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엔 어딜 가도 위계질서 문화가 강력하다. 내가 속한 법조계는 그게 유난히 강하다. 소위 기수문화가 횡행하는데, 법조경력의 길고 짧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처신하면, 큰 코 다친다. 솔직히 말해 나도 이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기에다 관존민비 현상까지 더해져 현직에 있는 법조인들의 권위주의는 도가 지나친다. 재야 변호사들은 기수가 높더라도 현직 후배에게 깍듯하다. 이 같은 현상은 관이라고 할 수 없는 변호사단체에서도 나타난다. 변호사회 회장이 되면 기수와 관계없이 회원들과의 관계에선 갑을관계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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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ㅇㅇ변호사회 회장실입니다. 회장님이 박교수님과 통화를 원하십니다."
나는 그 전화를 받자마자 화가 났다. 어라, 이 친구 봐라. 언제부터 내게 이런 식으로 전화를 했지? 나는 그 친구가 연결되기 전에 전화를 꺼버렸다.

잠시 뒤에 벨이 또 울렸다.
"전화가 끊어진 것 같습니다. 회장님 연결하겠습니다."
"여보세요. 전화 끊어진 게 아니고 내가 껐어요. 회장님께 직접 전화하시라고 전해 주세요."

몇 분 후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제가 바쁘다보니 미처 챙기질 못 했습니다"
"ㅇ회장, 그래도 그렇지... 좀 조심하는 게 좋겠소.“

하나의 에피소드지만 이것으로 우리 사회에서 돈과 권력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의 멘탈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보다 지위가 낮다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이런 식으로 전화를 한다. 이런 전화는 결코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겐 하지 않는다. 그러니 전화하는 태도만 보면 잘 났다고 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상당부분 알 수 있다. 그 태도에서 그들의 권위의식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문대통령이 송하진 전북지사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송지사는 대통령이 비서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전화를 하자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문대통령의 이런 태도야 말로 새로운 스타일의 대통령상이다. 탈 권위의 상징적 표현이다.

나는 이게 일부러 꾸며진 상징조작이라고 보지 않는다. 바로 인간 문재인의 본모습이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부디 이런 모습을 임기 끝까지 보여주기 바란다. 그래서 장관들도, 청와대 수석들도 대통령을 닮아 이런 자세로 일하라. 이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세인가, 조용히 상대를 감동시키지 않는가. 쓸데없이 권위를 보여주려고 했다가 본론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망했던 케이스가 얼마나 많은가. 새 정부 고위공직자들이 경계할 일이다.

한양대 박찬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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