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 한국경제가 죽어가고 있다. 여기저기서 "너무 힘들다" "앞이 안보인다 "는 하소연과 답답함을 토로하는 외침이 사방에 넘친다. 공장과 가정, 기업을 막론하고 "외환위기 때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목소리가 무성하다. 이대로 가면 한국호(號)가 침몰할지 모른다는 경고음이 예사롭지 않다. 실제 일부 업종이나 특정 분야만이 아니라 수출 내수 생산 투자 등 모든 경제지표들이 급속히 꺾이고 있다.

지난 50년간 한국경제의 버팀목이던 수출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장기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건설 경기로 버티던 내수도 회복 조짐이 요원하다.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주력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은 갈팡질팡을 거듭하고 있다. '믿을 맨'으로 꼽히던 삼성전자와 현대차마저 휴대폰 단종 사태, 파업 및 엔진 결함 등으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준비가 튼실한 것도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면서 저성장 기조가 갈수록 고착화하고 있지만, 미래먹거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1300조를 육박하는 빚이 각 가정을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금리인상 파도가 저만치 밀려오고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거세지고 있는 점도 불길한 징조다.

한마디로 중층적, 복합적 위기 상황이다. 한국경제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 끊이지 않고 있고, 탈출구도, 구명정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높지만, 이를 솔직히 인정하고 해법을 찾으려는 정부당국의 노력은 미약하기만 하다. 아니 앞장서 돌파해야 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성장엔진 '멈춘' 주력산업

울산광역시 인근의 언양에서 현대자동차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대표 A씨(49)는 현대자동차 파업 종료 소식에도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장기간 이어진 파업으로 일감이 줄어들어 공장 가동률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직원들도 잔업과 특근이 끊겨 월급이 줄어든 상태다.

A씨는 "현대차 파업으로 공장 일감도 줄어든 상태에다가 태풍 '차바'로 침수 피해까지 겹치면서 울산 지역 경제는 말이 아닌 상태"라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현대차 협력 중소기업 120개사를 대상으로 6일부터 12일까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협력 중소기업 생산설비 가동률이 파업으로 91.6%에서 68.3%로 23.3%포인트나 감소했다.

현대차는 노조의 파업과 특근 거부로 생산차질 규모가 14만2000여대에 손실액은 3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대우조선해양 사내 하청업체에 근무한 B씨(41)는 조선업 구조조정 칼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다. 조선업이 어려움에 빠지면서 올 들어 임금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다. B씨는 당장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 동안 가입해온 보험을 계약해지 했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B씨처럼 임금을 못받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으로 조선업종 임금 체불 근로자 수는 1만1746명으로 7345명을 기록한 지난해보다 59.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체불임금도 329억원에서 526억원으로 늘었다.

수도권의 주요 중견 중소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경기 시화·반월공단은 요즘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자동차와 전자·기계 등 주력산업의 부품 생산기지인 공단의 공장 가동률이 70%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자동차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업체 대표 K씨는 "계속 내려가는 납품 단가를 맞추기도 어렵지만, 그마저도 일감이 줄어 공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말은 더이상 뉴스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모두 망라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곳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최근들어 주력산업 전반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양상이 더 심해지고 있어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핵심 원천 기술 확보가 늦고 제품 고도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중국 등 경쟁 국가의 추격으로 설자리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출전선에서 주력산업부터 무너지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 부진여파와 겹치면서 공급 과잉에 따른 수출 단가 하락으로 지표도 하락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주력산업의 수출 감소폭은 총 수출 감소폭을 웃돌고 있다. 지난해 8.0% 줄어든 총 수출에 비해 주력산업은 9.6% 줄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총 수출은 10.8% 줄었지만 주력산업은 11.8% 감소했다.

◇주력 산업 국제 경쟁력 5년 안에 잃는다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에는 유가의 상대적인 안정세로 감소폭이 줄어들겠지만 여전히 감소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력산업 내에서 5년 후에도 중국에 비해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품목은 일부 고급제품이나 핵심소재·부품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고급제품이나 핵심소재 및 부품 등도 수요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중국과 경쟁이 심화되는 기존 주력제품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했다.

