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일보 편집국장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민심을 얻는 일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나라를 다스리는 길이 많지만 민심을 따르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조선 중기 문신인 이희검의 <동고집>에 나오는 말이다. 결국 정치란 민심을 얻고 민심을 따르는 것이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가

최순실 게이트는 단순한 비리 사건이 아니다. 국격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국민 치욕의 사건이다. 민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며 '광화문'으로 향하고 있다. 그들은 "당신은 민심을 잃었고 민심을 따르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국민이 지지해주지 않으면 국정 추진 동력은 꺼질 수밖에 없다. 5% 지지율의 ‘식물 대통령’이라면 불문가지다.

당장 19일부터 페루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도 못 갔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하지만 미·중·일 정상과의 회담은 엄두도 못 낸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이라는 정황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가 검찰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달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도 망신살만 뻗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내치도 마찬가지다. 지난 16일 박 대통령이 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으나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본인이 수사 대상인데 법무장관에게 수사 지시를 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성실히 받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고도 버티는 모습도 볼썽사납다.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수석의 공소장에 대통령이 공모 혐의로 기재되는 걸 막아보려는 저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금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장악한 친박은 참호를 파고 장기전을 하겠다는 태세다. 지금 이 국면을 어물쩍 넘기고 시간을 끌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진 모양이다.

이대로 가면 대통령과 민심이 거리에서 충돌하게 된다. 불행한 사태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태 발전을 예측하지 못할 리 없는 대통령과 친박이 반격에 나선 것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인가. 격렬한 시위의 반작용으로 떠났던 지지층이 되돌아올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면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검찰 수사, 특검 수사, 국회 국정조사가 이어지고 경우에 따라 국회에서 탄핵이 발의될 수도 있다. 첩첩산중이다. 이 판국에 대통령이 번번이 민심에 불을 지르니 이해할 수가 없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을 향해 "'뭐 그리 잘못한 게 있느냐'고 다시 고개를 든다면 현실을 매우 잘못 보는 것"이라고 했다. 최순실 사태를 부른 것은 박 대통령의 고장 난 현실 인식 때문이다.

국민 대부분이 물러나라는데도 박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는 건 민심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명심해야 될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길이 민심을 따르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수습할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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