타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특히 위작 논란이 있는 작품의 작가가 생존해 있는 경우, 당사자의 견해가 작품의 진위를 가리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이 작가 측은 이를 근거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작가 감정에 앞서 안목·과학 감정이 진행됐다는 점을 문제 삼기도 했다.

그는 그림 1점에 있는 작가 확인서에 대해서도 진품이기 때문에 자신이 내줬다고 했다. 해당 그림이 위작이라면 그는 자신의 그림을 알아보지 못 한 셈이 된다.

그는 경찰의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회유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위작 논란에 관한 입장을 밝히는 공식 석상에서 "4점만 위작으로 하라"며 경찰이 회유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작가와 약 2분의 단독 면담은 있었지만 회유 사실은 없었다고 강력 부인했다.

앞서 이 작가는 두 차례에 걸쳐 작가 감정을 위해 경찰을 찾았다. 그는 지난 6월27일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를 찾아 첫 번째 작가 감정을 했다.

이 작가는 당초 자신이 봤던 작품 가운데서는 위작이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왔었다. 1차 감정을 마친 뒤 이 작가는 "물감·기법을 신중히 봐야한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하지만 이틀 뒤 참고인 조사를 겸해 진행된 2차 감정 이후 진품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 이우환 1976년 작품 ‘선으로부터’.
◇이우환 주장, 수사 증거와 배치…경찰 "이작가 감정에 진지하게 응하지 않아"

이 작가의 주장은 그간 전문가들이 진행했던 안목 감정과 과학 기술을 통해 이뤄진 과학 감정 결과와 배치된다.

특히 법원과 검찰, 경찰은 앞서 이뤄진 감정들에 터 잡아 위조 의혹을 받고 있는 총책 등을 재판에 넘긴 상태다.

이 작가는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법원, 범죄 사실이 소명됐다고 판단해 기소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거짓 그림을 그렸다고 보고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던 경찰의 판단이 모두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앞서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5월 위조 총책으로 지목되면서 일본으로 달아났던 현모(66)씨를 붙잡아 구속하고 수사를 통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김후균)는 지난달 7일 현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사기) 및 사서명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경찰과 검찰은 현씨와 관련자들의 자백, 실제 그림을 위조하는 모습을 재연했다는 점, 위작 의혹이 있는 그림들에 쓰인 안료 등에 대한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현씨의 혐의가 입증된다고 봤다.

법원은 경찰과 검찰이 제시한 이 같은 혐의 사실을 토대로 현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내줬다.

현씨 측 변호인은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김동아) 심리로 열린 사서명위조 등 혐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현씨가) 작품을 위조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자신의 처벌을 감수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씨는 지난 2012년 2월부터 그해 10월까지 고양시 일산동구 한 오피스텔에서 이 작가의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 작품 3점을 모사하고 캔버스 뒷면에 이 작가 서명까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작가의 주장대로 작품이 진짜라면 현씨 측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 셈이 된다.

이 작가는 자신이 먼저 작품을 봤어야 했다면서 한국 수사기관의 횡포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견해가 다르다. 위작 의혹이 있는 그림에 대한 감정은 순서의 문제로 작가 감정을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수사기관 관계자는 "위작 사건은 다양한 각도가 있을 수 있다"며 "작가를 먼저 조사할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먼저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자백을 하더라도 보강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고 법원도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는 판단에 발부를 했을 것"이라며 "작가의 말만을 믿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지능범죄수사대는 이 작가가 작품 감정에 진지하게 응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여러 차례 "작가는 금방 보면 1분도 안 걸려서 알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는 실제 감정 과정에서도 확대경을 쓰지 않았으며 작품을 살핀 시간도 10초 내외에 그쳤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림을 보여주자마자 채 10초도 안 돼 진품이라고 했다"며 "그림 뒷면 작가 서명 있는 부분은 보지 않아도 되고 앞면만 봐도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라고 했다.

◇경찰 수사 방향 '적극적' 전환…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수도

경찰은 향후 수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앞서 경찰은 그간 미술계 거장인 이 작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되도록 조용히 수사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일각에서는 이 작가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황상 위작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서도 최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 작가를 배려했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에 동석했던 이 작가 측 대리인도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강압적인 분위기는 없었다고 했다. 대리인은 이 작가가 자신에게 회유 등의 사실을 언급한 적도 없었다면서 당황해 하기도 했다.

이 작가 대리인인 최순용 변호사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강압적이거나 그러지 않았다"며 "(참고인 조사) 이후에도 해당 내용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상의 없이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이 작가의 주장과는 별도로 현씨가 자백하고 위작 여부가 상당 부분 소명됐다고 여겨지는 작품 4점의 유통책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날 경찰은 위작 화가 이모(39)씨를 사서명위조 혐의로 붙잡았다고 밝혔다. 또 유통책인 L(68)씨를 사서명위조와 위조사서명행사, 사기 혐의로 체포했다.

위작 화가 이씨는 지난 2012년 2월부터 11월까지 앞서 재판에 넘겨진 현모(66)씨와 함께 이 작가의 그림 55점을 위조하고 이를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날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은 또 전문가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한 목소리로 진품과 다르다고 판단했던 나머지 그림 9점도 위작으로 보고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작가의 '경찰 회유' 발언과 관련, 최 변호사 측에 공식적인 항의를 했으며 법적 대응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작가는 전날 오후 7시께 출국해 중국 상하이(上海)에 머물고 있으며 2~3일 뒤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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