실제 1990년대에 비해 2000년대 들어서면서 디스플레이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조업이 성장률이 크게 둔화하고 있어 기업의 신사업 진출과 투자의 모멘텀을 크게 잃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제조업의 설비투자 내용 면에서도 제조업 혁신역량이 감소하는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995년 전체 설비투자에서 40.7%에 머물렀던 설비확장은 2014년에는 52.1%까지 늘어난 가운데 신제품 투자 비중은 26.0%에서 22.1%로 줄었다.

같은 기간 연구·개발(R&D)투자 비중도 6.3%에서 5.6%로 감소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 대신, 기존 제품 위주의 투자에 주력했다는 애기다.

◇조선·철강·석유화학 경쟁력 곤두박질

한국경제를 이끌었던 조선·철강·석유화학은 구조조정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산업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조선업계 수주량이 지난해보다 16%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해운 연구기관인 클락슨 분석에 따르면 2004년부터 한국과 중국, 일본 3개국이 세계 수주량의 80%를 차지하는 과점체계를 형성해 왔지만 이후 일본은 한국의 기술력, 중국의 가격에서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철강의 경우, 중국내 수요 침체로 글로벌 공급 과잉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2011년 71건에 그쳤던 철강 수입규제조치는 2015년에는 159건을 기록하는 등 자국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한 수입규제가 확산되고 있다. 석유화학도 공급과잉품목을 중심으로 선제적 설비 감축이 절실하다.

올 들어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동시에 위기에 처하면서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갤럭시노트7 배터리 폭발 사고에 따른 리콜 영향으로 휴대전화 완제품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현대차의 9월 내수판매는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 주력모델 노후화, 개별소비세 인하정책 종료 등으로 20%나 급감했다. 우리나라의 9월 수출은 현대차 파업 여파 등으로 5.9% 줄었다.

◇갈 길 잃은 정부 구조조정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갈지자 횡보만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정부가 나서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 민감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외국 컨설팅사의 보고서에 의존하는 모양새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가 대우조선해양의 독자적인 생존이 어렵다는 보고서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구조조정안을 제시하기도 전에 대우조선해양의 회생 여부를 두고 잡음이 일고 있다.

이미 정부가 구조조정안을 제시한 철강·석유화학도 업계의 목소리는 반영하지 않은 채 컨설팅 보고서에만 의존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가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지목한 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인 후판의 경우, 수요가 회복되면 중국 제품에 시장이 잠식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석유화학업계도 설비를 감축해 시장을 잃었던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정책당국은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해외 판로개척과 기술경쟁력 제고 등을 유도해야 한다"며 "새로운 신성장 산업 육성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래가 안보인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로 꼽히는 영역에서 미국 등과 기술적 격차와 자본투자의 차이가 너무 많아 난다. 지금 현재로선 우리가 먹을 게 거의 없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최근 세계경제연구원 조찬 강연후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한 회사가 투자하는 규모가 우리나라 전체의 관련 예산보다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4차산업 혁명에선 1등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구조"라며 "우리의 기술이 선진국의 75% 수준이네, 얼마네 하는 건 의미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4차 산업혁명까지 거론할 것도 없다. 현재의 주력산업을 기초로 이 곳에서 파상되거나 연관된, 혹은 이 분야를 대체할, 가까운 장래의 먹거리를 새롭게 찾는 신성장동력 발굴에서도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

"신성장동력 산업 내 높은 위험도와 대외적 경제 불확실성으로 민간자금의 유입이 아직 낮다". 정부가 2009년 신성장동력 비전 발표 이후 4년간의 추진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연구기관에 맡긴 연구 용역보고서의 일부이다.

이 보고서는 "신성장동력 정책은 R&D 지원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기업별 수준이 상이한 특성을 감안해 민간 정책 수요를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권고하고 있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매번 신성장동력 육성 정책을 펴왔지만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채 백과사전식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민간 수요는 고려하지 않은 채 성과 내기에만 치중한 신성장산업 육성정책의 폐해다. 현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창조경제의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구호만 요란할뿐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다.

정부의 신성장동력 발굴이 지지부진한 사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던 주력산업은 정체기에 빠져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우리나라 수출을 이끄는 13대 주력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우리 기업의 신사업 추진실태와 시사점'을 조사한 결과, 수출 주력산업에 속하는 기업 10곳 중 8곳은 매출이나 이익이 줄어드는 쇠퇴기 내지 정체기에 접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업체의 66.3%가 주력제품의 수명주기에 대해 매출확대가 더디고 가격과 이익은 점점 떨어지는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답했다. 매출과 이익 둘 다 감소하는 쇠퇴기로 들어섰다는 기업은 12.2%였다.

