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보 기자]한양도성은 분지 지형이다. 성곽은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 등 4개 산의 능선을 연결했다. 이런 산에서 한양도성 안으로 흘러내린 물은 한곳으로 모이는데 그것이 바로 청계천이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

길이 10.84km, 유역면적 59.83㎢이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 청계천은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물난리를 일으켰고, 평시에는 오수가 괴어 매우 불결하였는데, 제3대 태종이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벌여 처음으로 치수사업을 시작하였다.

그후 영조 때에는 준설·양안석축(兩岸石築)·유로변경 등 본격적인 개천사업을 시행하였다. 이 공사로서 내의 흐름이 비로소 직선화하였다.

순조·고종 때에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는데 이 개천에 놓인 다리는 수표교(水標橋)·오간수교(五間水橋)·광교(廣橋)·영미교(永尾橋)·관수교(觀水橋) 등 모두 24개가 있었다. 국권피탈 후 일제강점기 초(이때에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는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이루어졌다.

8·15광복 후에도 청계천의 유지관리에 힘써 왔고, 1958년 6월부터 복개공사에 착수, 1960년 4월에 1단계로 광교∼주교(舟橋) 1∼4가 간을 완공하여 너비 50m의 간선도로가 1977년 완료됐다.

거꾸로 2005년 원래 하천으로 복원이 이뤄졌지만 전체의 절반에 머물렀다. 광화문광장에서 북악산까지의 청계천은 여전히 땅속에 잠들어 있다는 얘기다.

본지에서 1920년대의 청계천 모습을 소개함으로써 역사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 청계천에서 빨래하며 어린이들은 멱 감던 시절의 모습
▲ 청계천 곁으로 뻗어 있던 길
▲ 청계천 변에서 소들을 쉬게하며 물을 먹이는 장면
▲ 청계천 변의 만물 상
▲ 청계천의 수표교 다리 옆에 제창국이 보인다
▲ 수표교 다리 근처의 모습
▲ 다리가 없는 징검다리로 청계천을 건너는 여인의 모습
▲ 청계천 변의 지게꾼과 장죽으로 연초를 피우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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