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잔혹함과 시민들의 분노, 항쟁이 끝난 뒤 광주 모습이 담긴 영상이 38년만인 9일 오후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3에서 처음 공개됐다. 계엄군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광주 도심에 진입하고 있다.
[김승혜 기자]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잔혹함을 대변하는 도심을 경계하는 탱크와 치료받는 시민, 유족의 오열 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38년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동영상: https://youtu.be/z7MieQZo_cA)

9일 오후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3에서는 5·18기록관이 수집한 항쟁 관련 영상물이 상영됐다.

72분 분량의 영상에는 그날의 참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신군부의 잔혹함을 대변하는 총칼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저항하는 시민들의 함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흑백으로 상영된 영상만으로도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총 3개로 나눠진 영상의 첫번째 필름에는 1980년 5월20일부터 27일까지 항쟁이 가장 치열했던 옛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금남로로 집결한 시위대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무장 계엄군이 대치하는 상황이 보여졌다. 한 시민이 단상에 올라 구호를 선창하면 시민들은 따라 외쳤다.

이어 계엄군들의 진압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적십자병원의 영안실에 안치된 시신들을 통해 그들의 잔혹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시신 위에는 피가 스며든 태극기가 덮여 있었다. 영안실 바닥 곳곳의 핏자국도 흑백영상을 통해 선명하게 확인이 가능했다.

또 살짝 비친 시신의 얼굴에서는 핏자국이 선명해 그날의 참혹함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구타와 총상 등으로 부상을 입은 시민들이 병원에 실려오는 모습과 이들을 살리기 위해 '피를 구한다'는 시민들의 외침도 들리는 듯 했다.

 
트럭과 버스를 타고 다니는 시민들은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 앞 궐기대회에 집결해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5월28일부터 6월1일까지 광주의 모습이 담겨있는 두번째·세번째 영상에는 항쟁이 끝난 뒤의 광주의 모습이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도지사 기자단 브리핑과 군 장성들이 웃으며 광주를 둘러보는 장면도 삽입돼 있어 분노를 자아냈다.

군복을 입은 장성들은 옛 전남도청 앞에 도착해 웃으며 서로 악수를 했고 안내를 받으며 현장을 둘러봤다.

기자단은 정돈돼 있는 도심 거리를 카메라에 담았지만 처참한 현장은 치워진 뒤였다.

그러나 공개된 영상의 마지막 장면이 그날의 참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계엄군에 총에 맞아 숨진 아들과 딸, 아버지가 트럭에 실려오자 가족들은 시신을 확인했다.

영정사진을 안고 있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와 오열하는 어머니,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한 곳만 응시하는 아버지 등이 영상에 담겨있었다.

청년들은 시신을 안장할 수십구의 묘지를 삽으로 팠고 유족들은 오열을 하며 관 위에 영정 사진을 올려 놓은 채 장례를 치렀다.

한 어머니는 관에 누워있는 자식을 확인하고 그자리에 주저 앉아 오열했고 한 남성은 가족인 듯한 시신 앞에 앉아 손을 얼굴에 올려 놓은 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나의갑 5·18기록관장은 "5·18 당시 신군부의 탄압으로 인해 광주 관련 영상들은 대부분 회수되거나 삭제됐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처럼 몰래 빼돌려 해외에서 공개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나 관장은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홍보·교육용으로도 사용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한편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은 영상은 16㎜ 흑백필름으로 총 3권이며 필름 중 1권의 10분 분량 정도가 현상돼 있는 상태였다. 기록관은 음화필름(네거티브필름)을 현상한 뒤 디지털 작업을 거친 뒤 이날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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