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환, 동메달 세리머니
[김홍배 기자]마지막에 웃겠다던 김정환(33·국민체육진흥공단)이 그 바람을 이뤘다.

김정환은 11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 3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모이타바 아베디니(32·이란)에 15-8로 완승을 거뒀다.

16강에서 소속팀 후배 구본길(27·국민체육진흥공단)을 울린 아베디니에게 화끈한 복수전을 펼친 김정환은 값진 동메달로 4년 간의 노력을 보상 받았다.

국내 남자 사브르 선수가 올림픽 개인전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정환은 "런던 대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내 실력이 괜찮은지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욕심을 버리면 메달은 분명 가까워 질 것이라고 생각해 연습 때처럼 했다. 3~4위전에서 유감없이 발휘해 동메달을 얻은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32강전 패배보다 3~4위전 패배가 더 두려웠다고 했다. "4강전 지고 3~4위전에서 패하면 도쿄올림픽까지 나갈 생각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허무함이 큰 동메달 결정전 패배는 반드시 피하고 싶었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김정환은 "아베디니에게 욕심을 부리다 월드컵에서 한번 패한 경험이 있다. 연습처럼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끝까지 믿고 뛰었다"고 말했다.

메달 획득을 알리는 마지막 스코어가 올라가는 순간. 김정환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김정환의 아버지는 2009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김정환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행 티켓을 따지 못했을 때 4년 뒤를 바라보자고 다독였던 아버지는 끝내 아들이 올림픽에 나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금 이 모습을 봤으면 나보다 더 좋아하셨을 아버지가 생각난다"는 김정환은 "경기가 끝난 뒤 하늘을 봤을 때 아버지가 나를 보고 계시다고 굳게 믿었다. 나를 위해서는 별이라도 따다줄 기세로 도와주셨던 분"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정환은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생활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최근 계획을 바꿨다.

김정환은 "올림픽 이후로는 거리와 불이 들어오는 타이밍이 달라진다. 좀 더 길어지면서 심판 판정으로 결정을 내리게 돼 우리가 불리할 것"이라면서 "아직 바뀐 룰로 해보지 않았다. 그랑프리부터 뛰어 보면서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새롭게 도입되는 사브르 룰에서 기량이 통할 수 있을 지 확인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후배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고픈 마음이 더 컸다.

김정환은 "우리는 예전에 사브르가 약한 나라였다. 지금까지 올라서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내 목표를 이뤘다고 여기서 끝내지 않고 후배들이 전통을 이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회 초반 믿었던 후배들이 고배를 마셨을 때는 베테랑인 김정환도 힘들었다. 런던 대회에서 너무 많은 메달을 딴 것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반드시 정상 궤도에 올라설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지우지 않았다. 전날 박상영(21·한국체대)의 거짓말 같은 역전승을 보면서 기대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김정환은 "런던에서 신아람의 '1초 사건'이 악착같이 뛴 계기가 됐다면 리우에서는 상영이가 금메달을 따면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마인드를 심어줬다. 나도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생각이 굳게 들었다"고 까마득한 후배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10년 넘는 대표 선수 생활로 많은 것을 포기했던 김정환은 자신을 위한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도 내비쳤다.

김정환은 "운동 때문에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어머니 모시고 여행도 한 번 못 갔다. 한국에 돌아가면 하나씩 해보겠다"면서 "연애다운 연애도 못해봤는데 리우올림픽을 준비하듯이 최선을 다해 찾아보겠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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