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빈 살만 왕자를 새로운 왕세자로 책봉하는 자리에 모인 사우디 왕가의 왕자들=연합뉴스 캡쳐
[김승혜 기자] 최근 ‘왕실 쿠데타’로 왕세자를 갈아치운 '사우디의 왕실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사우디 왕실은 왕세자 교체를 전격 발표했다. 살만 국왕의 조카인 무함마드 빈나예프(58)에서 국왕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살만(32)으로 왕위계승 1순위를 교체한 것.

조카 대신 아들을 선택한 국왕의 결정은 당연해 보이지만 난데없는 권력 재편의 내막이 무엇인지 전 세계의 이목이 사우디 왕실에 집중됐다.

9일 중앙일보는 정통한 관계자들을 취재한 뉴욕타임스(NYT)를 인용, 왕세자 교체는 이른바 ‘왕실 쿠데타’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권력에서 밀린 빈나예프 전 왕세자는 발표 하루 전날 ‘왕궁으로 오라’는 전갈을 받았고, 영문을 모른 채 소환됐다. 감금된 상태에서 그는 ‘자리를 넘기라’는 압박을 받았다. 밤새 버텼지만 백기를 들고 만다. 자신을 밀어낸 사촌 동생에게 축복을 비는 동영상도 찍어야 했다. 잡음 없이 왕세자를 갈아치우기 위해 사우디 왕실이 치밀한 시나리오를 준비해 뒀던 셈"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이후 빈나예프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으며, 수도에서 1000㎞ 떨어진 제다에서 가택연금 중이다. 새 왕세자가 기반을 다질 때까지 숨 죽이고 있으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우디를 통치하는 알사우드 가문의 과거를 되돌아본다면, 이번 왕세자 교체는" 평화롭다. 누구의 손에도 피가 묻지 않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아내 22명, 아들 36명…피튀기는 형제간 다툼

사우디는 왕위를 형제가 세습한다. 1953년 사망한 초대 국왕 이븐 사우드가 아들에게 왕권을 물려준 뒤 지금까지 그 형제들이 사우디를 통치해 온왔다.

22명의 아내를 뒀던 이븐 사우드 국왕은 아들만 45명을 낳았다. 살아남은 아들이 36명. 이 중 지금까지 6명이 왕위에 올랐다. 2대 사우드(2남), 3대 파이살(4남), 4대 칼리드(7남), 5대 파드(11남), 6대 압둘라(13남), 7대 살만(32남) 현 국왕이 그들이다. 어머니가 제각각인 이복형제들 사이에 왕권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이 없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53년 처음 왕권을 물려받은 사우드는 이븐 사우드의 두 번째 아내 소생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왕관과 석유를 물려받으면서 막대한 빚도 받았다. 즉위한 뒤 빚은 곱절이 됐음에도 호화로운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이것이 빌미가 됐다.

즉위 직후부터 권력 다툼을 벌였던 이복동생 파이살이 그를 몰아낸 것. 파이살은 형이 치료를 위해 해외에 체류 중일 때 측근들을 처치하고 형을 퇴위시켰다. 사우드는 그리스로 망명했고 사망한 뒤에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망명·복수·피살·참수…권력 앞에 가족 없다

형을 몰아내고 왕권을 쟁취한 3대 국왕 파이살은 석유 생산을 늘려 재정을 안정화하고, 사우디를 현대적으로 개혁했다. 국민들에게 인기도 높았다.

그러나 그 끝은 비극이었다. 즉위 10년만인 1975년 조카인 파이살 빈 무사이드 왕자에게 피살됐다. 정확한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설로 거론되는 것은 ‘복수’이다. 왕자가 파이살이 쫓아낸 사우드 전 국왕의 딸과 결혼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왕자는 광장에서 공개 참수됐고 국왕 암살 사건은 막을 내렸니다.

뒤 이어 즉위한 칼리드 국왕은 6년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1982년 파드 국왕이 집권한다. 그는 사우디 왕실의 핵심 ‘수다이리 세븐’ 중 맏아들이다. ‘수다이리 세븐’은 초대 국왕의 열 번째 아내인 하산 알 수다이리가 낳은 아들 7형제를 말한다.

