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0일 오후 청와대 집현실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홍배기자]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 때 최태원 SK그룹 회장만 사면하라고 지시했던 정황이 포착됐다. 

이러한 사실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물증인 안종범(5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을 통해 드러났다. 최 회장에 대한 사실상의 ‘단독 사면’이 이뤄진 정확한 배경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될 전망이다.

5일 한국일보레 따르면 안 전 수석의 청와대 업무수첩 39권 가운데 2015년 7월 28일~8월 11일 작성된 수첩의 8월 2일자 메모에는 “LIG X, 한화 X, SK ○”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해당 페이지 상단에는 ‘VIP’ 글자가 적혀 있는데, 이는 안 전 수석이 대통령 지시사항을 받아 적었음을 뜻한다.

특히 SK가 회장사였던 펜싱협회 내용이 6차례나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최순실씨가 지난해 2월 K스포츠재단을 앞세워 SK에 펜싱 훈련 지원금 80억원을 요구한 것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광복절 특사 명단이 초미의 관심사였고, 수감 중이던 LIG 구자원 회장과 최 회장, 집행유예 중이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의 사면ㆍ복권 가능성이 제기됐음을 감안하면 최 회장에 대해서만 박 전 대통령이 ‘OK’ 사인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8월 6, 7일 일부 언론의 ‘최태원ㆍ김승연 사면대상 포함’ 보도와는 달리, 그 이전에 이미 ‘(재벌 총수들 중) 최 회장 단독 사면’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이보다 9일 전인 7월 25일, 박 전 대통령은 김창근 당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독대를 했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사면 절차에 어긋나는 측면도 있다. 특별사면이 대통령 고유 권한이긴 하지만, 그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법무부 산하에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면심사위원회를 두어 반드시 사면안 심의를 거치도록 2008년 관련 법이 개정됐다.

‘법무부 초안 작성→사면심사위 심사→청와대 보고→대통령 승인’의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2015년 광복절 특사 당시 사면심사위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 8일 뒤인 8월 10일 열렸다. 물론 법무부와 청와대가 전체적인 사면 기준 등에 대해 실무 협의를 벌이긴 하지만, 사면심사위가 열리기도 전에 특정인의 포함 또는 배제를 대통령이 주문하는 것은 ‘사면권 견제’ 제도의 취지 자체를 무색케 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비슷한 시기, SK는 안 전 수석 수첩의 대통령 지시내용에 집중 등장한다. “펜싱협회 / 손길승 회장 연임 15명 반기 / 손 회장 밀어주면 쇄신 / 펜싱 발전+선수지원 필요”(8월 6일 VIP), “펜싱협회 / 손 회장 out but 후임 추천”(8월 9월 VIP) 등 SK가 회장사였던 펜싱협회 내용이 6차례나 등장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2016년 2월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가 K스포츠재단을 앞세워 SK에 펜싱 훈련 지원금 80억원을 요구한 사실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최 회장과 박 전 대통령 독대 나흘 후인 같은 해 2월 20일자 메모에는 ‘VIP / SK 회장 / 선수 전지훈련 <문화>’ 등이 적혀 있다.

최 회장 사면 1개월 전, “SK / 큰 기업 중견 기업/ 앞장서서 투자 / 국민 신난다!”(7월 13일 VIP)라고 적힌 메모도 눈에 띈다. SK의 투자 확대를 주문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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