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 차인 이모(31·여)씨는 명절 전후만 되면 매번 부부싸움을 했다. 올해도 추석을 앞두고 시댁에 가는 문제로 남편과 며칠째 냉전을 벌였다. 이씨는 남편에게 "항상 시댁을 먼저 갔으니 이번에는 우리 집부터 가자"고 했으나 어김없이 남편은 "다른 가정도 다 시댁부터 먼저 가지 않느냐. 처가는 다음주에 가자"는 답변만 돌아왔다.

특히 이번 추석은 외동딸인 이씨가 친정아버지를 여의고 맞는 첫 명절인 만큼 친정어머니와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씨는 자신의 마음은 알아주지도 않고 시댁인 목포행 기차를 예매하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으니 '이혼'이라는 두글자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기혼 여성들이 많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씨처럼 명절 기간 제사 준비, 시댁 방문 문제로 갈등하는 부부의 사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야 할 명절이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통과의례로 바뀐지는 오래다.

'이렇듯 명절 이혼'이라는 신조어가 생길만큼 명절에 가사 노동과 고부 갈등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명절이 지난 뒤, 이혼소송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아직도 대다수 가정에서 여자가 집안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여성은 명절에 대한 부담감이 크고, 남성 역시 덩달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최근 5년간 이혼통계'를 보면 명절 전후인 2~3월과 10~11월의 이혼 건수는 바로 직전 달보다 평균 11.5% 많았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설 연휴 다음 달이었던 3월 접수된 재판상 이혼 소송 접수 건수는 3539건으로 한 달 전 2월 보다 2540건보다 39.3% 늘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추석연휴가 있던 9월과 그 다음 달인 10월의 이혼 접수 건수는 3179건에서 3534건으로 늘어났다. 2014년 10월은 3625건, 2013년 3807건, 2012년 3761건으로 각각 전달인 9월보다 7.7%, 22.5%, 10.3% 증가한 이혼소송이 접수됐다.

결혼 4년차 주부인 안모(33·여)씨도 추석을 앞두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연휴 내내 쉴 틈 없이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느라 허리를 필 겨를도 없기 때문이다. 안씨는 "대가족 식사를 매끼 준비하고 시댁 어르신들 눈치 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명절증후군을 겪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쇼핑몰에는 '가짜 깁스', '가짜 코피'까지 등장했다. 연출·영화 소품으로 사용된 가짜 깁스가 명절이 다가오면 '며느리 필수품'이라며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가짜 깁스로 팔이 다친 것처럼 위장해 시댁을 가지 않거나 가더라도 가사노동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목적에서다.

윤모(29·여)씨는 "결혼 전에는 명절 연휴가 빨리 오기를 기다렸는데 결혼을 하니 명절노동이 큰 스트레스"라며 "인터넷에 '가짜깁스'를 사용해서 시댁 행을 피했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고 가격도 1만원대로 쉽게 주문할 수 있어 한번 구매해볼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명절을 앞둔 남성들도 여성 못지않은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결혼 7년차인 박모(39)씨는 "명절을 앞두고 아내 짜증이 유독 심해진다. 시골에 가도 힘들다고 티를 내는 아내와 아내 음식 솜씨를 못마땅해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눈치 보면서 연휴를 보내는 것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장모(36)씨는 결혼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처가 방문이 어렵기만 하다. 결혼 전부터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로 자신을 못마땅해 했던 장모와의 사이가 계속 껄끄럽기 때문이다.

장씨는 "처제가 지난해 의사와 결혼한 이후부터는 장모님이 동서와 끊임없이 비교한다"며 "그럴 때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내가 왜 이런 대접까지 받아야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명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부부간의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은 "평소 가족 간 숨겨온 감정의 앙금이 명절을 맞아 드러나 파국을 맞는 것"이라며 "서로 억눌린 감정이 드러났을 때는 속내를 털어놓고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는 게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 상담위원은 "특히 30대 젊은 부분의 경우 여성들은 성평등에 대한 의식이 확고한 반면 남성들은 겉으로는 성평등을 말하면서도 인식은 아버지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면서 "아직 제사 문화가 남아 있고 명절을 시댁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여성과 남성이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나눠보고 합리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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