반면 매출이 빠르게 늘면서 고이익을 거두는 성장기라고 답한 기업은 21.5%에 그쳤다. 새로운 시장이 태동하는 도입기라는 업체는 한군데도 없었다.

신성장동력 사업 발굴에 나서도 성과가 구체화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둔화에 대응해 응답기업의 86.6%는 '신사업 추진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진행 상황은 '가능성 검토단계'(56.6%), '구상단계'(9.3%) 등 시작단계에 있는 기업이 '기술력 확보 등 착수단계'(23.2%), '제품출시 단계'(10.5%), '마무리 단계'(0.4%)에 있는 기업보다 2배가량 많았다.

대한상의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 기업은 스마트로봇, 무인차를 비롯한 혁신적 제품의 상용화를 적극 시도하고 있으며 중국도 산업경쟁력 강화는 물론 미래성장동력 창출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며 "신산업은 시장선점이 중요한데 우리는 아직 적극적 대응이 부족해 경쟁에서 밀릴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사실 신성장동력 발굴과 4차산업혁명 준비가 전혀 별개의 것이거나, 큰 차이가 있는 것 아니다. 신성장동력 발굴이 부진하다면, 최근 미래 성장동력으로 부각되는 '4차 산업혁명'에 역량을 집중해 돌파구를 열어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부문에서도 선제적 대처 없이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어느 쪽에도 확실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는 뒤늦게 인공지능(AI)-로봇,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등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보다 49.6% 늘어난 4707억원의 예산을 내년도에 편성했다.

핵심기술인 AI 분야 예산은 1656억원으로 80.2% 늘었다. 사물인터넷융합기술개발 예산도 239억원으로 197.9% 증가했다. 지능정보·로봇융합서비스(100억원·미래부), 인공지능 융합 로봇시스템(146억원·산업부) 등 로봇기술과 융합프로그램도 신설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의 성과는 주요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비한 수준이다.

다보스 포럼 개막식에서 발표한 UBS의 '4차 산업혁명이 미치는 영향'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평가 대상 139개국 가운데 4차 산업혁명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나라 25위를 기록했다.

산업연구원 분석에도 한국의 미래 제조업 분야 경쟁력은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스마트카·융복합소재·융합바이오 및 헬스케어·loT 등 미래제조업 4개 분야의 산업경쟁력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미국을 100으로 할 때 한국은 68.3에 불과했다. 일본은 81.5, 중국은 55.9를 기록했다.

이는 기업의 매출액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4차 산업혁명 관련 존속 상장기업 매출액 증가율은 2006~2010년 9.7%에서 2011~2015년 1.8%로 급격히 하락했다.

한국 기업의 수익성도 2006년 대비 2010년 영업이익률이 0.6%포인트 상승한 반면, 2011년 대비 2015년 영업이익률은 0.4%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비해 일본·중국·독일 등 주요국들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 매출액 증가율은 2011~2015년 상승하고 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2011~2015년 사이 일본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1.0%포인트 올랐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물 인터넷, 인공지능 등 4 산업혁명을 주도할 기술 시장 선점을 위한 선제적 대응체계가 필요하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투자 효율성 높이고 차별화된 투자로 미래성장 동력 산업 육성의 효율성과 전략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성장률 걱정에 단기처방 반복

전세계적으로 저성장·저물가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는 4년여간 여러 차례 단기 대책을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했다. 그 결과 초라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구조개혁이 뒤로 밀리면서 경제의 기초체력은 계속 떨어졌고, 나라빚은 늘어났으며, 부동산만 과열로 치닫는 기형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정부는 2013년부터 3차례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고 한국은행은 2014년 8월부터 5차례나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 같은 정책 대응은 일본 정부가 2013년부터 추진해온 '아베노믹스'와 유사했다.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구조개혁을 추진하되 단기적인 경기 진작을 위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도 적절히 사용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 17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며 경기 부양에 시동을 걸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2014년 하반기부터는 대응은 더욱 과감해졌다.

