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S 캡쳐
[김승혜 기자]이른바 ‘짤리틱스’(짤방과 폴리틱스의 합성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짤방은 ‘짤림방지’의 줄임말로, 인터넷 게시글이 삭제되지 않도록 덧붙이는 재밌는 사진이나 짧은 영상을 이르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재밌는 사진이나 영상을 폭넓게 지칭하는 데 쓰인다. 주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웃긴 장면들을 짤방으로 썼는데, 국정농단 사태 이후 국회 청문회를 소재로 한 짤방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지난 6일 국회에서는 9대 재벌 총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최순실 게이트'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5공 청문회 이후 28년 만에 탄생한 재벌 청문회는 전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얻었지만, 그 기대와는 다르게 총수들의 '모르쇠'로 일관된 무성의한 답변은 실망만 남겼다.

하지만 디시인사이드 이용자들은 이 실망을 재치있는 드립과 짤방으로 재탄생시켜 그 와중에 큰 웃음을 자아냈다. 정유라에게 지원된 327억이 얼마나 큰돈인지 아느냐는 질문을 받는 도중 눈을 살짝 감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착해 캡처한 뒤 "방금 다 벌었다"라고 하거나, 유통기업인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리아' 제품으로 점심 한 턱을 낸다는 패러디 등이 그 주인공이다.

'송구하다', '모른다' 등 재벌 총수들의 일관된 답변을 비꼬는 패러디 짤방도 등장했다. 디시인사이드 국내 야구 갤러리의 한 이용자가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온 '플라잉체어'를 언급하면서 "특정 단어 나오면 플라잉체어로 날려버리는 장치 설치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비꼬자 곧바로 '송구' 단어에 걸려 수영장으로 날아가는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을 합성한 짤방이 등장했다.

주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웃긴 장면들을 짤방으로 썼는데, 국정농단 사태 이후 국회 청문회를 소재로 한 짤방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27일 국민일보가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날아가면서 수영장에 빠지는 짤방이 대표적이다. 과거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특정 단어를 언급하면 수영장에 빠지는 벌칙을 받는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장면에 이 부회장의 얼굴을 합성했다. 지난 6일 1차 청문회에 출석한 이 부회장이 어리숙한 모습으로 “송구스럽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답을 회피한 상황을 풍자했다.

2차 청문회에서 “최순실을 모른다”고 일관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짤방도 등장했다. 증인석에 앉아있는 그의 손에 거짓말 탐지기를 합성한 짤방은 ‘청문회에 도입이 시급한 물건’이라는 제목으로 퍼져나갔다. 22일 5차 청문회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식사는 하셨냐”고 묻는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 화면에는 스릴러 음악이 깔렸다. 검사 출신 증인과 의원 사이의 긴장감을 영화처럼 표현했다. “식사 했나”는 질문은 검사가 잡범을 조사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짤방은 청문회를 압축해 전달하는 디지털 시대의 메시지 형태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라는 소통 네트워크가 갖춰진 상태에서 짤방은 가장 핵심적인 방식의 디지털 메시지”라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적절하게 부각할 수 있는 이미지나 영상을 쉽게 퍼뜨릴 수 있다. 청문회 전체 영상을 보지 않아도 짤방을 통해 청문회 전체 분위기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청문회 장면을 편집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콘텐츠 생산자가 되기도 한다. 한 네티즌은 엘시티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조사특위의 한 여당 의원에게 “형님 엘시티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전화 좀 주십시오”라는 문자를 보낸 뒤 이 의원에게 전화가 걸려온 휴대전화 화면을 캡처해 올렸다. 제목은 ‘제 발 저린 도둑 찾기’였다.

짤방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 소비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증인 장시호(37·구속 기소)씨를 추적해 온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장씨에게 “제가 미우시죠?”라고 묻자 장씨가 “네”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었다. 청문회장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티즌들은 안 의원과 장씨의 대화 동영상에 달콤한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넣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문가들은 청문회 짤방의 유행을 새로운 문화적 현상으로 본다. 그동안 정치 관련 짤방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전 국민적 관심을 끈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청문회를 거치면서 각종 짤방이 끊임없이 터져 나와 이제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까지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짤방을 공유하는 게 단순히 유희로 끝나는 건 아닐까.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짤방을 공유하고 보고 즐기는 자체가 정치적으로 참여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문제 제기의 한 형태”라며 “기성 언론이 다루지 못하는 세밀한 부분까지 시시각각 전달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쿠키뉴스의 ‘짤방날씨’는 일기예보를 재미있게 독자들에게 전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도 짤방은 정치 참여의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짤방을 통해 더 많은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다. 짤방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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