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PD수첩' 홈페이지 캡처
[김홍배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작성한 ‘MBC 정상화전략 및 추진방향’ 문건과 관련해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MBC ‘PD수첩’ 제작진들이 지난 28일 한 자리에 모였다. 최승호 이우환 PD, 정재홍 작가,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위원장인 김환균 MBC PD 등이 이날 오후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사 과정과 ‘PD수첩’에 대한 외압 정황에 대해 밝혔다.

이자리에서 검찰에서 국정원의 문건을 접한 제작진은 “경영진이 아바타처럼 문건 내용을 그대로 실행해 충격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국정원은 앞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의 일부 내용만 발췌해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PD수첩' 제작진은 검찰에서 보고 온 세부 내용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했다. 

◇ "국정원, 'PD수첩' 보도본부로 보내려 했다"
 
대표적인 것이 'PD수첩'의 보도본부 이관이었다. 국정원 문건에는 "MBC 경영진과 협조해서 봄철 개편을 통해 드라마·예능제작본부 산하의 'PD수첩'을 보도본부 소속으로 이적"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PD저널리즘의 대명사로 불리는 프로그램을 보도본부로 옮겨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했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PD수첩’ 제작진에 따르면, 문건에서 ‘MBC 정상화’ 추진은 크게 3단계로 나눠 명시됐다. 1단계로 2010년 3월 말까지 ‘간부진 인적 쇄신을 통한 편파보도 퇴출’ ‘좌편향 프로그램 제작진 전면쇄신’을 진행하고, 2단계로 4월부터 연말까지 ‘노조 무력화 및 조직 개편으로 근본적 체질 변화를 유도’한다. 3단계에서 ‘소유구조 개편을 논의해 언론 선진화에 동참’, MBC를 민영화시키자는 계획이다.

이우환 PD는 “문건을 보면 당시 국정원이 우리(‘PD수첩’ 제작진)를 간첩 보듯이 했다”며 “김환균, 유현, 강지웅, 이승준, 오행운 등 이름까지 명시해 ‘PD수첩’은 좌편향 제작진 일색으로 좌파 세력의 해방구로 고착화됐다고 적어놨다”고 말했다. 이 PD는 2011년 ‘남북경협 중단 그 후 1년’ 편에 대한 취재 중단 지시에 항의했다가 MBC 용인 드라미아개발단으로 전보 발령됐으며 2012년 파업에 참여해 3개월 대기 발령을 받았다. 2014년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다가 사측과 갈등을 빚어 스케이트장 관리직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이 PD는 “좌파 PD의 농성장 ‘PD수첩’은 보도본부 산하로 옮기고 헤쳐 모여식 조직개편을 이루고, 시사교양국은 해체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2011년 MBC는 ‘PD수첩’이 속한 시사교양국을 편성본부로 옮겼고, 그 다음해 시사교양국을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했다. 최승호 PD는 “‘PD수첩’을 보도본부로 옮기는 건 지나치게 무리가 발생하니 편성본부로 옮긴 것 같다”며 “과거 KBS에서 ‘추적 60분’이 속한 TV제작본부를 보도본부로 이관한 전례가 있었는데, 그게 사측의 게이트키핑 강화에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해 그런 결정을 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2012년 7월 작가 6명과 함께 해고 당한 정재홍 작가는 당시 외압을 받은 일화를 밝히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정 작가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PD수첩’에 팩트체크 팀장이라는 자리가 신설됐는데, 당시 팩트체크 팀장이 정부 비판 아이템은 무조건 ‘킬’시켰다”며 “그 팀장이 이중각 PD의 기획안을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국정원 문건에 ‘PD수첩’ 등 좌편향 제작인의 경우 담당 PD는 물론, 프리랜서 작가까지 전면 교체라고 써 있었다”며 “이미 2010년부터 우리는 전원 잘리는 걸로 돼 있었다. ‘PD수첩’의 상징성 때문에 폐지는 못했지만, 정체성을 없애려는 노력이 오늘날까지 계속 됐다”고 주장했다.

▲ 김환균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 포맷 변경, 사후 심의 강화, 작가 전원 해고

 'PD수첩'을 포함해 정부 비판 성향 프로그램에 대한 '힘빼기' 시도는 이밖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국정원 문건에 나타나 있던 '진행자, 프로그램 포맷, 명칭 변경으로 환골탈태', '사전 심의 절차 및 사후 제재 근거 명문화' 등이 차근차근 실현됐다.

이 PD는 "2011년 3월 윤길용 (시사제작)국장이 오면서 제작진 교체와 진행자를 바꿨다. 그동안은 정보 전달력을 위해 전문 아나운서나 성우가 내레이션을 했다. 시청자들에게 잘 들려야 하고, 명확성도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윤길용 국장과 김철진 부장이 PD들이 직접 내레이션했던 초창기 포맷으로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 PD는 "(제작진에게) 자괴감을 주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겠지만, (담당 간부가) 프로그램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갔다는 거다. 국정원 문건 보니 ('PD수첩'에) 메스 가할 수 있는 걸 구체적으로 정해줬더라. 윤길용-김철진은 내부 반발을 막아가며 (국정원 지침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4대강 수심 6m의 비밀' 이후에 자기들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사내심의를 강화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MBC본부의 170일 파업 직후였던 2012년 7월 25일에 해고된 'PD수첩' 작가 6명 중 한 명인 정재홍 작가는 "(그 계획이) 2010년 3월 문건에 이미 나와 있었던 것"이라며 "정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당시 'PD수첩'에 생긴 팩트체커팀장이 강정마을, 한진중공업, 대북 경협 중단 등 민감한 아이템을 저지하는 데 쓰였다고도 설명했다.

정 작가는 "한 번도 'PD수첩'을 안 해 본 사람이 와서 아이템을 가로막았다. 제주도 7대 자연경관 사기 의혹 아이템을 내놓으니 '정재홍 씨는 왜 정부가 잘 되는 걸 못 보느냐'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날 제작진은 국정원 문건을 조사하는 검찰에게 더 적극적인 노력을 당부하기도 했다. 최 PD는 “검찰에 가서 국정원 문건을 보긴 봤는데, 자료가 너무 부실해 실망스러웠다”며 “국정원과 MBC 내 공범자들의 만남 등 세부 기록들이 국정원 서버에 남아있을 테니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서라도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은 부당노동행위 혐의가 드러난 김장겸 MBC 사장 등 전·현직 임직원 6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8일 밝혔다. 김 사장은 2012년 MBC 파업 이후 노조 활동에 참가한 기자, PD, 아나운서 등에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