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시운전사, 영화
[김승혜 기자] 배우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가 개봉 첫 날 군함도를 뛰어 넘어 70만명을 불러 모으며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시사플러스에서 ‘김낙훈 세상생각’ 블로거 김낙훈씨가 보내온 시사회 후기를 실었다

‘택시운전사’ 시사회를 다녀와서

“1980년 5월 광주에 갔다 오면 그 당시는 거금인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게 된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그린 국민배우 송강호 주연의 영화 '택시운전사' 시사회에 다녀 왔습니다.

이 영화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자행된 전두환 신군부의 폭력과 살상을 처음으로 해외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까지 태우고 간 택시운전사 만섭의 실화를 영화화한 것 입니다.

기존에 나왔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영화들과는 달리 내부의 경험자가 아닌 외부의 목격자가 바라본 1980년 5월의 광주였고, 따라서 영화는 지역적 특수성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져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즉 영화는 기본적으로 광주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오던 사람이 아닌 갑자기 1980년 5월의 광주를 방문하게 된 사람의 눈으로 그려집니다.

당시 광주에서 그런 상황이 어쩌다 발생하게 됐는지, 그런 사건들을 겪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등에 대해서까지 영화는 접근하지 않고 그저 외부에서 온 택시기사 만섭(송강호)와 그의 손님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의 눈에 보이는 대로만 당시의 광주, 그리고 광주의 사람들이 그려질 뿐입니다.

5.18을 다룬 이전 영화들인 '화려한 휴가'나 '26년'과는 좀 다른 관점을 취한 셈인데, 그런 점에서는 마주하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슬픔을 각오하고 간 관객이라면 좀 뜻밖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취한 이런 관점 때문에 80년 5월의 광주는 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조명됩니다.

옥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민들과 군인들의 거대한 대치 양상부터 숨가쁜 혼란 때문에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거리 위의 모습, 붉은 밤빛 아래 전개되는 숨막히는 추격전부터 어둠 속에 숨어 있었던 참혹한 폭력의 실상, 병원을 가득 메운 희생자들과 부상자들의 모습까지, 영화는 두 주인공의 눈을 빌어 당시 광주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그에 따라 각기 다른 정서를 자아냅니다.

만약 광주 안의 시선으로만 바라봤다면 그 모든 것이 비극적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나 외부에서 온 두 주인공의 눈으로 보니 전쟁영화 같기도 하고 공포영화 같기도 하면서 아찔한 자동차 추격전까지 펼쳐지는 다양한 규모와 색깔의 장면들이 당시의 광주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전후사정을 전혀 듣지 못한 채 80년 5월의 광주로 뛰어들게 된 만섭의 시선을 통해 영화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보다 인상에 주목합니다.

이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깊이 없는 접근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론 오히려 상당히 보편적인 불편부당한 접근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지역적, 사상적, 역사적 관점을 배경으로 삼지 않아도 당시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던 참상이 특정한 누구에게만 슬픈 것이 아닌 절대적 비극임을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시대적 부연 설명이 없이도, 만섭이 설마 현실에서 일어날까 싶었던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군인이 시민을 때리고 발길질하고 칼로 찌르고 쏴죽이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 자체만으로 이것은 엄청난 비극이었음이 설명됩니다.

영화는 만섭이 만나는 다른 사람들의 개인사는 굳이 일일이 꺼내지 않으면서도, 반대로 만섭이 살아오고 보고 들어온 것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하는데, 이를 통해 만섭이 '저마다의 사정'과 '누구나의 생각'을 지닌 당대 가장 보통의 인물임을 드러냅니다.

그만의 사정을 지닌 만섭이 보기에도, 누구나와 다름없는 만섭이 느끼기에도 당시의 광주는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비극을 떠안은 공간이었음을 영화는 역설적으로 이야기합니다. '택시운전사'는 당시의 광주가 겪은 비극의 무게를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비극 그 자체를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대신 그 비극을 마주한 외부인들의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주인공 만섭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믿을 수 없이 평화로운 광주 근처의 풍경을 만나며 바로 그 순간 뒤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목격하고 사람이기 위해서는 그 진실을 외면하면 안된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닫습니다.

힌츠페터는 믿기 힘든 참상 앞에 좌절한 나머지 카메라로 기록해야 한다는 의지마저 한때 꺾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눈은 미처 목도하지 못하고 질끈 감을지언정 카메라는 끝까지 놓지 않음으로써 당시의 지옥 같았던 현장을 세계에 알리게 합니다.

결국 '택시운전사'는 그때 그곳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열렬히 폭로하는 영화이기보다는 우리들 다수가 겪지 못했고 보지 못했기에 비극의 크기를 미처 가늠하지 못할 그때 그곳의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해야 할지를 이야기하는 80년 5월의 광주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말하는 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목격하는 이이거나 목격되는 이이기 때문에 어느 배우의 연기가 특별히 폭발한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주인공 만섭 역의 송강호의 연기도 예상만큼 압도적인 폭발력을 보여주진 않으나 생계를 위해 속물적일 수 밖에 없었던 보통의 가장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알게 되는 과정과 정의감의 발로를 겸손하고도 강인하게 보여줍니다. 그만큼 이런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는 없습니다.

힌츠페터 역의 토마스 크레취만은 생각보다 한국 배우들 사이에서 역할에 잘 녹아들었는데, 특히 무뚝뚝한 듯한 표정 속에서도 자신이 마주한 광주의 참상 앞에 무력감을 드러내고, 이름 모를 타지의 택시운전사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는 과묵한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착하고 정이 많은 호남사람의 모습과 순식간에 웃음을 눈물로 바꿔내는 유해진, 류준열의 페이소스 깃든 연기도 묵직했습니다.

 

우리는 '택시운전사'의 결말을 거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힌츠페터는 택시운전사의 도움으로 광주를 무사히 벗어나 진실을 폭로했고 20여년 뒤에 우리나라에서 언론인상을 받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영웅이자 친구로 칭송한 주인공 만섭은 끝내 찾지를 못하지만 그 사실이 오히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지금도 분주하게 세상을 누비고 있을 만섭을 떠올리게 해 새삼 희망을 느끼게 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켰기에 누군가의 영웅으로 남은 그 평범한 이의 흔적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그날을 겪은, 그날을 목격한, 그날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영화 '택시운전사' 제작에 관여한 모든 분들 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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