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박2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8일 오전 전용차량 '캐딜락 원'을 타고 서울 용산미군기지를 나서고 있다.
[김승혜 기자]1933년, GM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고급 차종인 캐딜락 때문이었다.

1921년부터 부유층을 대상으로 판매했던 캐딜락의 주문이 1929년 대공황 이후로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회사의 목줄을 죄기 시작했던 것이다. 회사는 캐딜락을 포기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GM의 관리자 중에 니콜라스 드레이스타트(Nicholas Dreystadt)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대도시의 수리 서비스센터에서 구경을 하다가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수리된 차를 몰고 가는 흑인들이 눈에 띠었던 것이다. 확인을 해보니 흑인이 차의 주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는 인종차별이 심했다. 특히 캐딜락 같은 고급 승용차는 흑인들에게 팔지 않았다. 그런데도 흑인들이 캐딜락을 버젓이 몰고 나타나 수리 서비스를 받아 돌아가는 것이었다.

드레이스타트는 권투선수와 가수, 의사 등 엘리트 흑인 계층의 경우 캐딜락을 구매할 수 있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성공의 상징’으로 캐딜락을 타고 싶어했다. 인종차별 때문에 고급 주택가에서 살 수도 없었고, 고급 식당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캐딜락은 백인에게 웃돈을 주고 구매대행을 시킬 수 있었다.

드레이스타트는 성공한 흑인들에게 캐딜락을 판다면, 생산라인 폐쇄를 막을 수 있다고 회사에 건의했다. 흑인에게 고급차를 판다는 것은 당시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GM은 논란 끝에 캐딜락을 흑인에게도 팔기로 결정했다. 이듬해인 1934년, 캐딜락 판매는 무려 70퍼센트나 늘어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혁신은 언제나 눈에서 시작된다. 관찰이 통찰을 이끌어 내며, 통찰은 창조로 연결된다. 아이디어 뱅크로 불리는 이들 중에는 사람 구경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의 외양이나 표정, 몸짓 등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불을 켜고 뭔가 대단한 것을 찾아내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편안하게 구경하며 왕성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새로운 것들에 대해 유별난 욕구를 갖고 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옷을 입었을까?’

‘저 여자는 얼마나 오래 전화 통화를 할까?’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은 일상의 사소한 궁금증에도 쉽게 매혹 당한다. 그렇게 구경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관찰력이 좋아진다. 일상적인 것을 구경해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본다.

캘러웨이보다 먼저 노인들의 골프 회피 현상을 발견한 업계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GM의 딜러들은 드레이스타트가 나서기 훨씬 전부터 흑인들의 캐딜락 열풍을 빤히 구경하고 있었다. 캘러웨이와 드레이스타트도 똑같이 구경을 했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보았다.

이런 사람들은 다수의 관점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다르게 보는 것으로부터 모든 게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르게 볼 줄 알면, 그 이면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상식이나 통념이라는 규칙에서 벗어난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파고들게 된다.

캘러웨이는 노인들이 골프를 회피하는 이유가 마음속의 헛 스윙 두려움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드레이스타트도 캐딜락의 암거래를 통해 그 이면에 있는 흑인 부유층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했다. 관찰 대상의 환경으로까지 범위를 확대한다.

그런 다음 관찰 대상이 주변 환경과 어떤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주목한다. 어떤 동기와 역학에 의해 움직이는지 시스템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 많이 관찰할수록 더 많이 깨닫는다.

캘러웨이는 노인들이 눈을 감고도 공을 맞출 수 있게 거대한 헤드를 가진 ‘빅 버사’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당시 골프업계에게 새로운 법칙과 가능성을 제시한 혁명이었다.

‘빅 버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드라이버의 헤드 크기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드레이스타트는 흑인도 캐딜락을 공식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법칙을 만들어냈다. GM은 흑인 판매를 통해 기사회생이라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젖혔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캘러웨이나 드레이스타트나 운이 좋아서 성공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구경 한 번 잘 한 것이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식으로 말이다. 과거의 혁신, 그것도 남의 통찰은 원래 쉬워 보이는 게 인간 심리다. 지금 보기에는 단순하고 뻔해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대단한 통찰력이 아니라면 찾아내지 못했을 성공의 비밀이다. 아르키메데스나 뉴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남들이 보지 못한, 혹은 지나쳐 버린, 미세한 차이를 문득 알아차린 것뿐이다. 하지만 그 사소한 차이가 곧 본질적 차이이며, 위대한 발견이다. 관찰이란, 대상과 내면의 상호작용을 통해 뭔가가 일어나기 직전의 고요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노천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열심히 구경하는 것이다.

-위즈덤하우스, <사소한 차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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