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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人】어쩌다 실형까지…'서태지와 아이들’ 이주노 흥망성쇠史
김승혜 기자  |  s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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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1  1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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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혜 기자]1990년대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이자 최고의 춤꾼 이주노(50 이상우)가 사기와 강제추행 혐의로 열린 1심 공판에서 징역 1년 6월에 실형을 선고 받았다. 법원은 4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도 내렸다.

법원은 그가 지인에게 빌린 1억 원을 갚지 못했고, 클럽에서 여성 2명의 신체를 접촉했다며 각각 사기와 강제추행 혐의가 있다고 유죄를 인정했다. 이주노는 그동안 사기 칠 의도가 없었고 강제추행 혐의도 술에 취해 기억 나지 않는다고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법원은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한국 최고의 춤꾼' '문화대통령'이란 찬사를 받았던 그가 어쩌다 실형까지 받게 된 것인가

이주노는 1990년대 최고의 춤꾼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중 양현석과 이주노는 당대 가장 춤을 잘 추는 댄서들이었다. 이주노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당시 벌어들인 수익은 200억이 넘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세 명의 멤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음반 제작가로 변신한 것도 이주노였다. 그는 여성스럽고 귀여운 여자 그룹들 사이에서 영턱스클럽이라는 개성파 그룹을 제작해 선보였고,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성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98~99년 IMF 영향으로 음반업계에 심각한 불황이 닥쳤다. 이주노는 계속해서 허니패밀리, 김선아 솔로 등 실업적인 앨범을 선보였지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때와 영턱스 클럽 초기 때 벌어 들었던 수입을 탕진했고, 40억원 대 빚까지 졌다. 그럼에도 이주노는 공연계에서 계속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갔다.

그는 2000년 들어서 자신의 특기인 춤을 이용해 실력파 댄서 후배들 양성, 공연에 접목하는 넌버벌 공연을 내놨다. 세계적 수준의 한국 비보이 댄서들이 대거 투입된 이 공연의 평은 나쁘지 않았다. 댄서로서의 의미 있는 도전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주노가 펼친 공연사업은 그가 사업적으로는 실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결국 60억원 채무를 떠안고 신용불량자 처지가 된 이주노는 월세도 내지 못할 궁핍한 형편이 됐다.2012년 12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던 이주노가 다시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12년 23세 연하의 여성 박미리 씨와 결혼한 소식을 공개하면서부터였다..

이주노는 어린 아내와의 결혼생활을 방송에서 솔직히 공개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장인어른과 4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등 이색적인 발언은 여러 방송에서 회자됐다. 이주노는 이를 통해 방송의 재기를 꿈꿨다. 박 씨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를 두면서 일과 가정에서 안정을 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주노의 위기는 이번에도 금전적 문제에서 불거졌다. 2013년 이주노가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월 사이 돌잔치 전문회사를 차리겠다면서, 지인 최 모 씨, 변 모 씨로부터 각각 1억원과 6500만원을 빌린 뒤 갚지 못해 2015년 사기 혐의로 피소된 것. 특히 이 과정에서 이주노가 옛 동료인 서태지를 운운했다는 녹취록이 등장하면서 팬들의 실망감은 커졌다.

여기에 더욱 팬들을 충격에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주노가 재판 중이었던 지난해 6월 서울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여성 2명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입건된 것. 목격자들에 따르면 당시 이주노는 술 냄새가 풍길 정도로 음주를 한 이후였고 추행으로 항의하는 여성들과 불미스러운 시비도 빚었다. 이주노가 재판 도중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의 마음은 더욱 싸늘하게 식었다.

30일 SBS는 재판이 시작된 지 약 1년 만에 재판부는 이주노에 실형을 선고했다. 법정구속이 될 상황이었지만 재판부는 “사기 피해자들과 금전 합의를 할 시간을 주겠다.”고 구속을 유예했다고 전했다. 과연 1990년대 10대들의 문화 대통령이었던 아티스트로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과연 재기가 가능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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