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선 박사, 직지대모
[김승혜 기자]'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문서들' '프랑스 도서관에 방치돼 있던 이 보물을 발견한 이' '집요한 추적 끝에 조국에 돌려보내는 발판을 마련한 이', 바로 '직지 대모' '문화 독립운동가'로 불린 재불 사학자 박병선 박사 앞에 붙는 수식어다.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범대 사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한국 전쟁 직후 한국 여성 최초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67년 프랑스 국립 도서관 사서로 취직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한 우리 도서가 많다"며 한국의 옛 문헌을 찾아달라는 스승의 당부를 잊지 않은 그녀는 도서관을 뒤지고 또 뒤졌다.

그러던 어느날 중국서적 코너에서 한국의 고서 하나를 발견한다.

바로 '직지심체요절'.

직지를 읽은 그녀는 놀라운 구절을 발견한다. 이 책은 쇠를 부어 만든 글자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직지심체요절이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금속활자 인쇄본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후 1972년 파리 고서전에 참가한 박병선은 직지심체요철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발표한다. 당시 동양여자의 발언에 자존심이 상한 서구학자들은 비판아닌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녀가 정작 충격을 받은건 한국 학계의 반응이었다.

"여자가 그런 일을 해낼리 없다. 거짓말 하지마라"

이후 진행된 철저한 국제적 검증, 직지는 1년이 지나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 책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됐다.

그러나 박병선의 집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5년 프랑스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냈다.

책을 펼치자 먹향이 코로 가득 들어오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그것은 한국 사람만이 중요한 자료이지 외국 사람들한테는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거였어요."

이에 격분한 프랑스는 그녀를 기밀유출 혐의로 해고를 시켰다.

그녀는 해고 이후 방문객으로 매일 도서관을 방문, 의궤를 대여받아 연구에 매진했다. 그리고 10여 년간 홀로 외규장각 의궤의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드디어 2011년 6월, 한국은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약탈당한 지 145년 만에 대여 형태로 돌려받게 된다.

당시 그녀는 국내 언론에 이런 말을 했다.

"프랑스 법은 법대로 있고 여러 가지 (사정)이 있긴 하지만 여하튼 '대여'라는 말을 빼야 한다고..."

"제가 제 여생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제가 살아 있는 동안 그것이나마 다 수집해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사만 뽑아서 이제까지 알려졌던 것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한국 독립운동사에 큰 이바지가 될 것입니다."

▲ 박병선 박사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것만큼은 위로를 주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뭘 했다고 여러분이 생각해주시는지..."

이역만리 타향 땅에서 겨레의 얼을 되찾는 데 한평생을 쏟아부은 문화 독립운동가. 그럼에도 겸손했던 사람, 우리 문화유산 수호에 평생을 바친 그녀는 2011년 11월 22일 밤 10시40분 프랑스 파리시내 15구 잔 가르니에 병원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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