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
[김민호 기자]“5만 원권 현금 다발을 검은 007가방에 넣어 전달했다”-○○○○년 ○월 ○일 ○억 원

국정원의 한 간부가 말한 이 한마디에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요동치고 있다. 소위 이 돈의 창고, 즉 ‘국정원의 금고’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명뿐, 기조실장과 예산관이다. 이들 두사람이 국정원 금고의 키를 가지고 현금과 통장을 직접 관리한다.

'박근혜 상납금'의 발원지는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이다. 특수활동비는 '눈먼 돈'으로 불리지만 원장과 기조실의 엄격한 결제를 거쳐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1년에 40억 원이 책정돼 있는데 이 때문에 '청와대 상납'이라는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영수증도 없는 돈이다.

이 돈은 이 전 실장을 거쳐 집행된다. 그런만큼  소위 '이헌수 리스트'는 가히 핵폭탄급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국정 농단 사건으로 재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시 수사 대상에 올랐고, 문고리 권력인 안봉근 이재만 전 비서관이 구속 수감됐다. 조윤선 현기환 전 대통령정무수석이 다시 수사선상에 오르더니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동시 수사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수사 중인 검찰은 이제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을 넘어 정치권 전체를 겨누고 있다.

18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이 전 실장은 올해 9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의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사건’(박근혜 정부가 대기업에 보수단체를 지원하라고 압박한 사건) 수사 때부터 본격적인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앞서 국정원 기조실 산하 예산처 직원들이 거액의 특수활동비 뭉칫돈을 이 전 실장에게 전달한 금전 출입금 명세를 모두 확보했다. 이를테면 ‘○○○○년 ○월 ○일 ○억 원이 실장에게 전달’과 같은 내용이라는 것이다.

통상적이라면 이 같은 기록이 수사기관으로 넘어갈 리가 없지만, 이번에는 국정원이 자체적인 적폐청산 TF를 가동하고 있어서 해당 직원의 진술과 기록 등이 모두 검찰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예산처 직원들도 “이 전 실장 지시로 현금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사의 성역이던 국정원 특수활동비 계좌도 검찰이 추적해 입출금 근거 자료를 확보한 데 이어 이 전 실장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 등과 대조해 추궁의 근거까지 손에 넣었다고 보도했다. 최 의원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고 있던 2014년 10월 1억 원을 줬다는 이병기 전 원장의 자수서에 ‘국정원 인출 계좌’를 증빙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통상 검찰이 기업체의 로비자금 수사 때 자금 담당 임원의 비밀장부를 손에 넣으면 수사의 8분 능선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이번 국정원 수사가 그렇다.

하지만 검찰은 '이헌수 리스트'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변호인이 화끈하게 협조하라고 이 전 실장을 설득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어쨌건 이헌수 전 기조실장의 입에 따라 야당을 물론 여당 의원들도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여의도는 초비상이다.

이미 여의도 정가에는 “야당의원 15명이 수사타깃이다” “묵혀둔 여당의원 리스트 있다더라” 등등의 소문이 돈지 오래다.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한 의원은 주변에 "국정원 돈을 받은 적 없다"며 발끈한 것으로 전해졌고 또 다른 의원은 "명절 떡값 정도"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이헌수 리스트 엔 '최경환' 아래 누구의 이름이 적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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