'최경환 경제팀'은 출범 직후 기금과 정책금융, 공공기관 등을 이용해 46조원 규모의 재정보강 패키지를 내놨다. 또 2015년에도 정부 지출을 20조원이나 늘린 '슈퍼예산'(376조원)을 짰고,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자 하반기 11조6000억원 규모의 추경도 편성했다. 내수 진작을 위해 자동차나 대형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 대책도 내놨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올해에도 각종 단기 대책이 반복됐다. 각종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저성장 현상이 지속되자 연초 개별소비세 인하를 6개월 연장했다. 지난 8월 11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고,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한지 한 달 만에 10조원 규모의 재정보강 패키지도 내놨다.

한은도 통화정책을 통해 보조를 맞췄다. 2013년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6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기준금리는 2.75%에서 1.2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단기 대책의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경제성장률은 2013년 2.9%를 기록한 뒤 2014년(3.3%) 3%대로 반등했지만 2015년(2.6%) 다시 2%대로 주저앉았다. 올해도 경제성장률은 2%대 중후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1년부터 5년 연속으로 세계 평균을 밑돌고 있다.

이처럼 최근 경기 부양책의 효과가 제대로 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한 쪽에서는 정부 대응에 과감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단기 부양책 만으로는 지금의 저성장 기조를 극복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정책의 경우 경기 후퇴가 누적되는 것을 확인한 후 차후 점진적인 형태의 금리 조정을 해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며 "재정 쪽에서도 조금 더 확장적 형태로 갈 여력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단기적으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등으로 경기부양을 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며 "고령화로 인해 투자가 줄면서 잠재성장률 자체가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차분하게 2%대 성장을 받아들이고 장기적인 논의를 해야할 시기"라고 말했다.

현재 단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효과는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뒤늦게 부동산 시장 과열로 나타나는 모양새다.

금리 인하와 대출 규제 완화의 영향으로 2013년 963조원 수준이던 가계부채는 올해 2분기 1257조원으로 2년 반만에 300조원 가까이 늘었다.

시중의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강남3구 아파트 가격은 3.3㎡당 4000만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넘어섰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 전 부총리가 내세운 '소득주도성장'은 구호에 그쳤고 실질적으로 쓴 정책은 과거의 부동산 경기 부양이었다"며 "현재 성장률의 1%포인트 정도는 건설업에서 오고 있고 수시로 부동산 경기에 불을 때서 이 정도의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기부양책을 쓰면 부동산으로 돈이 몰려가는 것은 언제나 그랬다"며 "가 때문에 부작용을 감안했어야 하는데 최 전 부총리는 (부동산 시장 과열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가계부채 1300조…빚 갚느라 쓸 돈이 없다

 "이자는 일요일에도 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빚의 무서움을 경고한 것이지만, 뛰는 전세자금 때문에, 혹은 주택 구입을 위해 금융기관 대출을 받게 된 가계는 소득보다 두배이상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부채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1300조에 육박하는 빚에 짓눌린 가계의 소비 여력이 떨어지면서 내수 부진과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생계비 지출 비중이 큰 저소득층과 젊은 계층의 소득을 늘려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은 가계부채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 6월 기준으로 1인당 평균 부채금액은 7206만원에 달했다.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은 전에 없이 커졌다. 한은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우리나라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45.6%로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지난해 가계부채 '한계가구'는 134만2000가구로 지난해보다 3만9000가구 (3.0%) 늘었다. 한계가구의 비중은 금융부채를 보유한 전체 가구 중 12.5%를 차지했고 이들이 보유한 금융부채는 전체 가계 금융부채의 29.1%에 달했다. 한계가구란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으면서 연소득의 40.0% 이상을 부채의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쓰는 가구를 뜻한다.

자연히 소비심리도 얼어붙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평균소비성향은 지난해 동기 대비 0.7%포인트 하락한 70.9%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평균소비성향은 처분 가능한 소득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다.

가계 평균소비성향은 지난해 4분기(72.3%)부터 올해 2분기까지 쭉 내림세를 이어왔다.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개별소비세 인하, 임시공휴일, 대규모 할인행사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반짝 효과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일시적으로 소비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지만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경기 상황을 반전시키긴 어렵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저축을 많이 하고, 투자를 해도 강남 같은 안전한 곳으로만 간다"고 짚었다.

