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경품 행사를 미끼로 입수한 고객 개인정보 2400만여건을 보험사에 팔아넘긴 홈플러스와 이 회사의 전·현직 임직원들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도 글자 크기 1㎜의 고지문이 개인정보보호법상 ‘고지(告知)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부(장일혁 부장판사)는 12일 "홈플러스 측이 법이 규정한 개인정보 이용 목적을 모두 고지했다고 보인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홈플러스는 2011년부터 1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홈페이지와 전단 등에 "홈플러스 창립 14주년 고객감사 대축제" 등을 내걸고 경품행사를 진행했다.

경품응모권 앞면에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씨로 '정보수집에 동의하지 않으면 경품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고 기재했다. 뒷면에는 1mm의 글씨 크기로 '수집한 개인정보를 보험회사의 안내를 위한 전화, 마케팅 자료로 활용된다'고 기재했다.

검찰 수사 결과, 홈플러스는 이런 방식으로 모은 개인정보 2천4백여만 건을 7개 보험회사에 팔아 231억 원을 번 것으로 드러났다.

◇논란 부른 판결…‘법리’와 ‘상식’ 사이

참여연대와 녹색소비자연대 등 13개 시민단체들은 공동성명을 내 이번 판결이 소비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의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 시민단체는 지난 1월 1심 판결이 이뤄진 직후에도 "법원이 앞장서서 소비자들의 개인정보 권리를 침해했다"고 비판하고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공유하는데 이런 판결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누리꾼들의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한 누리꾼은 "대다수 소비자들이 경품 행사에 대해 가지고 있을 통념과 상식을 고려한다면, 홈플러스는 명백히 소비자를 기만한 것"이라며 법원 판결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다른 누리꾼은 "소비자들이 개인정보가 보험사에 제공된다는 문구를 읽었다 하더라도, 이는 홈플러스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실시하는 경품의 비용을 일부 보전하기 위한 차원으로 이해했을 것"이라며 "홈플러스는 처음부터 보험회사에 판매해 돈을 벌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인 만큼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에 비춰봤을 때 거짓 수단이 동원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술한 개인정보보호법…유사 사례 이어져

법원 판결이 소비자의 보편적 인식과 어긋난 건 허술한 개인정보보호법에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이는 재판의 중대 쟁점이었던 "개인정보를 제3자에 '판매'한다는 사실도 고지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느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7조는 개인정보 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때에는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거나, △제공받는 자 △제공받는 자의 이용 목적 △항목 △제공받는 자가 개인정보를 보유하거나 이용하는 기간 △동의 거부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불이익이 있으면 그 내용을 알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판매' 여부에 대해서는 기재돼있지 않은 것이다.

법무법인 디딤돌의 심형훈 변호사는 "법 취지에 비춰봤을 때, 고지해야 할 목록에서 '판매' 여부를 일부러 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기업끼리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상황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해 누락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맹점은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롯데홈쇼핑의 고객정보 판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롯데홈쇼핑은 2009년부터 2014년 사이에 인터넷 회원으로 등록한 고객 정보 324만여 건을 3개 손해보험사에 팔아 37억여 원을 벌었다. 하지만, 방통위가 문제삼아 과징금을 부과한 건 '제3자 동의'를 하지 않은 고객 정보 3만 건을 판매한 부분에 국한됐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행법에서는 '개인 정보를 사고팔지 말라'고 규정한 조항이 없다. 이런 행위를 한 기업에 도의적 비판은 할 수 있지만, 사전에 '제3자 동의'를 받았다면 처벌할 길은 없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홍정훈 간사는 "수집한 개인정보를 본연의 업무를 위해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과 돈을 벌기 위해 '판매'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며 "판매 여부를 명확히 알리는 것은 물론, 동의할 내용 가운데 정보제공자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할 수 있거나 특이한 내용이 있다면 눈에 띄게 크게 고지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리꾼 분노 폭팔···"판사 시력은 10.0인가 봐"

포털 네이버에서 누리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경품이 목적이 아니라 돈 주고 팔 목적이었는데 당연 유죄에 사기죄까지 추가해야 한다(kcwa****)", "경품 미끼로 물건팔아 돈벌고 개인정보 팔아 돈벌고 걸려도 무죄(sky7****)", "헬조선 헬조선 거리는 건 먹고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비상식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목격되고 발생되는 이유에서다(youn****)", "참나 할 말을 없게 하네. 대놓고 사기를 쳐도 무죄라니(idor****)",

"법리란 건 상식에 기반을 둬야 하는 것 아닌가(rure****)", "개인이 했으면 유죄지만, 돈많은 대기업이니 무죄. 그게 우리나라잖아요(mact****)", "홈플러스는 개인정보를 팔고자 하니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은 경품에 참여해서 개인정보를 써주시고 경품을 받아가세요, 라고 광고를 했어야 했다. 홈플러스 사기꾼 !(park****)" 등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낸 누리꾼들이 주를 이뤘다.

또 많은 누리꾼들은 "판사 시력은 10.0인가 봐(orio****)", "이렇게 판결할 거면 향후 판사는 알파고가 하면 될 듯(kki1****)", "판사들 자질 검증이 필수인 것 같다(dlqh****)", "앞으로 우리나라 법전도 글씨당 크기를 1mm로 써서 내라(cher****)" 등 판사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한 누리꾼은 "인터넷이나 유선상으로 가입하거나 약관 동의하실 때도 제3자 혹은 자사 마케팅정보제공동의 항목은 필수가 아닙니다. 대부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데 꼭 약관동의 하실 때 전체선택하지 마시고 마케팅은 빼시고 상담사가 전화로 마케팅 관련 정보동의를 하겠냐고 물으면 단호하게 아니오 해주셔야 합니다(type****)"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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