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이러한 기적은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예기입니다. 현실에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디 Sim****의 한 누리꾼은 “아마도 펜싱 역사에 이런 역전은 없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바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에 첫 번째 금메달이자 역전드라마를 쓴 주인공은 남자 펜싱대표팀의 '막내' 박상영(21·한국체대)이었다.

박상영은 10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베테랑 게저 임레(42·헝가리)에 15-14로 역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남자 펜싱대표팀을 통틀어 가장 나이가 어린 박상영은 자신의 첫 번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확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 2개, 은 1개, 동 3개 등 6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강국의 위치에 올라선 한국 펜싱은 박상영의 금메달로 금맥을 이을 수 있게 됐다.

한국 남자 펜싱이 플뢰레, 사브르, 에페를 통틀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플뢰레의 김영호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박상영이 처음이다. 이전까지 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이상기, 2012년 런던올림픽의 정진선이 동메달을 딴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이 금메달을 딴 것은 김영호와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 사브르 개인전의 김지연,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 이어 역대 4번째다.

국제펜싱연맹(FIE) 세계랭킹 21위인 박상영에게 메달을 기대하는 이는 적었지만, 박상영은 세계 강호들을 잇따라 격파하면서 결승까지 올랐다.

32강전에서 자신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러시아의 파벨 수코프(세계랭킹 19위)를 15-11로 무찌른 박상영은 16강에서 세계랭킹 2위인 엔리코 가로조(이탈리아)를 15-12로 꺾고 8강에 올랐다.

박상영이 8강과 준결승에서 각각 15-4, 15-9로 꺾은 맥스 하인저와 벤자민 스테펜(이상 스위스)도 모두 세계랭킹이 10위, 13위로 박상영보다 높다.

결승 상대인 임레는 40세가 넘는 베테랑일 뿐 아니라 세계랭킹도 3위로 높았다.

임레보다 21살 어린 박상영은 임레의 노련함에 고전하는 듯 했지만, 대역전극을 일구면서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1피리어드에서 리드를 내준 박상영은 1점차로 끌려가며 좀처럼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1피리어드가 1분여 남았을 때 동점을 만들기는 했지만, 이후 연이어 임레의 득점을 허용해 6-8로 뒤진채 1피리어드를 마쳤다.

2피리어드 시작 직후 내리 득점에 성공하면서 9-9로 동점을 만들었던 박상영은 노련하게 박상영의 공격을 피하면서 공격하는 임레에게 연이어 4점을 내주고 9-13까지 뒤졌다.

박상영은 3피리어드 1분여가 흐를 때까지 좀처럼 전세를 뒤집지 못했다. 임레에게 허리 공격을 당하면서 10-14 리드를 내줘 패색이 짙었다.

한 점만 더 허용하면 패배하는 상황.

박상영은 임레의 공격을 피하면서 역습에 성공, 순식간에 13-14로 턱밑가지 따라붙었다. 임레의 공격을 피하면서 왼 어깨 뒤쪽과 허리, 하체를 공격해 득점을 올렸다.

경기 종료 1분41초를 남기고 동점을 만든 박상영은 공격해 들어오는 임레를 피해 임레의 왼 어깨를 노려 금메달을 확정하는 득점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박상영은 금메달을 확정한 후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피스트 위에서 포효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한편 이날 시민들은 경기를 '기적'이라고 지칭했다. 이들은 결과를 놀라워하면서도 감동과 기쁨을 느꼈다고 반응했다.

'삼***'는 가명을 쓰는 누리꾼은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우연히 준결승부터 알람 맞추고 봤는데 정말 기적"이라며 박 선수의 금메달 달성을 기뻐했다.

네이버 아이디 'fr*******'는 "지금 보면서도 마음이 진정이 안 된다"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누리꾼 '건**'는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 남을 기적의 역전승"이라고 경기를 평하기도 했다.

트위터 아이디 'M**********'은 "상대가 1점만 따면 우승하는 상황에서 누구도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걸 해냈다"며 "이번 에페 경기가 올해 올림픽 경기 중 최고일 것"이라고 했다.

트위터 아이디 's******'도 "4점 차이로 벌어졌을 때만 해도 (금메달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만화도 아니고 실전에서 이런 역전을 성공시킨 박상영이 놀랍다"고 밝혔다.

▲ 금메달을 따고 환호하는 박상영
◇가난과 무릎부상’ 딛고 일어선 박상영, 금메달

“올림픽에서 한번도 뛴 적이 없어서 무섭고 설레지만 그래도 목표는 금메달입니다. 못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습니다.”

10-14’를 ‘15-14’로 뒤집는 대역전극을 펼친 박상영이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남긴 당찬 포부였다.

하지만 한국 에페의 간판은 박상영이 아닌 2012년 런던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정진선(32ㆍ화성시청)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이 말을 귀담아두지 않았다. 그러나 박상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박상형은 펜싱 대표팀 막내이자 유일한 대학생이다. 한국 남자 에페 맏형 정승화(35ㆍ부산시청)와는 14세 차이다. 이날 결승에서 맞붙은 제자 임레는 박상영의 나이보다 곱절이나 많다.

경남 진주제일중학교 1학년 때 처음 검을 잡은 박상영은 곧 펜싱의 매력에 푹 빠졌다. 재능에 노력, 흥미까지 삼박자가 갖춰진 그는 금세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펜싱을 시작한 이후 2년 동안은 입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고가의 펜싱 장비를 번번히 구매하기 어려워 선배들로부터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장비를 물려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도 재능을 묻을 수는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국대회 4관왕을 시작으로 고교 시절 체전 연패와 2관왕, 세계청소년선수권 개인전 금메달 등 대회를 휩쓸다시피 했다.

박상영은 2013년 9월 전북 남원에서 치러진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해 최연소 국가대표에 뽑혔다. 선발전에서 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자 에페 국내 최강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정진선을 상대로도 승리했다. 그리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에페 남자 단체전 금메달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올림픽을 앞둔 지난해 3월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대에 오른 박상영은 1년 가까이 검을 잡지 못했다. 재활에 힘을 쓰는 사이에 세계랭킹은 곤두박질쳤고, 다시 피스트로 돌아왔을 때 그의 랭킹은 100위권 아래였다. 슬럼프도 찾아왔다. 경기 감각을 빨리 못 찾아 자신감을 잃었다. 박상영은 “경기 감각을 빨리 못 찾아서 긴장도 많이 했지만 주위에서 ‘자신 있게 하던 대로만 하라’고 조언해 주셔서 점점 극복해냈다”고 말했다.

박상영은 쉬는 시간도 포기하고 훈련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세계 랭킹을 21위까지 끌어올렸다. 지난 2월 캐나다 밴쿠버 국제월드컵대회에서 동메달, 4월에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답지 않은 인내와 끈기로 대역전극을 펼치며 한국 펜싱 역사상 처음으로 에페 종목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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