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공작의 한장면 흑금성 역 황정민
[김홍배 기자]“이젠 북한과 접촉하지 않는다. 관련 사업도 할 생각이 없다.”

영화 ‘공작’의 주인공인 '흑금성' 본명 박채서(사진)씨가 1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1993년부터 5년여 안기부 대북공작원으로 살았다. 그러다 대선 이듬해인 98년 그 실체가 공개됐다. 박씨는그때야 자신의 코드네임이 ‘흑금성’이란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공작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한·중 합작 드라마와 영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흑금성'은 누구인가?

최근 화제가 되고있는 영화 '공작'의 주인공은 ‘흑금성’의 본명은 박채서씨다. 박씨는 충청북도의 명문인 청주고를 거쳐 육군 3사관학교(14기)를 졸업하고 직업군인이 되었다. 갓 소령으로 진급한 장교는 육군대학에 입교하는데, 박씨는 3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육군대학을 졸업했다.

2002년 신동아 보도에 따르면 국군정보사령부에 배치된 그는 1991년부터 정보사령부 공작단의 한미공작대 A-23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A-23팀은 미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미 CIA와 함께 대북 우회침투공작을 하는 비밀 조직이었다.

A-23팀은 조총련 조직원인 ‘서재호’라는 사람을 통해 대북 우회공작을 폈다. 서재호를 통한 공작이 마무리될 때쯤(1992년쯤으로 추정), 이 팀은 새로운 공작을 준비하게 되었다.

공작은, 공작을 담당하는 각 팀이 ‘이렇게 공작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겠다’는 기획안을 만들어 상부에 올려 승인을 받으면, 그에 필요한 자금이 내려와 착수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북한 조선로동당의 대남 공작기관인 대외연락부와 조사부,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유사한 국방위원회 직속의 국가안전보위부(이하 보위부)도 비슷한 방법으로 공작한다.

동구권과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초 북한이 직면한 사정은 1997년말 한국이 처한 IMF 경제위기보다 더욱 심각했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북한의 공작기관에도 밀어닥쳤다(북한이 맞은 위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공작금을 지급하던 조선로동당은 “각 공작기관은 자체적으로 공작금을 마련해 공작하라”고 지시했다.

 
A-23팀의 공작, “고첩을 속여라”

정보의 세계에서는, 이상하게도 은밀히 주고받는 정보일수록 상대 정보기관에 재빨리 포착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상대 정보기관에 깊이 침투해 있는 고정간첩(고첩) 때문인데, 고첩의 활약은 생각 밖으로 대단하다고 한다. 

보통의 한국인은 누가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이나 국군기무사 대공처, 그리고 경찰청 보안국 요원인지 알 방법이 없다. 이러한 요원들에 관한 정보는 주민등록 사항부터 거의 모든 것이 위장돼 있기 때문이다. 가족마저도 이들이 어떤 이름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북한의 공작기관에 근무하는 자들은 이를 훤히 꿰고 있다고 한다. 조총련에 포섭돼 대남공작 교육을 받았던 한 인사는 “공작원 교육을 받을 때 남한 각 정보기관에 근무하는 대공요원들의 얼굴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슬라이드 사진을 수십 차례 보며 눈에 익혔다. 대공 요원들의 얼굴 사진을 정밀하게 찍을 정도로 북한 고첩망은 한국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고 말했다.

박소령 팀은 북한 공작조직이 당면한 자금난을 이용한 공작안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엘리트’인 박소령은 무능하고 불평불만이 많은 장교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동료 장교에게 수시로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로 찍히기 시작했다. 

박소령의 이러한 행위는 감찰 파트에 체크되었다. 이 자료는 이후 박소령의 진급을 막는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 박소령이 중령 진급에 떨어진 것이다. 중령 진급을 1차에서 실패한 3사 출신은 어찌 어찌해서 2차나 3차에서 중령으로 진급한다 하더라도, 대령 진급은 언감생심 꿈도 꿔볼 수가 없다.

