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이 19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은 생애 처음으로 서울구치소에서 14시간을 보냈다. 특혜없이 원칙대로 구치소에서 대기한 이 부회장은 영장 기각에 따라 구치소를 나섰다. 전날 특검에 출석한 시점부터 구치소에 머무른 시간을 모두 계산하면 20시간이 넘는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6시 13분 서울구치소에서 나왔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시간은 오전 4시 53분이었으나 구치소에서 관련 서류 작업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시간여가 더 걸렸다.

이 부회장은 구치소 현관부터 정문까지 천천히 걸어 나와 준비돼 있던 차량을 이용해 이동했다. 본인이 평소 타고 다닌 익숙한 체어맨 차량에 다시 올라 탔다. 피말랐던 20시간이 지났다.

영장 기각으로 삼성그룹은 창립 79년만에 총수 첫 구속이라는 최악의 위기를 면했다. 하지만 18일 하루는 이 부회장에게 평생 기억될 최악의 하루였다.

특검팀, 재청구 검토 “그렇다고 죄가 없다는 것 아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를 디딤돌로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수사하려고 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상이 큰 차질을 빚게 됐다. 특검팀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해 이 부회장의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검토 중이다.

구속 영장을 기각 이유에 대해 조 판사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이 특검이 적용한 혐의를 인정한다면, 이 부회장 구속은 불가피하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었다. 따라서 이번 기각 결정은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특검과 다르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됨으로써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핵심 연결고리로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사건을 정면 돌파하려고 했던 특검팀은 이번 수사의 기초설계를 다시 짜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뇌물죄는 뇌물을 준 공여자와 이를 받은 수수자를 함께 처벌하게 돼 있다. 서로 마주보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행위로 범죄가 성립된다. 따라서 뇌물공여 혐의를 사고 있는 이 부회장의 구속 필요성이 법원에서 인정될 경우 반대편에 있는 박 대통령의 수수 행위 입증도 훨씬 수월하게 성립되는 구조다. 하지만 돈을 줬다는 뇌물공여자의 대가성 입증이 법원의 구속영장 심사 단계에서부터 벽에 부딪친 것이다.

특검팀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따져 증거관계를 보완한 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거나, 이 부회장을 불구속기소하고 곧장 박 대통령을 조사하는 방안 두 가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와 관련해 법원 구속영장 판단 단계에서조차 확실하게 대가성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박 대통령을 조사하기에는 부담이 따르는 만큼 추가 수사로 혐의를 탄탄하게 다져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방향으로 무게가 쏠리고 있다.

특검팀은 합병건 외에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전체 로드맵을 하나하나 따져 대가성 입증을 보완할 계획이다. 이는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돈을 전달한 시점이 삼성 합병 이후라는 점을 근거로 이 부회장이 청탁할 동기가 없었다는 삼성 쪽 반박을 허무는 작업이기도 하다.

한편 이번 법원의 영장 기각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중대 전환점에서 찬물을 끼얹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특검뿐 아니라 수많은 언론에서 재벌기업과 박 대통령 사이의 의혹을 제기했는데도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것은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정경유착에 뇌물죄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됐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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