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 요구가 김무성 전 대표의 입을 통해터져 나왔다. 최순실 씨 국정개입 파문 초기만 해도 여권에서 대통령의 탈당만은 '금기어'였다.

어쨌든 김무성 전 대표는 여권내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 김 전 대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지난 주말 야권 유력 인사들과 연쇄 회동을 갖고 수습책을 논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대표가 주말 동안 만난 야권 지도자들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과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가 이들 야권 지도자와의 만남에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정국 수습책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김 전 대표가 박 대통령의 탈당요구를 공식화한 것은 박 대통령에게도 큰 압박으로 여겨질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특히 비주류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무성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7일 공개적으로 탈당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박 대통령의 당적정리 문제가 여권 내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로 부상했다.

물론 친박(친박근혜)계나 청와대는 여전히 대통령의 탈당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1호 당원'인 대통령의 탈당에 담긴 정치적 의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탈당은 어떤 의미이고 왜 박 대통령은 탈당을 언급하지 않는 것인가

대통령의 탈당은 곧 '정치에서 손을 뗀다'는 의미이다. 우선 대통령이 당적을 정리하게 되면 새누리당의 집권 여당으로서 지위는 즉각 상실하게 된다.

심정적으로는 새누리당이 배출한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유효하겠지만, 일단 탈당하게 되면 새누리당과 정부 간의 연결 고리는 끊어지면서 박 대통령으로서는 강력한 우군이자 버팀목을 잃게 된다.

당 내부에서는 대통령이 탈당하면 원칙적으로는 당에 파견된 정부부처의 수석전문위원도 즉시 원대 복귀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행정부의 힘이 떨어지면서 결국 국정운영의 주축이 입법부로 넘어오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현재 원내 의석 분포는 새누리당이 제1당이기는 하지만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여소야대(與小野大)이기 때문에 결국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이 주도하는 정국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도 예산안과 각종 입법안도 야당의 입김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박 대통령의 탈당 요구가 여권 내 차기 대권 주자로 통하는 김무성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지난 1987년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실시한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이 탈당했다. 차기 대선주자와 갈등을 벌이는 와중에 자신이 창당하거나 주도했던 정당을 떠났다.

이 때문에 탈당은 미래 권력이 현재 권력과 단절을 위해 뽑아드는 칼날로도 여겨진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역대 탈당한 대통령은 정당 창당 과정의 중심 인물이었다"면서 "그러나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으면 대통령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가려 했다"고 말했다.

실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자유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한국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은 모두 당시 대통령이 창당을 주도했지만 탈당했다.

박 대통령 역시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실질적인 '창업주'이지만 결국 탈당 위기에 처한 형국이 됐다.

대통령의 임기 말에 들어서 각종 비리나 스캔들로 힘이 빠지면 미래권력은 대통령의 친위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친정 정당에서 떠나도록 종용하고 차별화하는 수순을 밟는다.

정부의 실정을 대통령에게 넘기고 당은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도식화된 공식이 반복되는 것은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 시스템이 갖는 구조적 한계에 기인해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정치권의 탈당 요구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거기에 관해 이야기할 게 없다"고 말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박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 탈당 카드는 '마지막 카드'라 인식하는 듯 하다. 여기에는 박 대통령이 탈당할 경우 여권의 원심력이 커지면서 국정 위기 수습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내부적으로 탈당 문제를 거론해본 적이 없다"고 부정적 인식을 전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대통령의 안일한 상황 인식에서 비롯됐다. 두 번의 대국민 사과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갈 데까지 가다가 다급함 속에 후퇴하는 것으론 촛불 집회로 나타난 성난 민심을 달래지 못했다.

지금 국민들은 대통령은 '죽어야 산다'는 심정으로 그것이 탈당이든 거국내각이든 '내려 놓는' 모습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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