배다른 왕자가 너무 많은 왕실에서 ‘어느 왕비의 아들이냐’는 파벌을 나누는 핵심 요인이 됐다. 다른 아내들보다 많은 아들을 낳았으며, 왕의 총애를 받았던 수다이리 왕비의 핏줄이 강력한 파벌을 형성할 수 있었다.

파드 전 국왕은 물론 현 국왕인 살만도 수다이리의 아들입니다. 피 튀기는 권력 다툼 속에서 어머니가 같은 아들이 둘 씩이나 왕좌에 올랐다니. ‘수다이리 세븐’이 얼마나 특별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수다이리 세븐’은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게 됐고, 나머지 왕자들과 대결하게 된다.

▲ 2015년 2월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오른쪽)이 요르단에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함께 의장대사열을 받고 있다.
사우디 왕가의 초호화 라이프

사우디아라비아를 통치하는 ‘사우드 가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으로 손꼽힙니다. 초대 국왕 재임 시절 발견된 석유 덕분이다.

국부(國富)가 곧 왕가의 재산인 까닭에 사우디 국왕은 ‘알 사우드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불리기도 한다. 절대왕정 국가에서 왕은 곧 국가이기 때문이다.

살만 국왕의 재산은 약 170억 달러(약 19조 2500억원). 파리 에펠탑과 세느강변에 위치한 여러 채의 아파트, 프랑스 남동부 휴양지인 코트다쥐르의 고성, 스페인 휴양지 마벨라의 궁전 등이 포함된다.

사우디 국왕은 재산에 걸맞는 호화 생활로도 유명한데 움직일 때마다 동원되는 수백 명의 수행원과 수백 대의 검은 리무진은 기본이다. 여름에 머물곤 하는 홍해 휴양지의 궁궐엔 국왕만을 위한 의료진이 늘 대기 중이고, 프랑스에서 공수한 캐비어·트러플 등을 요리하는 최고의 셰프가 상주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3월의 아시아 순방이 최근의 사례인데 당시 보도엔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국왕이 황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용기에서 내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인도네시아 방문 땐 459t 무게의 짐과 메르세데스 리무진 2개를 공수했다. 또 인도네시아 체류 중 방문한 모스크에 국왕만을 위한 화장실을 따로 마련됐고, 의회 건물에도 국왕을 위한 맞춤 왕좌가 특별 제작·설치됐다. 신선한 낙타젖을 마시기 위해 낙타를 데리고 다닌다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국왕이라고 사우드 가문에서 최고 부자인 건 아니다. 사우디 뿐 아니라 아랍 왕족 중에서도 가장 부자인 사람은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초대 국왕의 열두 번째 아들인 탈랄 왕자. 지난 5월 포브스 기준 그의 자산 평가액은 178억 달러(약 20조 1000억원)이다. 300억 달러(약 30억 달러)를 넘겼던 때도 있었다.

20년 전까지 그는 부동산으로 돈을 번 아랍 왕족 정도로 여겨졌다. 90년대 초 파산 위기에 몰렸던 미국 시티은행 투자로 글로벌 무대에 데뷔했고, 시티은행이 경기 호전에 따라 주가를 회복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투자 금액 5억 5000만 달러(약 6200억원)가 10억달러(약 1조 1000억원)로 불어나기도 했다.

그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워렌 버핏’으로 불리며 인정받게 됐다. 이후 킹덤 홀딩스를 운용하면서, 애플·아마존·코카콜라·이베이·AOL·포시즌호텔&리조트 등에 투자해 왔다.

저유가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왕족에게 부가 집중된 데 대한 지적이 일고 있다. “국민들은 가난해졌는데, 수천 명에 이르는 왕족들은 여전히 호화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왕족들은 이런 지적에 아랑곳 않는다. 뉴욕타임스(NYT)가 프랑스의 부동산 업자를 인용 보도한 데 따르면, 사우디의 왕자·공주들은 지난 해에도 파리의 값비싼 부동산을 여럿 사들였다. 한 왕자는 3000만 달러(약 339억원) 넘는 1021㎡ 넒이의 호화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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