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연일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던 볼턴 보좌관이 20일째 언론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미 정상회담을 무산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리비아 모델’을 언급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사실을 안 트럼프 대통령은 분노했고, 북미 대화 과정에서 배제시켰다는 것이다.

CNN은 5일(현지시간) 익명의 국무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볼턴 보좌관이 북한의 비핵화 방식으로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분노를 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북·미 대화 과정 전체를 날려버리고자 했던 것”이라고 보도했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4월29일 폭스뉴스 등에 출연해 북한 핵무기의 테네시주 오크리지 이전 등을 주장하며 “리비아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리비아 모델’은 ‘선 핵폐기, 후 보상’의 절차를 뜻하지만 리비아 국가원수였던 무아마르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2003년 핵포기를 선언한 카다피는 2011년 미군이 지원하던 반군에 의해 사살됐다.

실제 북한은 지난달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볼턴 보좌관을 ‘사이비 애국 지사’라 비난하며 회담 재고려 가능성을 언급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카다피의 최후를 거론한데 대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얼뜨기”라 맞받아치면서 긴장은 고조됐다. 결국 지난달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통해 회담 취소를 선언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볼턴 보좌관이 회담을 무산시키려 건 “미국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북한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는지, 미국이 대화를 좌지우지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는 관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했다.

한 소식통은 “볼턴 보좌관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격노시켰고, 이에 두 사람은 백악관에서 이 문제를 놓고 논의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북-미 정상회담 진행 준비뿐만 아니라 북한과 관련된 문제 전반에 관해서도 ‘잘랐다’”고 한다.

실제로 볼턴 보좌관은 그 후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 미국을 방문해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1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때도 배석하지 않았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중요한 안보 문제를 놓고 대통령이 외국 인사 면담을 하는 데 불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볼턴 보좌관은 2003년에도 북한을 비난했다가, 북한의 반발로 북핵 6자회담의 미국 대표단에서 제외된 적이 있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이던 그는 서울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폭군적 독재자’라고 비난하며, 북한 주민들이 그 치하에서 시달린다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이에 북한은 볼턴 보좌관을 “인간 쓰레기, 피에 주린 흡혈귀”라고 비난했다. 또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결정한 회담의 중요성이나, 인간 존엄을 고려할 때 참가할 자격이 없다”며, 곧 시작되는 6자회담에서 그를 배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북한이 볼턴 보좌관을 문제 삼아 6자회담 예비회담을 공전시키자, 부시 행정부도 결국 6자회담 미국 대표로 사실상 내정된 그를 배제하는 조처를 내렸다. 이를 계기로 볼턴 보좌관은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 분야에서 영향력 쇠락을 겪어야 했다.

이날 CNN은 ‘리비아 모델’ 발언은 결국 볼턴 보좌관을 북한 이슈에서 밀려나게 했다고 전하면서 해당 발언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느냐”며 상당히 놀랐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격노했다고 전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지난 1일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했을 당시 볼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도 폼페이오 장관의 건의 때문이었다고 CNN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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