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대통령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지금 누구나 하는 말 중에 가장 듣기 민망한 것은 '좋은 일자리'라는 말이다. 힘들고 천한 일이 아니라 30대 재벌 기업에서 양복 입고 사무 보는 직종만을 '좋은 일자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예 인권의 개념이 없는, 시대착오적이고 부도덕한 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한없는 거부감과 불쾌감을 느낀다."(155쪽)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가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다'를 냈다.

잉여·금수저·동성애·청년 실업·시위·탄핵 등의 주제를 다룬 책이다. 2014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동아일보에 실렸던 칼럼을 단행본으로 엮었다.

글 전체를 '플라뇌르'의 시각으로 통합했다. 원래 '산책자'라는 뜻의 플라뇌르는, 보들레르가 이 단어를 미학적으로 사용한 이래 도시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익명의 군중 속에서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는 예술가 혹은 지식인을 뜻하게 됐다.

저자는 자신이 현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무한한 호기심으로 관찰의 촉수를 늦추지 않았던 도시의 산책자였다고 스스로를 평한다. 도시 산책자로서 그는 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서울 한국 세계의 보편적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봤다.

저자는 사르트르나 플로베르도 '잉여'였다고 말하며 젊은이 특유의 소외감은 현대 사회 고유의 현상도 아니고, 신자유주의 때문만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시대, 모든 사회의 청춘은 언제나 잉여였다. 아니 모든 인간은 언제나 잉여였다"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과감히 나와 자연의 물성(物性)과 접촉하는 일이 더 건강한 힐링이라며 접속이 아니라 접촉을 제안한다.

"마흔다섯에 유명 가수가 된 장사익의 스토리는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딸기장수, 외판원, 카센터 허드렛일 등 열다섯 가지가 넘는 직업을 전전했지만 천성이 낙천적이어서 한 번도 좌절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바로 이것이다. 내 나라가 지옥이다 생각하고 항상 얼굴 찌푸리고 살면 결국 내 나라는 지옥이 된다. ‘내 나라는 좋은 나라, 나는 여기서 태어나기를 잘 했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밝은 얼굴로 살면, 언젠가 자신이 바라던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발랄하고 예쁜 젊은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158쪽)

"운이 따르지 않아 사회에서 부당하게 취급되고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요즘 젊은이들의 금수저론은 '가족 소설'의 역(逆)이미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회 문제라는 큰 틀에 넣음으로써 부모에 대한 부정(否定)이라는 죄의식에서는 벗어났지만 결국 부모 잘 못 만나 자신이 괴로움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은 여전히 또 하나의 '가족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만이 개인적으로는 건강한 인격체 , 사회적으로는 성숙한 공동체가 되는 길일 것이다."(178쪽)

저자는 "나는 조용한 익명의 관찰자였다"며 "아무도 모르는,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는, 그러나 도시의 군중 속에서 '지금 여기' 우리 사회의 깊은 징후를 읽어낸 도시의 산책자였다. 가로수길이나 경리단 길 같은 서울의 거리를,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나 도쿄의 긴자 거리 같은 이국의 거리를 익명의 군중 속에서 무심하게 걸으며 관찰의 촉수를 늦추지 않았던 산책자였다"고 말했다.

"19세기 파리의 독자들이 그랬듯이 현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무한한 호기심으로 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서울·한국·세계의 보편적 삶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또 한편 자그만 액정 화면 속 소셜 미디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실시간 정보를 흡수했던 디지털 플라뇌르이기도 했다. 그렇게 관찰하고 사유한 덧없고 단편적인 조각들을 종이 신문에 활자로, 또는 전자화면 속에 데이터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제 그것들을 책이라는 고풍스러운 매체에 담았다." 292쪽, 기파랑,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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