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일 오후 잇따라 미·북 정상회담 장소인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오는 12일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사상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1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 첫 대좌 장면은 그 상징성 만큼이나 국제정치와 동북아 질서에 중대한 함의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도 세계사적으로 냉전의 마지막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라는 점이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6·25 전쟁 종료 이후 65년간 '기술적 전쟁' 상태에서 군사적 대치를 이어온 두 나라의 정상이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맞바꾸는 '빅딜'을 이뤄낸다면 이는 동북아 역내의 최대 불안정성인 한반도의 갈등구조에 종지부를 찍고 항구적 평화체제의 문을 여는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데 국제사회는 주목하고 있다.

특히 북미 양국이 오랜 적대관계의 역사를 넘어 국교를 정식으로 수립하고 경제협력까지 모색한다면 전통적인 냉전적 구조에 갇혀있던 한반도 주변의 역내 질서가 큰 틀의 '데탕트'를 향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평화와 고요'를 뜻하는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마주할 두 정상의 결단 여하에 따라 '냉전의 섬'인 한반도의 운명, 나아가 동북아와 세계 전체 안보지형이 빅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는 셈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회담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싱가포르 공동선언' 또는 '공동성명'에 쏠리고 있다. 북미 정상이 어떤 내용과 방향, 수준에서 합의점을 만들어내느냐가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한반도의 숙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는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공동목표를 적시한 4·27 남북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을 뛰어넘어 구체적인 비핵화의 청사진을 얼마나 담아내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북미 정상은 그동안 다양한 채널로 이뤄져 온 양측간 협상 내용을 토대로 일대일 단독회담과 확대 정상회담 등을 거치며 '운명의 담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요구해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북측이 비핵화의 대가로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보장 '(CVIG)간 주고 받기를 하는데 있어 상호 윈윈의 해법을 끌어내는 것이 목표다.

판문점 실무회담을 벌여온 '성김-최선희 라인'이 싱가포르로 무대를 옮겨 합의문 초안에 대한 막판 세부조율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비핵화 초기조치와 사찰·검증, 이행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보상 조치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고차 방정식을 어떤 식으로 풀어내느냐가 열쇠이다.

핵심 관건은 'CVID'의 명문화 여부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표시 차원에서 어떤 초기 조치를 내놓을지이다.

미국은 단계적 접근을 가미한 '트럼프 모델'을 내세우며 기존의 빅뱅 식 일괄타결 프로세스에서는 한발 물러났지만 CVID원칙을 반드시 합의에 명기해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북측은 '패전국에 적용될 용어'라며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최종 결론이 주목된다.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CVD)를 절충의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초기 단계 조치와 관련해선 북미 양국이 북한의 핵무기 원료 생산 기지인 영변 핵시설을 감시할 사찰단을 1∼2개월 이내에 복귀시키는 방안을 합의문에 넣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미신고 핵시설도 사찰·검증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미국은 핵탄두·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조기 반출·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은 '행동 대 행동' 차원에서 미국이 먼저 구체적인 제재완화와 체제 안전보장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여 이번 합의문에 담길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미국이 북한에 제공할 초기 상응 조치로는 종전 선언과 트럼프 대통령의 불가침 구두 공약,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고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상징적 차원에서 '종전 선언' 논의가 어떤 식으로 가닥을 잡을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종전 선언을 출발점으로 하고 북미 수교, 즉 국교정상화를 종착지로 하는 체제보장 로드맵을 거론한 바 있다. '종전 선언→평화협정→국교정상화'의 프로세스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언문에는 'SCSP'(강하고 연결되고 안전하며 번영함)로 압축되는 북한의 미래 청사진과 경제 보상에 대한 밑그림도 언급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비핵화와 이에 따른 상응 조치들을 서로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시간표'를 합의문에 적시할 수 있을지도 큰 쟁점으로 꼽힌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마지막 해인 2020년 등 비핵화 목표 시한을 명기하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시한을 확약하기 어렵다는 주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두 정상이 틀림없이 비핵화 시간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회담 의제의 양대 축인 비핵화와 체제보장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명문화될지는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즉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 미국이 원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 충족된다면 체제보장과 경제보상 부분도 보다 구체화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비핵화의 반대급부 조치들도 두루뭉술하게 담기거나 일부는 유예될 공산이 있어 보인다.

그 대표적 예가 종전 선언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 종전 합의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이 이뤄질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그 현실화를 위해선 비핵화 부분에 대해 북한이 성의 있는 '응답'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비핵화에 대한 일정정도 담보 없이 종전 선언의 선물부터 안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양측이 이견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쉽지 않아 보임에 따라 이번 공동선언문에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원칙과 방향에 대한 큰 틀에서의 '포괄적 합의'를 담고 구체적 이행 시간표와 방법론 등 '디테일'은 후속회담에 맡기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적 과정의 시작'으로 규정, "일거에 모든 걸 해결할 순 없다"며 여러 차례 후속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그러나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어느 정도 성과물을 낼지에 대해선 그 '공'이 전적으로 두 정상에게 넘어가 있다. 그만큼 섣불리 예단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전례 없는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진행돼온 이번 회담의 특성상으로 보더라도 합의문 초안에 남아있는 여백을 어떻게 채우고 수정할지는 오롯이 이들의 몫으로 남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두 사람의 스타일상 담판의 결과에 따라 파격적 반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핵 문제 해결사를 자처해온 '거래의 달인' 트럼프 대통령과 '은둔의 지도자' 에서 정상국가 정상으로 변모하려는 김 위원장이 예측불허의 리얼리티쇼에서 '통 큰 합의'라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쓸지 주목되는 지점이다.

"비핵화를 하지 않는 건 용납할 수 없다", "협상장 밖으로 걸어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공언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싱가포르로 향하기 전 "한번 뿐인 기회"라며 김 위원장의 결단을 거듭 촉구했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도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세계의 흐름을 바꿀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라고 강조한 바 있다.

두 사람 모두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 수 있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서로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통 큰 결단'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한반도 운명의 물줄기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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