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마리날레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주도 세비야에서 동쪽으로 100여㎞ 떨어진 작은 도시다. 별다른 산업 시설이나 관광 자원 없이 올리브와 농작물을 기르는 평범한 농촌인 이곳으로 스페인 전역과 세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1979년 이래 주민이 직접 선출한 시장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가 30년 넘게 마을을 다스리고 있으며, 농산물과 올리브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농장과 공장을 협동조합의 형태로 꾸리고 판매와 수출까지 한다.

주민 대부분은 이곳에서 하루에 여섯 시간 반을 일하며 47유로, 한 달에 1200유로(약 180만원·스페인 최저임금의 배)를 받는다. 협동조합은 이윤을 분배하지 않고 재투자 한다. 최근의 이주민들을 제외하면 완전 고용 상태나 다름없다. 더 놀라운 것은 지방 정부로부터 자재를 지원받아 주민들이 살 집을 직접 짓고 한 달에 15유로 정도만을 부담하므로 사실상의 무상 주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마을의 중요한 사안은 총회에서 주민의 참여로 결정되며 마을에서 벌이는 떠들썩한 축제에는 스페인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 이상한 마을을 두고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는 영국의 저널리스트 댄 핸콕스가 이곳을 방문해 시장을 비롯한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동체를 심층 취재하고, 이 마을의 지지자와 반대자를 두루 인터뷰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핸콕스는 마리날레다를 공산주의적 유토피아가 실현된 공동체로 보거나 정반대로 실패한 현실 공산주의의 축소판으로 보는 관점 모두 이 마을을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마을은 스페인 역사에서 안달루시아가 차지하는 독특함, 즉 자립과 분권에 대한 강한 열망, 땅과 일에 대한 집착, 상당한 수준의 무정부주의 등을 배경으로 이해돼야 한다. 따라서 특정한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를 실현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한편, 이 마을이 지닌 자유로움과 개방성, 마을 규모에 비해 다섯 배나 많은 여가 시설, 노동과 축제의 적절한 균형은 실패한 공산주의의 축소판으로도 볼 수 없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원이나 복지 제도에 기대지 않고 자립이 가능한 경제 모델을 만들어 냄으로써 기존의 사회 민주주의나 복지 국가 체제로도 설명이 쉽지 않게 됐다.

세계인은 이제 마리날레다를 자본주의에 맞서는 하나의 대안으로, 현재 진행형의 실험으로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중이다. 그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실험은 실업과 주택 문제, 빈부 격차 등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에게도 체제의 위기와 혁신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준다. 우리 사회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여러 이슈를 앞서 실험하고 있다는 것은 더욱 눈길을 끄는 점이다.

이 지난하고 끈질긴 도전과 실험을 통해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미래에 원하는 것을 지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가능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본보기가 됩니다"라는 고르디요 시장의 말처럼. 윤길순 옮김, 288쪽, 1만5000원,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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