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이미영 기자]그동안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김영란법은 당초 예정대로 오는 9월 28일부터 본격 시행될 전망이다.

헌재는 2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 대심판정에서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기자협회 등이 제기한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사건에서 언론인 및 사립학교 관계자를 '공직자 등'에 포함한 조항에 대해 재판관 7(합헌)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또 언론인 등이 받을 수 있는 금품 가액 범위를 대통령령에 위임한 조항에 대해서는 5대 4, 외부강의 등의 사례금에 관한 규정은 8대 1로 의견이 나뉘었다.

공직자 등의 배우자가 직무와 관련해 금품 등을 받은 사실을 안 경우 이를 신고하도록 의무를 부과한 조항 및 이를 어길 경우 제재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5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다만 한국기자협회의 청구는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김영란법 조항은 언론인 등 자연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기자협회는 심판대상 조항으로 인해 기본권을 직접 침해당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제정안을 발표하고 1년여만에 국회에 제출했지만, 위헌 논란 등으로 몇차례 처리가 불발된 바 있다.

핵심 쟁점인 ▲언론인·사립학교 임직원을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한지 ▲공직자 등의 배우자가 금품수수 사실 등을 알게 될 경우 신고를 의무화한 것이 과잉규제인지 ▲부정청탁의 개념이 불명확하게 규정돼 있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는지 ▲3·5·10 만원으로 정한 금품이나 경조사비 등 액수를 대통령령에 허용할 수 있는지 등을 놓고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대한변협 등은 지난해 3월 5일 "언론인을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에 포함한 것은 헌법 제21조 언론의 자유와 헌법 제11조 제1항 평등권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언론인과 사립학교·유치원 관계자 등이 추가로 같은 소송을 제기한 바 있어 헌재는 총 4건의 헌법소원사건을 병합해 위헌 여부를 심리했다.

한편 국회의원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들도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지만 일부 처벌 조항에서 국회의원이 예외로 적용돼 논란이 예상된다.

부정 청탁을 금지하는 김영란법 5조에서는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들이 공익(公益)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개선, 정책·사업·제도·운영 개선을 제안·건의하는 행위’에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김영란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리하기 위해 공개변론을 열기도 했다.

◆소비경제, 격랑 속으로…향후 파장은?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앞으로 국내 소비 경제에 엄청난 변화가 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마련된 김영란법이지만 당장 법이 시행되는 9월28일부터 소비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위스키 등 고가의 술을 취급하는 주류업계와 골프업계, 외식업계 등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우생산농가 등도 피해를 비껴갈 수는 없을 전망이다.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들은 공무원과 언론사, 사립학교, 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과 이들의 배우자로, 이해관계자가 4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법이 시행되는 9월28일부터 100만원을 넘는 금품등이나 향응을 받으면 처벌을 받는다. 3만원 이상의 식사 접대와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도 받을 수 없다.

금전 뿐만 아니라 물품, 숙박권, 회원권, 입장권, 할인권, 초대권, 관람권 제공, 음식물, 주류, 골프 등의 접대, 교통, 숙박 등 편의제공이 모두 규제 대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6월 발표한 '김영란법의 경제적 손실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법 시행으로 인한 소비위축 효과는 1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산업별로는 음식업에서 8조5000억원, 골프장에서 1조1000억원, 선물에서 1조9700억원의 소비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식품외식업계, 유통업계, 골프업계 등은 김영란법으로 인해 매출이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주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위스키 등의 매출 타격이 우려된다"며 "가뜩이나 경기침체 때문에 힘든 상황이라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외식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광화문이나 여의도 등에 자리한 한정식집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메뉴가 3~5만원선인데다 술 등을 겸할 경우 3만원 이내로 가격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법 시행에 맞춰 3만원짜리 세트메뉴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어떻게 대응하든 매출에 심각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골프업계 역시 내수경기 침체 등으로 도산 위기에 놓인 골프장이 많은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줄도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주말 접대골프가 사라지면서 매출이 떨어지고 골프장 회원권 가격도 급락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골프접대는 주말 골프장 고객의 10~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이 감소해 골프장이 도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 대규모 입회금 반환 움직임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다만 단기적 소비위축을 이겨내고 사회가 투명해지면 장기적으로 경제에 긍적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기업이 접대에 사용했던 예산을 연구개발 등 다른 방향으로 사용하고, 부정청탁 없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해지면 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통업계 "매출 급감 불가피…적응할 수밖에"

대부분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이날 "김영란법의 좋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농축산 농가들의 피해와 함께 내수경기 침체 중인 업계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면서 헌재의 결정에 아쉬움을 표현했다.

