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경석 원장
동서양 의학 역사를 보면 당대 유명했던 의사들은 의학자이기 전에 철학자요 사상가들이었다. 즉 눈에 보이는 물질 현상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의식과 정신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환자의 병은 물론이고 병에 걸린 환자를 보는 안목이 깊었다. 그래서 환자들의 심신은 치료할 수 있는 삶의 대가들이었다.

그러나 연봉과 학벌 위주의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 됨됨이의 기준이 점수로만 매겨지면서 정교한 의학 기술과 높은 지식은 갖췄지만 인격과 교양이 부족한 의사들이 적지 않게 배출되고 있다. 그 좋은 예로, 최근 미국 의사 2만 727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남자 의사의 12.9%와 여자 의사의 21.4%가 음주 과다나 알코올 중독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그리고 음주 문제는 곧 의료 사고와 연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를 보면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전화 인터뷰에서 약 79%의 환자들이 의사를 믿는 것으로 나왔는데, 의사 19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는 약 10%의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약 33%의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의료 실수를 숨기며, 약 40%의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의사와 제약 회사 간의 내부 거래를 숨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이런 연구 결과는 없지만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가 갑의 위치에 있고 환자들은 그저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 그러나 의학 지식은 더 이상 의사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건강의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환자들은 현대 의학에만 의존하지 않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이제 의사들은 일반인들이 현대 의학을 불신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더 높은 도덕과 윤리 의식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재정립해야 한다.

자칫하면 의사가 ‘믿는 도끼’가 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의사는 환자의 몸 안에 있고, 그 몸을 만든 힘이 곧 환자를 고친다. 착한 의사는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Do no harm)"는 선서를 지키고 나쁜 의사는 “환자에게 알려진 해를 끼친다(Do known harm)"는 선서를 지킨다.

필자는 착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한다. 필자가 환자를 볼 때의 철학은 다음과 같다.

“환자가 치료받아 나으면 신의 뜻이고 안 나으면 나의 잘못이다.”

진료실에서 빛나는 의사
 
요즘 한국 종편 방송에 의사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제법 있다. 예전에는 전문가 자격으로 조언하는 역할에 그쳤지만 지금은 ‘얼짱닥터’니 ‘몸짱닥터’니 하며 직접 프로그램을 맡아 다양한 의학 지식부터 업계 비밀까지 소개한다. 의학 정보와 재미를 갖춘 교양 예능 짬뽕 프로인데, 출연하는 의사들 중엔 협찬비 형식으로 돈을 내고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현행 의료법에는 방송에서 병원 광고를 직접 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직접 광고하는 셈이다.

명의(名醫)는 방송을 탈 수 있지만 방송 탄다고 모두 명의는 아니다. 의사 가운은 진료실에 있을 때에야 그 빛을 발한다. 돈 주고 찍은 방송 출연 사진이 병원 복도에 걸릴 때마다 병원은 기념관이 된다. 환자는 관람객이 아니고, 치료비는 아니다. 실력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영리한 의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똑똑한 의사들이 재미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시청자들의 실천 여부다. 뭐든 알아도 실천이 없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의사들이 다 아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잘 선별해서 들을 수 있는 내공이 필요하다. 사실 건강해지려면 이런 방송만 보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햇볕 쪼이며 동네 한 바퀴 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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