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이른바 '김영란법'시대가 열렸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2012년 8월 16일 처음 입법 예고를 하고서 1505일, 4년 1개월여 만이다.

오늘부터 김영란법이 전면 시행에 들어가면서 우리사회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공직자와 언론인, 교직원 등 약 400만명이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되면서 사실상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됐다.

김영란법의 도입 목적은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 수행'과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 확보'(제1조)에 있다. 그러나 이 법의 파급 효과는 공직자·공공기관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대한민국 사회의 풍경과 국민의 생활상을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국민들 상당수가 이 법 시행으로 인한 파장을 다소 긴장된 표정 속에서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 관행적으로 굳어져온 부정한 청탁이나 접대, 금품수수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김영란법은 그동안 관행으로 여겨졌던 스폰서, 떡값, 전별금, 연줄 등을 포함해 대가성이 없더라도 공직자 등에게 전해지는 모든 금품을 부정부패의 시발점으로 여긴다. 이에 김영란법은 금지대상인 부정청탁을 14가지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사실상 공공부문의 거의 모든 분야가 해당된다.

김영란법이 금지하는 금품 수수와 부정 청탁의 범위는 넓다. 우선 공직자, 언론인, 교사 등은 직무 연관성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금품이나 부정 청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직무 연관성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부터도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 이상의 금품 등을 수수해서는 안 된다.

수수가 금지된 '금품 등'에는 ▲돈·물품·상품권·부동산 등 일체의 재산적 이익 ▲음식물·주류·골프 등의 접대·향응이나 교통·숙박 등의 편의 제공 ▲채무 면제, 일자리·이권 부여 등 유·무형의 경제적 이익이 모두 포함된다. '부정 청탁' 행위로는 14가지 범주의 청탁 행위가 나열돼 있다. 인·허가, 행정처분·형벌 부과, 공직 인사, 각종 수상·포상, 계약의 선정·탈락, 보조금·교부금·기금 사용 등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 각급 학교의 입학 성적, 수행 평가에 영향을 미치거나 징병 검사 등 병역 관련 업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부정 청탁이다.

직무 연관성이 있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가액 기준 '3·5·10'(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지키면 식사 대접이나 선물·경조사비 제공이 가능하다. 3·5·10 기준이 알려지면서 고급 음식점들이 2만9000원대의 메뉴를 개발하고, 유통업체들이 4만9000원대의 명절 선물을 내놓는 신풍속도도 등장했다.

그러나 3·5·10 가액 기준 허용은 어디까지나 '예외 조항'으로 ▲원활한 직무 수행 ▲사교 ▲의례의 목적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인정된다. 공정한 직무 수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는 3·5·10 가액 기준 이하의 금품도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것이 학부모와 교사 관계다. 자녀를 현재 가르치는 교사에게는 5000원짜리 커피 한 잔도 줘서는 안 된다. 자녀의 작년 담임교사라고 하더라도 앞으로 추천서 작성 등의 직무 수행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 선물을 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직무 연관성' 개념이 포괄적이고 예외 조항의 인정 여부도 유동적이어서 앞으로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정 부분 내수 위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은행은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내수가 위축될 것을 감안,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2.7%로 낮췄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성영훈 위원장은 최근 한 모임에서 김영란 시행과 관련, "핵심은 간단합니다. 청탁하지 말고, 청탁받지 말고, 공짜 밥·공짜 술 먹지 말고, 애매하고 의심스러우면 더치페이(각자 계산)하라는 거다"라고 정의한바 있다.

