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이경재 변호사: "3월 28일 검찰에 수첩 두 권 내놨다. 작년 12월부터 조사받았는데 4개월 지나서야 내놓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 "죽을까 봐 갖고 있었다. 저를 보호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힘과 돈을 가진 분들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포감이 있어서 나중에 제출했다."

K스포츠 재단 과장으로 일했던 박헌영씨는 30일 최순실씨의 지시를 받아 적은 수첩을 뒤늦게 검찰에 낸 데 대해 “죽을까봐 나를 보호하려고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뇌물죄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이같이 말했다.

박 전 과장이 최씨의 지시내용을 받아 적었다는 수첩엔 안종범 청와대 전 경제수석의 수첩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2016년 2월 19일 박헌영 수첩에 'TBK(더블루케이)+KSF(K스포츠재단) 회의'라고 적힌 부분을 보면 '연맹 창단-제주 건설회사(부영)'라고 쓰여 있다. 바로 다음 날인 2월 20일 안종범 수첩에는 '부영회장 K스포츠 연결'이라고 적혀 있다.

검찰은 K스포츠재단이 하남 거점 체육시설의 건립 자금을 부영그룹에 요구하려고 했으나 부영이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무산됐고, 롯데로 요청 대상이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안 전 경제수석은 수첩에 박 전 대통령의 말을 옮겨 적었고, 박 전 과장은 수첩에 최씨의 지시를 받아 적었다고 각각 주장하고 있다. 두 사람이 받아적은 내용은 같고 날짜는 하루 차이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관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날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측 변호인은 "박씨가 지난해 11월부터 수사를 받았는데 올해 3월에야 수첩을 낸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지적하며 수첩 내용의 신빙성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에 박씨는 “내가 일하면서 받아적은 수첩이라 필요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사건이 불거지고) 처음부터 다 내보이면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어떤 힘과 돈을 가진 사람들인지 잘 알기 때문에 공포감이 있어서 수첩을 갖고 있다가 낸 것”이라며 “그동안 수첩은 땅에 파묻어 놓았다가 검찰에 제출하면서 꺼냈다”고 밝혔다.

이어 “수첩에 날짜를 잘못 적은 부분이 있지만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최씨의 지시사항을 매일 적은 것”이라며 “수첩을 처음 쓴 이후 최근까지 내용을 수정하거나 덧붙인 적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 전 과장은 최씨 변호인단 이경재 변호사가 "수첩이 사후에 작성된 게 아니냐"고 묻자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어 이 변호사가 다시 "수첩 어디에도 최서원의 지시사항이라고 써둔 부분이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자 박 전 과장은 "저한테 지시한 분이 한 분이었기 때문에 굳이 쓸 필요가 없었다"라며 "말하는 사람이 한 명인데 '말하는 이 최순실'이라고 쓰나"라고 반박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