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65) 전 대통령의 공판에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61)이 증인으로 출석해 청와대의 인사 전횡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법정에서 각각 피고인과 증인으로 마주 선 박 전 대통령과 유 전 장관은 2014년 7월 박 전 장관이 경질된 지 3년 만에 처음 만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유 전 장관을 박근혜 정부 첫 문체부 장관에 임명했지만 2014년 7월 면직시켰다. 유 전 장관은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등에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출전한 승마대회를 감사한 노태강 당시 문체부 국장 등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좌천 지시를 잘 이행하지 않아 면직됐다"고 말해왔다.

이날 법정 가운데 증인석에 앉은 유 전 장관과 오른쪽 피고인석에 앉은 박 전 대통령 사이엔 냉기가 흘렀다. 박 전 대통령은 유 전 장관이 증언을 하는 동안 증인석을 여러 차례 노려보듯 응시했다. 유 전 장관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정면의 재판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유 전 장관에게 노태강 전 국장 등에 대한 좌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나 유 전 장관은 이날 증언에서 "(박 전 대통령이 노 전 국장의) 이름을 분명히 거론했다"며 "굉장히 뜻밖이고 큰 문제라고 생각해서 '인사 문제는 장·차관에게 맡겨주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이후에도 연락(압박)이 왔다"고 했다.

유 전 장관은 박 전 대통령이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현 문체부 2차관)을 ‘참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고 인사 조치한 일의 부당성을 또박또박 증언했다. 유 전 장관은 “실제로 노태강이라는 사람은 문체부에서 상급자 평가는 물론이고 하급자들의 (상향식) 평가에서도 최상의 성적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사뿐 아니라 부하직원도 좋아하고, 능력에 대해서도 동료들이 인정하기 때문에 그를 쫓아내기 위해 ‘문제가 많다’고 얘기한 것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은 “2013년 8월 박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힌 노 전 국장이 울면서 ‘나를 징계하지 않으면 부처가 큰일 난다. 제발 나를 징계해 달라’고 호소했다”고 말했다. 노 전 국장은 2013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으로 전보됐고, 2016년 6월 공직을 떠났다. 유 전 장관은 “노 전 국장의 품성, 부정부패 이런 걸 다시 얘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걸 다시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유 전 장관은 또 "노 전 국장은 부처에서 최상의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인사 이동을 시키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다"면서 "노 전 국장이 되려 울면서 '저를 징계하지 않으면 부처가 큰일난다'고 해서 인사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이 "대통령이 '인사 조치 하세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인사이동을 생각했는데, 대통령은 파면이나 해임까지도 생각했던 것 같다"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은 어이없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며 웃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재판부가 "증인에게 물을 것이 있느냐"고 했을 때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박 전 대통령의 유영하(55) 변호사가 유 전 장관과 여러 차례 설전(舌戰)을 벌였다. 유 전 장관이 "(노 전 국장이 부당하게 좌천됐다고) 모든 국민이 생각한다"고 하자, 유 변호사는 "함부로 모든 국민을 들먹이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변호사가 "내부 감찰 결과 노 전 국장의 서랍에서 좋은 바둑판이 발견됐다고 한다"고 하자 이번엔 유 전 장관이 "노 전 국장은 바둑을 안 둔다. 치사한 감찰이었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이 서로 "나한테 큰소리치는 거냐" "반말하는 거냐" 하며 흥분하자 재판부가 제지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 나온 최순실 씨(61·구속 기소)는 유 전 장관에게 직접 여러 가지를 물었다. 최 씨는 노 전 국장 인사 조치의 발단이 됐던 상주 승마대회의 판정 시비 문제를 언급하며 “나는 판정 시비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딸 정유라 씨(21)가 불공정한 판정 때문에 우승을 못 했다며 청와대를 통해 문체부에 압력을 넣어 승마협회 파벌 문제를 조사하게 했다는 의혹을 부인한 것이다.

최 씨는 유 전 장관에게 “체육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 문제가 많고 좌우파 사이에 굉장히 심한 분란도 있었다. 그때도 승마협회에서도 문제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그 문제점에 대해서는 알고 계셨느냐”고 물었다. “체육에 대해 얘기하면서 좌우파 얘기하기는 무리인 것 같다”는 유 전 장관의 답변에 최 씨는 “이 파, 저 파를 좌우파라고 말한 것”이라고 받아쳤다. 유 전 장관은 “‘이 파’만 조사하라고 요구받았는데 우리는 ‘저 파’도 조사를 해서 문제가 된 것”이라고 응수했다.

최 씨는 “(정 씨의 승마 특혜 의혹을 제기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재판에 증인으로 부르는 것이 제 소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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