실제로 예금보험공사가 발표한 '2016년 2분기 예금보험 및 부보금융회사 현황'을 보면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2분기 189조5000억원으로 석달 동안 11조5000억원(6.5%) 증가했다. 요구불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롭지만 이자가 낮은 대기성 자금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저성장이 너무 장기화하다 보니 기업이나 개인 모두 소비 심리가 많이 위축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소비 여력이 커지려면 들어오는 돈이 늘어야 하는데, 한계소비성향(증가한 소득 중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큰 저소득층과 젊은층의 소득 여건이 나아지지 않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 1분위(하위 10%) 가구의 소득은 지난해 동기 대비 10.7%, 지출은 0.9% 감소했다.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지출액은 소득보다 30만8029원 많아 적자폭이 커졌다. 2분위(소득 -3.6%, 지출 -2.7%), 3분위(소득 -2.3%, 지출 -5.5%), 4분위(소득 -0.5%, 지출 -4.3%)도 상황은 비슷했다.

하 교수는 "저소득층과 젊은 계층의 소득을 늘리려면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줘야 한다"며 "청년들의 경우 일자리 자체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쪽에 자원을 투입하고, 창업지원 대책과 중소기업 대책이 좀 더 실효성을 가지도록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개혁 '표류'…4% 잠재성장률 '헛구호'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정부의 구조개혁 과제들이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단기 부양책 위주의 경제정책이 반복되면서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살리기 위해 2013년 초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놨다. 사회 전 분야의 구조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었다.

2017년까지 잠재성장률 4%와 고용률 70%를 달성하고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이른바 '474' 목표도 세웠다.

4대 개혁(노동·금융·공공·교육)과 창조경제는 정부의 대표적인 구조개혁 전략이었다.

하지만 4대 개혁의 핵심인 노동개혁의 경우 노조 등 이해관계자와 야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표류 중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 제출한 노동개혁 4법은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반대 속에 1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속전속결로 추진하던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는 결국 대규모 파업을 불러 일으켰다.

창조개혁의 성과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정부가 창조경제혁신센터나 창업 기업의 숫자 등 외형적인 성과에 치중한 탓에 내실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유령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취업난에 청년들의 '묻지마 창업'이 급증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정부는 3개년 계획이 마지막 해를 지나면서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정부 밖의 인식은 다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내놓은 '2017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3개년 계획의 59개 세부 성과 지표 중 상당수는 지난 2013년보다 나빠졌거나 2017년 목표치에 크게 모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13년 34.3%에서 2015년 37.9%로 높아져 2017년 목표(35.6%)를 이미 넘어섰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160.3%에서 169.9%로 높아져 160대 초반을 유지한다는 목표에서 멀어졌다.

청년 일자리 창출 목표는 2017년까지 누적 50만개였지만 2015년 6만8000개를 만들어내는데 그쳤다. 청년 고용률은 41.5%(목표 47.7%), 여성 고용률은 55.7%(목표 61.9%)에 그쳐 목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오히려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구조개혁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점차 떨어지면서 성장 동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3일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2.8%로 전망하면서 "성장률 전망은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졌음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뜻한다. 지난해까지 정부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3%대 중반 수준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최근 몇몇 민간 연구기관들은 잠재 성장률이 이미 2%대로 떨어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1~2015년 3.2%였던 잠재성장률이 2016~2020년 2.7%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LG경제연구원은 생산성 저하 추세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잠재성장률이 2016~2020년 연평균 2.5%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인구 고령화, 내수·투자 부진, 주력 산업의 경쟁력 하락 등의 구조적 요인이 맞물리면서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현재의 인구변화 추세로 볼 때 2026~2030년에는 잠재성장률이 1.8%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구조개혁 추진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추진 과정에서 충분히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구조개혁과 경기 부양 사이에서 중심도 잡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구조개혁을 이야기했지만 이해관계자 설득과 극복 문제에 있어서 정책이 크게 추진되지 않았다고 본다"며 "내년에는 대선 등 정치 일정이 있기 때문에 이미 추진력을 잃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가 좋지 않다보니 정부가 단기 대책 쪽에 치중하면서 구조개혁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구조개혁의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정책적인 능력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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