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인천관광공사
[김승혜 기자]박근혜 대통령은 18일 오후 인천 월미공원을 방문해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주요 관광지를 둘러봤다. 지난 7월 방문한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 8월 방문한 충남 서산시 버드랜드에 이어 국내관광 활성화를 위해 18일 3번째로 찾은 관광지. 바로 인천상륙작전의 배경이 된 인천 월미도다.

비록 영화에 담긴 메시지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논란이 많지만, 650만 명이 관람을 한 이 영화의 내용은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해야 하는 역사 속 장소인 것은 분명하다.

박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이 첫발을 디딘 '그린비치', 인천상륙작전 당시 피폭에도 살아남은 '평화의 나무', 해군첩보부대의 영령을 기리는 '충혼탑' 등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날 유정복 인천시장, 현장에서 기다리던 민경욱 새누리당 의원이 박 대통령을 뒤따랐다.

특히 박 대통령은 충혼탑 묵념 뒤 유 시장과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박 대통령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됐겠느냐"고 말했고, 유 시장은 "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으면 대한민국이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월미도’

1959년 9월 15일 자정, 작전명 '크로마이트'(Chromite). 서울이 함락당하고 낙동강까지 후퇴하며 수세에 몰려있던 한국전쟁에서 드라마틱한 작전이 펼쳐졌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배경이 된 인천상륙작전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과 7만5000명의 연합군이 벌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작전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수도인 서울을 짧은 시간 안에 탈환하기 위해서는 인천에 상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 합동참모본부는 이러한 내용의 작전계획인 '크로마이트'를 8월 말 승인했다. 성공 확률은 5000:1. 조수간만의 차로 상륙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인천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만 남한을 지킬 수 있었다.

단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의 한계 속에서, 맥아더 장군이 월미도 해변 '그린비치'(Greenbeach)에 발을 내딛기까지는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미군은 민간인들이 살고 있던 월미도에 사전경고 없이 네이팜탄을 투하했고, 그 속에서 북한 인민군과 함께 10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

이런 아픔 속에서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진 월미도는 이제 '월미공원'이 됐다. 월미공원 내 '그린비치'는 매립됐고, 이제는 해변이 아닌 육지다. 그린비치에서 떨어진 해안가 중 가장 가까운 곳에 당시를 기억하는 비석만이 하나 쓸쓸히 남아 이 곳의 역사성을 말해준다. 이 비석은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인천상륙작전 참전회에서 돈을 모아 상륙 지점 3군데에 하나씩 세웠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꼭 필요했던 인민군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첩보부대 '엑스레이'(X-RAY)의 17명 대원들.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장학수 대위처럼, 수많은 한국인들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희생했다. 월미공원 내에는 이들을 기리는 비석과 조형물이 남아 그들의 희생을 기린다.

◇월미도는 '전쟁을 품은 곳'

월미도는 단순히 '인천상륙작전 승리의 배경'으로만 기억하면 안 되는 곳이다. 당시 월미도 어촌마을에 살던 80여 가구의 주민 100여 명이 미 공군 폭격기가 투하한 네이팜탄으로 인해 희생됐기 때문. 이때 고향을 떠나 피난을 간 원주민들은, 전쟁이 끝나고 미군과 한국군이 월미도를 군사시설구역으로 사용하며 민간인을 통제해 반세기 동안 한 번도 가볼 수 없었다.

2001년 인천시가 국방부로부터 월미도를 인수하면서 귀향을 희망한 원주민들은 1인 시위를 이어가며 귀향을 희망했다. 그러나 시가 끝내 800억 원을 들여 월미공원으로 재구성하면서 그들의 열망은 좌절됐다.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지켜내고 한국전쟁에서 지금의 남한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누군가에겐 승리가 아닌 죽음과 실향의 역사였던 것.

박 대통령이 오른 월미공원 내 전망대는 인천항, 팔미도 등대, 송도신도시, 인천대교 등 전쟁의 상흔을 딛고 세워진 지금의 인천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꾸며져있다. '월미 평화의 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6종 7그루의 나무는 '다시 일어선 벚나무'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 등의 이름을 달고, 네이팜탄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나무들의 이야기로 평화를 외친다.

"황조롱이, 소쩍새 같이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동물종도 월미공원에 살고 있어요. 폭격 이후 50년 동안 외부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었기 때문이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만큼, 월미공원 내 둘레길은 이제 인천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걷기 코스가 됐습니다." 월미공원사업소 배창호 소장의 말이다.

◇‘인천상륙작전‘ 이재한 감독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 이념적 시선 안타까워“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한 영화일까, 실패한 영화일까. 연출자는 과연 그런 제 영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이재한 감독(45)은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고 이념이라는 잣대로 색안경을 쓰고 보는 분들이 많아 매우 괴로웠습니다" 인터뷰 초반, 다소 긴장한 눈빛이던 그는 그동안 심정을 묻자 이내 경계를 풀더니 "슬픈 날들의 연속이었다"며 이같이 털어놨다.

언론시사회 이후 쏟아진 혹평과 일부 평론가들의 조롱 섞인 `평점 테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원래 전문가 평점과 일반 네티즌 반응 같은 건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는데 앞으로 꽤 많은 참고를 하게 될 것 같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 감독은 "선입견이야말로 영화의 진정한 몰입을 저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념적 편향 없이 극장을 찾을 때라야 영화 안에 담긴 메시지를 잘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공원 비석의 한 글귀를 인용하며 `인천상륙작전`은 "현(現) 세대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희생한 전(前) 세대분들께 헌사한다는 의미가 담긴 영화"라고 강조했다.

"잊지 말아야 할 선조들의 업적과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겨보자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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