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명 스님. (사진=불교닷컴 제공)
[김승혜 기자] 한국 불교계의 대표 선승으로 평가받는 경북 문경 봉암사의 적명스님(82세)이 24일 입적했다.

이날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스님은 이 날 오전 사찰 뒤 희양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다른 승려들과 떨어지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스님들은 이 날 오후 3시 43분 119에 실종 신고를 했다.

적명 스님은 오후 4시 36분께 근처 계곡에서 다른 스님에게 발견됐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입적한 적명스님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가장 존경받는 수행자 가운데 한 명이다. 적명스님은 평생을 정진하며 이판과 사판을 막론하고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지난 2018년 5월 수행력과 지도력의 상징이자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에 올랐지만 적명스님은 봉암사를 떠나지 않았다.

불교신문에 따르면 대중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았던 적명스님이 맡았던 소임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봉암사 수좌와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등 손에 꼽을 정도다. 봉암사 대중들의 추천으로 최고 어른인 조실에 추대하고자 했지만 스님은 끝까지 고사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수행자로서 끝까지 수좌로 남아 역할을 하면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스무살 약관의 나이에 출가한 이후 평생 토굴과 암자에서 수행정진해 온 적명스님은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봉암사 결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봉암사 대중들을 이끌며 간화선 중심의 조계종 수행 전통 계승과 수행 가풍 진작에 앞장서왔다.

“수행은 일상 속에서 꾸준히 해야 한다”, “주어진 상황을 견디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라고 강조할 만큼 일상과 수행을 다르지 않음을 몸소 실천해왔다. 목숨 걸고 도를 닦고 치열하게 정진하는 것이 곧 한국불교가 대중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한 길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속세를 멀리한 수행자의 삶을 살며 언론과의 만남 역시 드물었던 적명스님은 지난 2017년 불교신문 신년특집 인터뷰를 통해 불자들과 만나기도 했다. 당시 적명스님은 불자들에게 “나의 이름이나 몸뚱이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삶을 나로 받아들여야 빛이 보일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간화선 세계화에도 앞장섰다. 간화선 국제학술회의 등 간화선을 알릴 수 있는 자리라며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고, 세계적인 명상 지도자 아잔브람 스님과 만나 법담을 나누며 한국불교 수행의 정수를 알렸다. 문경세계명상마을 건립추진위원회와 함께 한국불교 전통수행법인 참선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릴 문경세계명상마을 건립에도 힘을 보탰다.

지난 2018년 세계명상마을 기공식 당시 적명스님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평화정착 문제는 온 국민의 화두가 됐다. 동북아의 평화, 세계평화 구현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이때, 차별과 다름을 넘어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구현해 낼 명상마을 건립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하며 세계명상마을 건립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불교계 한 관계자는 "조계종 선원의 대표 선승이셨다"며 "수행 정신과 개혁의 상징이었다"고 적명스님의 입적을 안타까워했다.

봉암사는 1년에 딱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에만 산문을 열고 1년 내내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는 참선 수행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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