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르자히말 산
[김승혜 기자]"산에 가지 않는 산악인은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높은 곳만을 보고 왔다면 앞으로는 깊은 곳을 바라보겠습니다."

2013년 9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제14회 대한민국 산악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김창호(49) 대장은 이처럼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해 5월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8천m 이상 14개 봉우리를 모두 무산소로 등정하면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한국인 최초 황금피켈상 심사위원 특별상, 대한민국 산악대상 등을 받은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인 김 대장은 네팔 히말라야 8개 봉우리 가운데 7번째로 높은 다울라기리(8천167m) 부근에서 등반에 나섰던 대원 4명과 함께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13일(현지시간) 네팔 현지 언론 히말라얀타임스는 김창호 대장을 포함한 5명의 한국인 원정대는 현지시간으로 12일 밤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원정 도중 해발 3천500m 베이스캠프에서 눈폭풍에 따른 산사태에 휩쓸리면서 모두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는 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네팔 경찰에 따르면 12일 밤 산사태가 베이스캠프를 덮쳤으며, 당국은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13일 새벽 헬기를 파견했으나 악천후로 인해 사건 지점에 착륙할 수 없었다.

히말라얀타임스는 이번 사고로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를 이끈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이재훈 씨, 임일진 씨, 유영직 씨, 정준모 씨가 숨졌다고 밝혔다.

▲ 13일(현지시간) 히말라야산맥의 구르자히말산을 등반하다 캠프에서 눈폭풍에 휩쓸려 숨진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 대원들. 히말라얀타임스는 구르자히말산을 등반하던 김창호 대장(왼쪽에서 두번째)을 포함한 5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김창호 대장은 누구?

서울시립대 산악부 출신인 김 대장은 1989년 동계와 1992년 추계 일본 북알프스 원정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산과 인연을 맺었다. 2005년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 루팔벽 중앙 직등 루트를 등정하며 8천m급 봉우리 등정을 시작했다.

김 대장은 7,000m급 2개 봉우리 세계 최초 등정하고, 5~6천급 봉우리 5개도 세계 최초로 등정하는 등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2006년 파키스탄의 가셔브룸 1봉(8천68m)과 2봉(8천35m) 연속 등정에 이어 2007년 여름에는 세계 제2위 봉인 K2(8천611m)와 브로드피크(8천47m) 연속 등정에도 성공했다.

김 대장은 2008년 8천463m에 이르는 네팔의 마칼루 무산소 등정과 8천516m의 로체 무산소 최단시간 등정 세계기록을 세웠다.

지난해에는 네팔의 가장 높은 미등정봉인 '힘중'을 세계 최초로 등반해 클라이밍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황금피켈상 아시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무산소 등정에 집중했던 김 대장의 시선은 '남들이 가보지 못한 길'로 향했다. 바로 신루트 개척이었다.

김 대장은 2017년 5~6월에 걸쳐 '2017 코리안 웨이 인도 원정대'를 꾸려 인도 히말라야 다람수라(6천446m)'와 팝수라(6천451m)에서 새 루트를 개척했다.

김 대장은 최소한의 인원과 장비, 식량만으로 등정하는 '알파인 스타일'로 신루트를 개척했다. 준비 등반으로 7천m급 강가푸르나 서봉을 초등 직전까지 갔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받아 '황금피켈상 심사위원 특별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의 도전은 지난달 또다시 신루트 개척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네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의 구르자히말(7천193m)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 대장은 네팔의 포카라를 경유해 다르방(1천70m)~팔레(1천810m)~구르자 고개(3천257m)~구르자카니 마을(2천620m) 등을 거쳐 구르자히말 남면쪽 케야스 콜라(3천500m)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뒤 남벽 직등 신루트 도전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김 대장을 포함한 5명의 원정대는 현지시간으로 12일 밤 베이스캠프에 몰아닥친 눈폭풍에 휩쓸리면서 끝내 '영원한 산사나이'로 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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