박소령의 군대 생활은 먹구름만 가득하게 된 것이다. 희망이 없는데 현실이 만족스러울 수 있겠는가? 자연 박소령은 군대 생활에 대해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신용 불량자에다 불평불만에 가득 찬 사람이 되었으니 그의 운명은 ‘예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1993년 3월 박채서씨는 3사 출신의 ‘그렇고 그런’ 소령 중의 한 명으로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박씨의 전역은 정보사에 침투해 있을 북한 고첩의 눈을 속이기 위한 ‘고도의 위장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랫동안 한국에 침투해 있는 고첩들은 맡은 분야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아주 냉철한 눈을 갖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는 이들을 속여넘기려면, 공작관은 완벽하게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아야 한다. 자신의 운명까지도 바꿔가며 온몸을 던질 줄 알아야 진정한 공작관이다.

공개된 비밀공작, 완패한 편승공작

매체에 따르면 흑금성의 공작과정은 전직 안기부 간부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15대 대선을 앞둔 1995년 여러 정당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북한과 접촉하기 시작했는데, 박채서씨는 북한과 접촉한 남한 정치인을 보위부를 통해 확인해 안기부에 보고했다. 그가 파악한 첫번째 정보는 이인제(李仁濟)씨와 관계된 것이었다. 박채서씨는 1997년 8월경 김정일이 자신보다 젊은 이인제씨가 남조선의 대통령에 당선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보고했다.

그해 10월 조평통 부위원장인 안병수(실제 직책은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와 참사인 강덕순(실제로는 보위부 과장으로 계급은 상장)이 베이징에서 이인제씨의 동서인 조철호(趙哲鎬) 동양일보 사장을 만났다. 

북한측을 통해 이 사실은 물론이고 대화내용까지 알게 된 박채서씨는 안기부에 이를 보고하였다. 그때까지도 조철호씨는 통일원에 북한인 접촉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박채서씨가 국내 정치인의 북한 접촉과 관련해 안기부에 보고한 것에는 특히 김대중 대통령과 관계된 인물에 관한 첩보도 적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전 평민당 의원인 최봉구씨(崔鳳九)가 1997년 10월 베이징에서 안병수와 전금철을 만난 것이다.

박씨는 역시 북측을 통해 최씨가 한 말을 전해 듣고 안기부에 알렸다. 최씨 역시 그때까지 북한인 접촉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서울에 돌아온 후 안기부 요원들로부터 조사를 받게 되었다.

1997년 11월20일 한나라당의 정재문(鄭在文) 의원은 베이징 장성호텔에서 북한의 안병수와 강덕순·권민, 그리고 박채서씨를 만났다. 11월22일 박채서씨는 이 만남에서 정의원이 한 말 등을 안기부에 보고했다. 

이 보고 때문에 서울에 돌아온 정의원은 서울 르네상스 호텔에서 안기부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어 박채서씨는 ‘정재문 의원을 만났던 북한의 강덕순이 갑자기 평양으로 소환되었다’는 첩보도 함께 보내왔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 세 사람은 모두 남북교류협력법 위반혐의로 기소돼 벌금 1000만원을 부과받았다.

각 정당이 북한과 비밀리에 접촉하는 것을 보면서 박채서씨는 스스로 한 정당을 선택하게 된다. 북한과 접촉하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북한은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실제로 북한은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첩보를 안기부에 보냈다. 

이러한 보고는 권영해 부장을 중심으로 한 안기부 세력이 북풍을 기획하는 단서가 되었다. 북한은 왜 김대중 후보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김정일이나 북한 최고 정보기관인 보위부의 간부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북한의 세 가지 대남전략 중 북한이 이 시기에 선택한 전술이 셋째 ‘대남 정치공작’이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북한이 왜 김대중 후보의 낙선을 희망했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북한은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김대중 후보 세력이 야당으로 남아 계속해서 보수 여당을 흔드는 것이, 오히려 한국의 여러 정당으로 하여금 대북 접촉을 강화케 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반대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 김대중 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과 정당은 반(反)북한으로 돌아 오히려 북한의 선택지가 줄어든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김대중 후보를 돕기로 한 박채서씨는 비밀리에 국민회의측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국민회의의 창구는 정동영(鄭東泳)·천용택(千容宅) 의원이었다. 박채서씨는 두 의원을 각각 10회·5회씩 만나 북풍 관련 첩보를 제공했다.

