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희 기자]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부쳤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도 '최순실 게이트' 불길이 번질 조짐이다.

국정 역사 교과서를 추진했던 청와대 핵심참모가 최순실(60) 국정농락 게이트에 연루된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김상률 전 교문수석은 최순실의 최측근 차은택(47)씨의 외삼촌이다. 김 전 수석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 문체부 2차관 등과 최씨와 차씨의 문화계 이권 개입의 창구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4년 11월 숙명여대 교수이던 김 전 수석이 발탁될 당시 뒷말이 무성했다. 박근혜정부 ‘코드’와 전혀 맞지 않는 인사라는 평가였다. 사퇴 압력이 거셌지만 청와대와 김 전 수석은 꿋꿋하게 버텼다.

국정화를 추진했던 또 다른 핵심 인물인 김재춘 전 교육부 차관은 과거 영남대 교수 시절 국정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논문으로 전격 교체된 것과 대조적이었다. 김 전 수석은 숙명여대 교수 시절인 2005년 펴낸 ‘차이를 넘어서’란 저서에서 북한 핵개발과 관련해 “약소국이 당연히 추구할 수밖에 없는 비장의 무기”라고 두둔했다. 또 “한국의 주적은 북한이 아닌 미국”이라고 주장한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를 옹호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도 최순실씨 개입의혹이 있다며 정부가 추진중인 국정화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육부 측은 "달라질 것은 없다. 애초 계획한 일정대로 추진할 것"이라며 "내달 1일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공식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31일 역사 연구자들의 모임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는 "국정화 교과서가 '최순실 교과서'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최순실씨가 비선실세라는 의혹이 불거진 마당에 국정화 작업을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정화 교과서 논의 과정에서도 '혼'과 '상고사'가 강조됐다"며 "샤머니즘적 요소가 강조된 국정 교과서는 당장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또 김승환 전라북도교육감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해 “어떻게 우리 교육자들이 아이들 앞에서 ‘이것도 나라다’고 말할 수 있겠나”고 개탄했다.

김승환 교육감은 이날 전라북도교육청 확대간부회의에서 “고위공직자 인사권, 대통령의 연설, 외교, 안보, 남북관계 등 전방위에 걸쳐 최순실씨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김 교육감은 “맨 먼저 떠오르는 게 국정 역사교과서다. ‘역사를 잘 모르는 국민은 혼이 없다’란 샤먼적인 언어가 등장했지 않나”라며 “교육부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역사 국정교과서가 말 그대로 정권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그저 그런 교과서 만들기 작업인지, 아니면 ‘최순실 교과서’, ‘샤먼 교과서’, ‘정권교과서’ 만들기 작업인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야당에서도 국정교과서 폐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은 "(박근혜 정부는) 역사마저 사유화하려한 한국사 국정교과서 작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진영 국민의당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기존 역사교과서의 문제가 되는 부분이 어디냐고 묻는 질문에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해 국민들을 당황케 했는데 이제 그 의문이 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국정교과서에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의 해로 기술하는 것이 확정됐다"며 "1919년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정면 부정하는 왜곡된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해할수도, 이해해서도 안되는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 대해 국민은 이것마저도 최순실이 지시한 것 아니냐는 걱정 어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정교과서 폐기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정부가 균형 잡힌 역사교육을 위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개발해야 한다며 적극 추진해온 국정 한국사 교과서 제작의 배후에 최씨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서 비롯됐다.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정황이 미르·K스포츠 재단 운영 개입·자금 유용부터 외교·안보 기밀 문건 유출, 대통령 역점 사업인 '문화융성사업',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사업' 등 곳곳에서 포착되면서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 명분과 당위성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국정 한국사 교과서 제작·배포를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현장검토본)는 다음달 28일 별도 홈페이지에 e북 형태로 일반에 공개된다. 고등학교 '한국사'와 중학교 '역사' 등 2종이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한달간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1월 최종본으로 확정된다. 교육부는 내년 2월초께 교과서를 인쇄해 3월 중 전국 중·고교 6000곳에 적용하기로 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내달 1일 오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국정 한국사 교과서 추진과 관련한 교육부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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