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옆에서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었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다. 이런 말을 꺼내면 안 되지만, 속으로는 지방선거 화끈하게 지기를 바라는 사람 많을거다.”

자유한국당 관계자가 한 매체에 전한 말이다. 그는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해도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행보를 두고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대선 이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막말’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전세계가 인정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위장평화쇼’라고 비판했고 일본 아사히TV 인터뷰에서는 “회담을 지지하는 것은 좌파뿐”이라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서 열린 지방선거 필승 결의대회에서는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6·13 지방선거가 13일 정확히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후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모든 관심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쏠려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표정관리',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단 초반 판세는 더불어민주당이 우위를 점한 모양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대구 경북(TK) 지역을 제외한 모든 광역단체장을 싹쓸이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흘러 나온다.

민주당은 대외적으로 광역단체장 17곳 중 최소 9곳 이상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서울과 충남, 충북, 대전, 전남, 전북, 광주, 강원, 세종 등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지역들이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전체 17곳 중 TK를 제외한 15곳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묻어난다. 배경은 집권 1년이 넘도록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다. 민주당 지지율도 대통령 지지율을 등에 업고 50% 안팎을 웃돌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8~9일 전국 성인남녀 1001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95% 신뢰 수준·표본오차 ±3.1%p·응답률 5.2%)를 보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76.1%에 달한다. 민주당(56.9%)도 자유한국당(17.5%), 바른미래(5.6%), 정의당(4.5%), 민주평화당(1.8%)에 비해 크게 앞서 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13일 뉴시스에 따르면 지역별로도 TK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민주당이 우세한 상황이다. 부산, 울산, 경남 등 그간 한국당의 텃밭으로 분류됐던 부산경남(PK)에서도 민주당 강세가 관찰된다.

더구나 야권의 무기인 '정권 심판론'이 남북정상회담과 한미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대내외 행사에 묻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점도 민주당에게 유리한 지점이다.

특히 한반도 명운을 좌우할 북미정상회담이 지방선거 하루 전인 다음달 12일로 결정되면서 정권 심판론이 힘을 받기는 더 어려운 상황이 됐다.
 
민주당은 이 기세를 몰아 중앙권력에 이어 지방권력까지 정권을 교체해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국정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지방정부! 내 삶을 바꾸는 투표'를 지방선거 슬로건으로 내걸고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민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보면 TK를 빼고는 질만한 지역이 없는 것 같다. 대구도 김부겸 카드가 성사됐다면 해볼만 했다"며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재보궐선거도 경북 김천(이철우 자유한국당 의원 지역구)을 빼면 질만한 지역이 안 보인다"고도 했다.

악재로 꼽혔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미투(#Me Too) 파문과 김경수 의원의 민주당원 댓글 조작 연루 의혹에도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한 충청권 의원은 "안 전 지사 파장이 남아있지만 상대 후보는 더 아니라는 분위기가 지역에 팽배하다"고 주장했다. 한 PK권 의원은 "댓글 조작 사건으로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서부 경남권에서 오히려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기대가 현실이 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야당이 국회 정상화 전제로 내건 민주당원 댓글 조작 특검이 성사돼 사건 주범인 드루킹(필명)과 현 정권 인사와의 연루 의혹이 당청의 부인에도 사실로 드러나면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공천 과정에서 벌어진 내홍을 수습하지 못하면 본선에서 악재가 될 공산이 크다. '비문'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경기지사 후보 경선에서 '친문' 전해철 의원을 누르고 승리했지만 일부 친문 세력이 중앙일간지에 이 전 지사를 공격하는 광고를 게재하는 등 진영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에서도 문대림 전 청와대 비서관과 김우남 전 민주당 최고위원간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상태다. 경선 과정에서 '유리의 성', '송악산 투기', '당원명부 불법 유출' 등 의혹이 불거졌고 두 예비후보는 상호 고발전을 벌이기도 했다.

고용 등 경제지표 개선이 뚜렷하지 못한 점도 악재로 꼽힌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제주를 찾아 "최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년간 경기가 좋아졌다는 응답이 10% 초반에 불과한 데도 민주당을 찍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기도 했다.

최근 한반도 정세는 일종의 '양날의 검'이다. 북미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조성이라는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정상회담 쇼'라는 야권의 비판이 힘을 얻어 보수층이 결집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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