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 1995년 3월 제일제당 상무였던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누나 이미경 이사와 함께 미국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월트디즈니 만화영화를 총지휘한 제프리 카젠버그, 음반업계의 거장 데이비드 게펜이 함께 만든 '드림웍스SKG'의 투자 계약을 성사시키러 떠난 길이었다. 할리우드 거물들과의 협상을 앞두고 이재현 회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는 문화야. 그게 우리의 미래야.단순히 영화 유통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멀티플렉스도 짓고, 영화도 직접 만들고, 음악도 하고, 케이블채널도 만들거야. 아시아의 할리우드가 되자는 거지."

이재현 회장은 당시 '문화의 산업화'라는 자신의 꿈을 설명했다. 드림웍스SKG를 통해 콘텐츠 제작과 유통 역량을 키운 뒤 궁극적으로 우리 정서에 맞는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겠다는 꿈, 멀티플렉스를 통해 영화 관람 문화를 바꾸겠다는 꿈, 문화상품을 앞세워 세계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꿈을 털어놓은 것이다. CJ그룹은 그렇게 식품회사라는 오랜 틀을 벗어던지고 문화기업으로의 사업다각화에 도전했다.

1995년 제일제당은 3억달러(3500억원)를 투자해 드림웍스SKG의 대주주로 참여했다. 3억달러는 당시 제일제당 연 매출의 20%가 넘는 금액이었고, 한국의 작은 식품회사가 헐리우드의 최고 '핫아이콘'인 드림웍스와 손을 잡은 것은 당시 세계의 주목을 끈 뉴스였다.

제일제당은 드림웍스 투자를 통해 배당금 외에 아시아 지역(일본 제외)의 판권을 보유하게 됐고, 영화배급, 마케팅, 재무 관리 등 할리우드의 운영 노하우를 지원받기로 합의했다.

제일제당은 1995년 4월 드림웍스 투자를 발표하고 같은 해 8월 사내에 '멀티미디어사업부'를 신설,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98년 4월에는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 'CGV강변11'을 오픈, 국내 영화산업의 일대 전환기를 불러왔다.

CJ그룹은 영화제작시장에도 뛰어들었다.

1997년 100억원대의 제작비를 투입해 '인샬라'를 제작했지만, 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같은 해 외환위기까지 터지면서 회사 내부에서도 우려와 비판이 제기됐지만, 이재현 회장은 문화사업은 미래형 산업이라는 의지로 투자를 이어갔다.

이후 CJ그룹은 '해피엔드'와 '섬', '춘향뎐' 등을 내놓으며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고,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는 250만 관객(서울관객 기준)을 넘어 서는 기염을 토했다.

CJ는 영화와 함께 케이블방송 사업에도 진출했다. 1997년 음악전문 방송채널 'Mnet'을 인수하며 미디어와 음악제작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1999년 1월에는 세계적 음악 전문 채널 MTV네트워크아시아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 국내 가요의 세계시장 진출을 추진했다.

1999년 연말 치러진 'Mnet영상음악대상'은 지상파의 연말 음악방송과 달리 베스트 뮤직비디오, 록 밴드, 힙합 등에 대한 시상을 진행해 화제를 낳았다. 이후 MKMF를 거쳐 MAMA가 아시아 최고의 음악축제 로 자리잡으면서, Mnet은 K-팝의 글로벌 열풍에 큰 역할을 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CJ는 2000년 푸드채널 '채널F'를 개국한데 이어 영화채널 '홈CGV'도 개국했다. 2002년에는 CJ미디어를 설립, 시청타깃과 특성이 명확한 전문채널들을 잇따라 개국했다. 2010년에는 온미디어를 인수, 현재는 영화, 푸드스타일, 바둑, 어린이, 패션스타일 등 각기 명확한 타겟 시청층을 보유한 총 18개의 전문 채널들을 운영하고 있다.

CJ E&M이 2012년부터 시작한 KCON은 콘서트를 매개로 한류 콘텐츠와 국내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제품을 체험하는 컨벤션을 융합, 한국의 종합적인 브랜드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한류문화 콘텐츠 파워를 한국의 식품, 패션, IT 등 다양한 경제산업 전반으로 확대하고자 2012년 처음 열렸으며, 이후 매년 그 규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CJ그룹은 현재 '한류 4.0'을 추구하고 있다. 문화콘텐츠를 포함한 한국의 'K-라이프스타일'이 전세계 일상에 파고들어 마니아들이 아닌 전세계인이 즐기는 주류 문화로 확산되는 단계를 의미한다.

한류 1.0 시대가 1990년대 '대장금', '겨울연가' 등 드라마로 시작됐다면, K-팝이 이끌었던 한류는 2.0시대, K-무비와 K-뷰티 등으로 확장된 현재의 한류는 3.0시대로 정의된다.

CJ E&M은 '한류 4.0' 실현을 위해 중국과 동남아 등 세계 각국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현지화된 콘텐츠 제작을 통해 글로벌 매출 비중을 2020년 5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실제 방송부문에서는 '꽃보다 할배'가 2014년 중국 드래곤차이나TV에서 제작·방영됐고, 미국 NBC에 포맷이 판매돼 하반기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4년 국내 개봉돼 866만 관객을 동원한 '수상한 그녀'는 2014년 중국, 2015년 베트남, 2016년 일본에서 리메이크 제작됐다.

이재현 회장은 "전 세계인이 매년 2~3편의 한국 영화를 보고, 매월 1~2번 한국 음식을 먹고, 매주 1~2편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매일 1~2곡의 한국 음악을 들으며 일상 생활 속에서 한국 문화를 마음껏 즐기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한다.

이는 처음 문화사업을 시작했던 1995년부터 가졌던 이재현 회장의 꿈이다. 그는 문화 콘텐츠가 문화산업을 넘어 한국의 음식, 쇼핑 등 타 산업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