이러한 박채서씨의 협조는 오익제·윤흥준을 이용한 안기부의 북풍을 막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앞서 밝혔듯이 박기영·박채서씨 일행은 1997년 8월20일 평양에서 우연히 오익제씨를 만났다. 안기부는 흑금성의 보고를 통해 오익제씨가 평양에 와 있는 것을 알았다.

15대 대선의 파고가 높아가던 그해 11월20일 서울국제우체국은 10월31일 평양시 중구역에서 오익제씨가 김대중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해 안기부에 알렸다. 국과수가 필체를 조사한 결과 편지를 쓴 사람은 오익제씨로 판단되었다.

안기부는 이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김대통령은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편지 내용은 공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때 공개되지 못한 오익제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이북에서는 후광(後廣: 김대중 대통령의 아호)의 대승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이북의 영도자와 합의하여 통일을 성취하겠다는 소신을 표명하였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후광 선생님이 집권하면 금세기 안에 반드시 통일 성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보낸 편지를 잘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은 이날 중앙일보와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북한에서 가장 자주 만난 높은 사람은 누구인가.

“외화벌이 창구를 노렸다. 장성택을 만났다. 북한과 중국에서 만났는데 베이징에서 더 많이 봤다.” 

-김정일 친서를 받은 적은 없나.

“나는 그들 입장에서 포섭된 사람인데 그런 게 가능하지 않다. 북한을 만나면서 여러 번 시험이 있었다. 최고위층이 나를 시험한다는 점은 더 높은 곳에 보고한다는 거고, 단순히 장성택이 아니라 더 윗선에서 본다는 생각은 했다.” 

-98년 신분이 노출됐는데 위협은 없었나.

“안기부에서 나와 가족들의 신변 보호를 했다. 그러던 중 (얼마 되지 않아) 북한이 조총련으로 보내는 전문이 입수됐다. 북한에서 나에 대한 개인적인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때부터 안기부 요원들이 신변 보호를 중단하고 철수했다. 그래도 불안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중국으로 가서 북측과 접촉했는데 그때 안기부가 확보한 전문과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 조총련을 통해 보복을 준비하다가 김정일이 그만두라고 해서 멈춘 것으로 안다.” 

-퇴직한 이후 무엇했나.

“안기부에서 98년 8월 퇴사했다. 신분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계속 근무했을 것 같다. 퇴직금으로 3억원을 받았다. 충분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넉넉했다. 그 돈으로 주식을 했는데 재미를 봤다. 사건 이후에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더라. 중국에 가서 자녀들 교육을 시켰다.”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출연한 삼성 애니콜 광고는 어떻게 만들었나.

“처음엔 안기부가 북한에서 광고 찍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북한과 접촉하려고 공작 차원에서 내가 만든 아이디어였다. 영화처럼 핵물질 탐지를 위해서가 아니고, 북한 수뇌부 침투가 목적이었다. 그러다가 98년에 신분이 드러나 중단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에는 청와대에서 남북관계 자문이 들어왔는데 그때 다시 광고를 추진하게 됐다. 불과 두 달 만에 이뤄졌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안기부에서 남북한 협력 사업을 공작 차원에서 준비했기 때문에 사업추진을 빨리할 수 있었다.” 

-97년 대선 국면에서 박채서씨가 정치권과 교류했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연락하던 정치인은 없었다. 2016년에 출소한 뒤 만났던 정치인들은 있다. 남북관계 관련해 역할을 요청하더라. 2010년에 재판을 받고 간첩이 됐는데 그때 도와주지 않고 인제 와서….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2010년 북한에 군 비밀을 넘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는데.

“군 교범을 넘긴 부분은 인정한다. 내가 잘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때는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해 더 큰 걸 받아내려고 넘겼다. 북한이 개성과 판문점 사이 6개 여단 부대를 철수하고 공단을 만들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겠냐. 이걸 누가 했겠냐. 그러나 나는 군사비밀은 넘기지 않았다. 창피하지만 작전계획 5027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사실 누가 넘겼는지는 안다. 검사에게 ‘수사하면 말하겠다’고 했는데 검사가  국정원 압력을 받고 포기하더라. 나를 간첩으로 만들어서 넘긴 순간 조국에 대한 도리는 끝났다. 누군지는 알지만 이제 내가 왜 거기에 개입하겠냐.”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