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과 청와대에서 관료 출신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낙연 총리, 김상곤 교육부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조국 민정수석, 조현옥 인사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홍장표 경제수석, 박상기 법무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현미 국토부장관..등등

청와내나 내각의 면면을 얼핏 봐도 관료 출신은 별로 없고, 정치인이나 학계, 시민단체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관료 출신들을 ‘적폐 구조의 한 축’으로 보는 듯하다.

관료들은 “우리처럼 실력있는 집단이 어디있느냐”고 반문하고 화도 나겠지만, '적폐 구조의 한 축'이라는 인식은 나름의 논거를 갖추고 있다.

공정거래위를 보자.

그 동안 공정거래위는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기업의 횡포, 갑질을 엄정하게 다루지 않고, 오히려 힘 있는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는 비판이 많았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대기업은 하청업체에 일을 더 시키고, 돈을 더 달라고 하면, 소송을 걸어서 시간을 끌었다.
그러면 자금여력이 없고 대기업 일감을 계속 받아야 하는 대부분 중소업체들은 손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공정위는 관망자에 머무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불공정거래위'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실정이었다.

왜 공정거래위는 이리 됐을까?
그 곳엔 강직한 공직자는 없는 것일까?

그 이유를 개인의 모럴해저드가 아니고 구조의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

과거 공정위 출신들은 퇴직 후 거액의 연봉을 받고 로펌에 취직, 후배들을 상대로 로비를 한다. 대부분 대기업 방어를 위한 것이다.

후배들은 평소 잘 어울리는 선배가 부탁하고, 나름의 논리를 제공해주고, 훗날 자신도 좋은 로펌이나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관성에 빠지게 된다.

그 흐름을 역류해 대기업에 철퇴를 날리고, 매사 깐깐하게 대하면, 선후배들 사이에서 “그 친구 못 쓰겠네”라는 말이 돌면서 왕따가 된다.
이 구조를 공직자 혼자서 깨기는 쉽지 않다.

김상조 교수를 기용한 것은 그런 유착구조에서 벗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말할 것도 없다.
검찰이야말로 재조, 재야가 얽히고설킨 곳이다.

하자 투성이인 송영무 장관을 임명한 것도 육사 출신에 의한, 육사 출신을 위한, 육사 출신의 국방부를 쇄신하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들을 만나보면, 사드 배치 과정의 졸속성, 방산 비리, 전작권 환수 연기 과정을 지적하면서 “그들이 과연 나라를 제대로 지킬 의지나 역량이 되느냐”고 분개했다.

아예 문민 출신을 기용했으면, 더 강한 개혁드라이브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너무 파격이라 생각했던 듯하다.

4강 대사 임명이 늦어지는 이유도 비외교부 출신을 찾으려 하는 노력 때문인 듯하다.
“왜 외교부 출신들을 불신하느냐”고 물으면, 박근혜 정부 시절의 위안부 엉터리 합의를 예로 들면서 “그들에게 영혼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런 사례들을 들자면, 무수히 많다.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 수많은 적폐들을 곰곰이 복기해보면, 엘리트 관료와 관료 조직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이 큰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한 때는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낸 주역이었는데, 이제는 적폐 구조의 한 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관료 출신들로 주요 포스트를 꾸리면서 두 가지 명심할 게 있다.

하나는 정치인, 학자, 시민단체 출신 장관이나 수석들이 제대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념이 너무 앞서 한 쪽만 보고 가다가 감당 못할 후유증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실력과 경험을 갖춰야 하고, 그게 부족하면 다른 의견도 경청하고 신중함을 갖춰야 한다.

다른 하나는 초심을 잃지 말고, 적폐 구조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실력이 없으면 그 구조의 논리에 굴복하게 된다.

하나 더 부가하자면, 관료들에도 왜 좋은 사람들이 없겠는가?
그들을 그런 구조로 몰아넣은 데는 정치권력의 책임이 더 클 수도 있는 만큼, 관료들을 건강하고 자존심 강한 개혁가들로 이끄는 포용력을 발휘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2017년 8월 이영성(한국일보 부사장) 패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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