김영란법이 발효되면서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비윤리적이고 부정한 관습과 관행들이 퇴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조속히 자리를 잡기위해서는 법률 대상자는 물론 국민 모두가 법 취지에 맞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의식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법률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법률 위반자를 징계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법 취지에 맞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위한 노력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윤리의식 고취도 중요하지만 기업이나 공직기관 차원의 청렴교육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형식적인 차원의 교육이 아니라 실제 적용사례 등을 면밀히 분석·제시하는 실질적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인식 대한상의 기업문화팀장은 "각 주체들이 교묘한 방법으로 법을 회피하려 하기 보다는 기업관행 선진화의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법이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법률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면서 명확하고 합리적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지만 김영란법은 그렇지 못해 대상자들은 물론 기업 등이 정확한 '합·불법'여부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런 점들에 대한 보완 및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전신고제 등 김영란법의 취지는 좋지만 적용 대상의 직업군이 공무원뿐 아니라 타 직업군으로 늘어나면서 직업별 상황과 특징을 고려하지 못한 허점이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본다"며 "사회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시, '저녁 있는 삶' VS '더 고립된 섬'

한 중앙부처 A과장은 최근 허리 둘레가 부쩍 늘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 만나야 할 사람들을 부지런히 만나느라 저녁 약속이 밀려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별로 김영란법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긴 했지만 애매모호한 규정들이 많아 중요한 약속은 속 편히 법 시행 전으로 당긴 것이다.

28일부터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분위기다. 그 동안 야근을 밥먹다시피하며 각종 업무와 민원에 치이던 생활에서 한 숨 돌려, 저녁 있는 삶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 섞인 희망이 엿보인다.

반면 수도권 등 대도시와 떨어져 있어 가뜩이나 정책의 현실성이 떨어지고 현장과 소통이 안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공무원들이 만남마저 회피할 경우 더욱 고립된 섬으로 변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우선 직무관련성의 판단 기준이 아직 명확치 않은 만큼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자리는 당분간 아예 만들지 않겠다는 게 관가의 일반적인 분위기다.

A과장은 "모두가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부쩍 몸을 사리고 있다"며 "젊은 공무원들은 가족과 보낼 시간이 많아져 은근히 반기는 분위기이고, 연배가 있는 공무원들은 아내가 싫어하겠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을 평가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B국장의 경우 좀 더 엄격한 마음가짐을 하고 있다. 직접적 업무관련성이 높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다 보니 '웬만하면 차도 같이 마시지 말자'는 생각이다.

B국장은 "김영란법에 대해 교육을 두 번 받았는데 평가 관련해서는 기관들이 애로사항을 설명하는 것도 전화 이외에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공식의견을 받았다"며 "예전에는 평가기관과 가끔 오찬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커피 한 잔도 대접받지 말고 일이 있으면 사무실에서 하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날은 얼마 없다'는 생각에 26, 27일엔 각종 '번개'도 이뤄졌다. 모 부처 고위공무원은 지난 금요일 급히 기자들의 스케줄을 파악해 월요일 점심 약속을 잡았다. 다른 부처 공무원 역시 법 시행 직전인 27일 출입 기자 몇몇에게 갑자기 연락해 예정에 없던 저녁 식사를 하기도 했다.

공무원 손님이 많은 관가 주변 식당가는 최대한 '김영란법 시대'에 살아남을 방책을 마련하고 있다. 공무원과 기자들이 자주 찾는 세종시의 한 고깃집은 가격을 낮추는 대신 종업원을 내보내고 더 이상 손님들에게 고기를 구워주지 않고 있다.

세종과 인접한 청주의 한 복집은 최근 '영란특선메뉴'를 내놨다. '튀김과 맑은 탕(2만8000원), 복불고기와 맑은 탕(2만9000원), 맑은 탕 혹은 매운탕(2만2000원)' 등의 세트를 구성해 1인당 3만원이 넘지 않도록 했다.

세종시의 한 민물장어구이 음식점 관계자는 "장어는 한 마리에 2만5000원 수준이라 장어 1마리에 소면, 소주 1병을 김영란 세트로 구성하려고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공무원 사회 내부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이를 판단할 명확한 규정과 유권 해석이 없어 당분간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청탁의 소지를 애초에 차단할 김영란법의 도입을 반기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경제부처 C서기관은 "오히려 누가 사주고 얻어먹는 문화가 아니라 각자 카드로 더치페이를 하면 더 떳떳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n분의 1 문화가 정착된다면 외부 사람들을 마음의 부담 없이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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