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박근혜는 연극은 끝났는데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배우 같다"

13일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가 쓴 칼럼의 한 부분이다.

이어 박근혜가 헌재 판결을 수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세 가지 가설이 있다고 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견해가 첫째. 헌재의 결정을 법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망상적 믿음에 빠졌다는 주장이 둘째다. 셋째는 심리적 배신과 수치심. 청와대 퇴거 뒤 들이닥칠 검찰 수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근혜의 어젯밤 미소는 배신과 수치를 감추려는 뜻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일반인' 신분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며 향후 법적투쟁 등을 예고하고 나섰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검찰을 상대로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보인다.

檢, 이달중 소환 가능성

검찰은 '불기소특권'에서 해제된 박 전 대통령을 이달 중 소환조사하는 방안 등을 놓고 고심 중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박영수(65·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로부터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자료를 검토 중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인용되면서 불기소특권이 사라진 만큼 수사에 속도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수사기록 검토를 마친 뒤 빠르면 이번 주내에 청와대 압수수색 등을 재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3월 중 박 전 대통령 소환조사도 진행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향후 검찰 수사 과정은 혐의 일체를 부인하는 박 전 대통령과의 '진검승부'가 될 전망이다. 수사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소환조사도 순순히 응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의 입장은 향후 법적투쟁을 예고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미 탄핵심판이 인용된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이 스스로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무죄'를 증명할 공간은 검찰 조사 과정과 기소 이후 재판 뿐이기 때문이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모두 13개의 혐의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검찰에서 적용한 혐의가 8개, 특검이 적용한 것이 5개다.

가장 굵직하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가 적용됐고,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을 통해 공무상기밀을 누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직권을 남용해 최순실씨의 사익에 도움을 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중 탄핵심판 인용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 혐의는 공무상기밀누설과 일부 직권남용 등 혐의다. 뇌물죄 등은 헌재의 결정문에 담기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직권남용, 공무상기밀누설, 뇌물죄 등 주요 혐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치적으로는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지만 향후 검찰 조사와 법원 재판에서 결백을 다투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소환조사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현직 대통령 신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고려할 사항이 많지 않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르면 3월 중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곧 대통령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만큼 빠르게 소환조사를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 미소짓는 박근혜
통상 일반적인 피의자의 경우 소환통보를 두세 차례 진행한 뒤,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에 나서는 것이 관례다. 이에 따라 이번주와 다음주 정도에 걸쳐 소환통보를 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이달 말께 강제조사에 나서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퇴임하면서 내놓은 메시지는 결국 나는 결백하다는 것"이라며 "검찰 입장에서는 박 전 대통령 관련 수사에 '올인'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고, 수사 과정에서 각종 사실 관계를 놓고 첨예하게 다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직 대통령 신분이 아닌 만큼 이제 검찰 수사에 장애물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죄는 도려내되 정치보복은 안 돼

어쨌건 박근혜는 대통령 파면으로 졸지에 민간인 신분이 됐다. 바로 뇌물죄 수사를 받을 처지다. 배신감에 수치심이 겹친다. 상상하기 싫고 역사는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식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장담은 누구도 할 수 없다.
 
노무현이 100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엔 일부 진술과 증거가 제시됐다. 그렇지만 정권교체 뒤 정치보복이라는 정서가 물씬 풍겨났던 것도 사실이다. 노무현의 자살은 죄보다 보복이 더 강조됨으로써 친노 폐족이 부활하는 계기가 됐다. 이 대목에서 멈춤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박근혜의 죄는 최소한만 도려내는 게 좋겠다. 그를 가혹하게 추궁하면 정권교체도 하기 전에 정치보복부터 하느냐는 기운이 퍼질 수 있다.

살얼음판같이 조심스러운 조기 대선전이 시작됐다. 감정의 격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친박 폐족이 다시 살아날 빌미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게 현명하다. 시간을 길게 늘여 보면 노무현 탄핵의 해피엔딩은 그때뿐이었다. 더 참담한 비극으로 치닫는 전조였다. 민심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길 바란다. 그 손이 박근혜 비극을 더 비참하게 끌고 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 전영기씨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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