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비금융 계열사들이 삼성생명 지분 매각에 일제히 나서면서 삼성의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그룹 4개 제조 계열사들은 지난 22일 보유 중이던 삼성생명 지분을 일제히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을 통해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지분을 매각하는 4개 계열사들의 삼성생명에 대한 지분율은 1.6%(삼성전기 0.6%,삼성정밀화학 0.5%, 삼성SDS 0.4%, 제일기획 0.2%)이다.

23일 증권가와 재계에서는 이번 움직임은 복잡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지배구조에 영향이 미미한 지분을 정리하는 일종의 '잔가지 치기'라는 의견과 장기적으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그룹 소유구조의 특징 중 비판 받아 온 점은 순환출자구조와 금융·산업자본의 혼합이었다"며 "작년 이후 잦아진 삼성그룹 계열사들간의 지분 이동 및 매각 조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풀기 위한 차원으로 이해한다"고 해석했다.

그는 "이번 거래로 제조계열사들의 삼성생명 관련한 순환출자가 해소됐고, 삼성생명의 삼성카드에 대한 지분율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삼성화재에 대한 소유를 단순화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금융·산업자본 혼합 문제도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를 제외하면 삼성그룹 소유구조의 특징은 해소국면으로 진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계열사들을 금융과 비금융으로 양분,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사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 결국 지주회사 체제로 전면 개편될 것이란 시나리오를 거론하고 있다.

4개사가 지분을 모두 처분하면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한 삼성그룹의 비금융 계열사는 순환출자 구조의 상위에 있는 삼성에버랜드(19.34%)만 남게 된다. 즉 그룹의 지주사격인 삼성에버랜드 밑에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중간 금융지주회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또 4개사의 지분 정리로 삼성생명을 둘러싼 순환출자 구조(삼성생명→삼성전자→제조계열사→삼성생명)의 구조가 끊어지게 된다. 동시에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 29.8만주(0.6%)를 삼성카드로부터 매입함에 따라 지분율이 11%인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이에 앞서 삼성생명은 지난해 삼성전기,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이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 5.81%를 취득해 지분율을 28.6%에서 34.41%까지 늘린 바 있다. 이는 삼성카드의 최대주주인 삼성전자(37.45%)의 지분에 육박한 수준으로, 삼성생명의 금융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재계 관계자 "삼성그룹이 전체적으로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비금융과,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으로 양분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후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그룹 전체를 지주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초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세부실행 과제로 인수·합병(M&A) 활성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지주사 전환 시 금융회사가 3개 이상이거나 자산이 20조원 이상인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내놨다.

김태현 NH농협증권 연구원은 "이번 삼성생명 지분 매각과 삼성화재 지분 매입으로 삼성그룹 내 금산분리 및 지배구조 개편 속도에 대한 기대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특히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 매입은 삼성생명의 금융계열사 지분율 확대라는 측면에서 작년 12월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지분 5.81% 취득과 연계해 중간금융지주 등 각종 금산분리 시나리오가 재차 불거질 수 있는 이벤트라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번 계열사들의 삼성생명 지분 매각은 단순 지분 정리에 불과하며,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승희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룹 내에서 단순화할 수 있는 지분 정리로 보이는 소소한 지분 변화"라며 "이번 지분 변화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회사 전환의 전초전 또는 본격적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변화로 보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일부 계열사가 삼성생명에 대한 소액 지분을 처분했지만 이는 기존 순환출자고리 일부를 해소하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운신의 폭을 넓히는 등 그룹의 마이너한 지배구조 변화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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