대형마트보다는 백화점 측이 매출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컸다. 명절 백화점 선물 중 정육·갈비가 제일 많은 매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2등이 홍삼 등 건강식품, 이어 굴비, 청과 순인데 '김영란법'이 시행됨에 따라 품목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영란법 시행 이전인 이번 추석선물세트 예약 판매에서부터 상당한 변화가 감지된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올 추석에 판매할 5만원 미만의 선물세트 물량을 각각 최대 20%와 30%가량 확대할 계획이다. 신세계백화점도 5만원 미만 선물세트를 30여종 더 늘렸다. 올 추석에 5만원 미만 선물 판매 추이를 바탕으로 향후 김영란법에 대한 대응 방향을 정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실속형 선물세트를 늘려 불황 속에 선택의 폭을 늘렸다"면서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5만원 이상 세트를 판매할 수 있는 마지막 명절이자 5만원 이하 선물세트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시기로 매출 활성화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교적 선물용 제품 가격이 낮은 편인 대형마트 측에선 다소 의견이 갈렸다. 한 마트 관계자는 "가뜩이나 내수경기가 침체 중인데 농축산 농가 피해와 함께 매출 감소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마트에서는 고가의 선물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매출 감소 등 김영란법으로 인한 큰 영향은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한국유통학회 사무총장 정승연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부 사람들이 김영란 법으로 인해 소비억제 등 부정적인 면을 많이 언급하는 데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신소비를 창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번 기회에 새 상품 서비스를 개발해서 기회를 제공하는 유통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유통의 본질은 변화와 적응이기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에 충분히 적응해 나갈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뜨거운 감자' 김영란법 등장부터 '합헌'까지

지난 2012년 8월 당시 김영란(60·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른바 김영란법)' 제정안을 내놓자 세상이 들썩였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청렴성을 강조하고자 법이 마련됐지만, 일부 조항에서 위헌 가능성이 제기되는가 하면 법 적용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은 포함시키면서 국회의원을 뺀 것을 놓고 거센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헌재가 28일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이 같은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1년 '벤츠여검사' 사건이 계기가 됐다. 여 검사가 수사 의뢰와 함께 벤츠 차량과 고가의 명품을 받았지만 법원은 이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했다. 그러자 권익위가 나서 현행법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김영란법을 만든 것이다.

권익위는 지난 2012년 8월 형사처벌 조항을 포함시키는 등 처벌을 대폭 강화한 김영란법을 입법예고했으나 당시 법무부 등 부처 간 이견으로 진통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3년 7월 국무회의 통과 후 국회에 제출됐으나 여야가 법 조항 등에 대해 서로 이견을 드러내며 갈등을 빚었다.

이듬해인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로 인해 '관피아'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국회 정무위원회는 김영란법 국회 제출 9개월 만에 법안 심의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에 대해 위헌소지 논란이 일었다.

결국 그 해 5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무산됐고, 같은 해 12월 정기국회에서도 '세월호 패키지 3법(김영란법·유병언법·정부조직법)' 처리에서 김영란법은 제외됐다.

지난해 1월 정무위가 다시 법안처리에 나섰고, 제재 대상에 언론사와 사립학교를 포함해 논란이 더욱 가중됐다. '공무원 등 공공기관 종사자'에 포함되지 않는 직군까지 무리하게 포함해 적용대상이 대폭 확대됐다는 지적에서다.

이후 정무위는 김영란법을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통과시켰고, 여야는 지난해 3월 밤샘토론 끝에 '적용대상에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 및 임직원을 포함한다'고 의견을 모으고 해당 내용을 추가한 최종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제외되고, 부정청탁 금지 조항에서 선출직 공무원에게 예외를 인정하면서 국회의원이 제외될 여지가 생기는 등 '반쪽'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김영란 전 위원장 본인도 지난 3월 기자회견에서 "(김영란법이) 원안보다 일부 후퇴한 부분이 아쉽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와 한국기자협회, 사립학교 교직원 등은 국회 통과 이틀 만에 헌법소원심판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이 법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심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공개변론을 열고 ▲언론인을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언론의 자유와 평등권 등을 침해하는지 ▲민간영역 중 언론과 교육 분야만을 김영란법 적용대상으로 규정한 것이 차별인지 ▲부정청탁 금지를 규정한 법 조항이 명확한지 ▲배우자에 대한 신고의무를 부과한 것이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지 등을 주요 쟁점으로 다루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3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 참석해 "(김영란법)시행 전 결론을 내리기 위해 본격적인 심리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법조계 등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올 9월28일 이전인 7월이나 8월에 헌재의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위헌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는 합헌보다도 결정이 더 늦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헌재는 이날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법조계 한 인사는 "헌법에 위배되는 부분이 다소간 있다고 하더라도 방향이 맞는 이상 합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이해된다"며 "하지만 선출직 공무원을 공직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일부 조항의 경우 과잉금지원칙 위배 등 위헌 논란이 앞으로도 계속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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