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대표적인 ‘친노(親盧)’ 성향의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박선숙 공보수석에 이어 노무현 정부시절 홍보수석을 지낸 바 있다. 전공인 국제정치보다 언론 및 현실 정치에 깊숙이 개입, ‘부전공’으로 오히려 빛을 발휘한 인물이란 평도 듣고 있다.

그는 오랜 세월 선거 연구에 천착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선거 예측가능한가>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내용면에서 선거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결과뿐 아니라 정치 논평가로서 활동해온 저자의 날카롭고 명쾌한 선거 분석과 예측 또한 담고 있다는 평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유권자)의 세대교체의 힘’이다. 통합당은 코로나라는 위기상황이 어떻게 표로 연결될지 가늠하지 못했다. IMF 위기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살아남은 보수 세력이라, 세대교체의 힘을 간과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론적으로는 세대교체에 의해 앞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다고 그렇게 오래 주장을 해 놓고도 현실에서 이렇게 빨리 급진적으로 일어날 줄은 미처 몰랐었던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총선분석 연작 세 번째로 <보수 이미 비주류 됐는데, 그들만 스스로 주류인 줄 안다>라는 글을 올렸다.

다음은 조기숙 교수의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 조기숙 교수(전 청와대 홍보수석)
1. 보수가 비주류됐고, 민주당이 주류가 되었다는 건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는 박성민 대표의 워딩입니다. 이번 민주당 선거 승리의 핵심을 세대교체란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너무나 정확합니다.

그런데 이 분들의 한계는 이론이 없어 선거 분석에 논리성이 결여됐다는 점입니다. 즉, 노무현대통령의 실패로 2007년, 2008년 심판 받은 후 노무현 사후 민주당이 2010년부터 다시 살아났다는 주장입니다. 어떻게 실패한 사람이 죽었다고 부활하죠? 우리 국민이 감상적이란 말인데 그러면 이번 선거도 감상 열풍이 되어야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번 선거는 또 세대교체로 정리하니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노무현을 부정한 선거에서 패배가 왜 노무현 책임인가?>

2. 1987년 대선 이후 지역정당이 탄생한 후 정당지지도만 보면 한 번도 민주당이 보수당을 이긴 적이 없습니다. IMF 위기 이후에도 민주당은 겨우 백석을 했고 보수당은 압도적 1당이 되었죠. 열린우리당이 아주 잠시 보수당의 정당지지도를 넘었던 적이 있는데 많은 분들이 탄핵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탄핵 이전에 이미 40%를 넘었습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은 노무현을 부정하고 친노를 배제한 선거였습니다. 2007년에는 노무현 찍은 5백만 표가 기권을 했고, 2008년 투표율이 46%였어요. 이는 잠재적 민주당 지지자가 노무현을 심판하려고 기권한 게 아니라 노무현이 빠진 선거라서 기권한 겁니다. 친노를 배제한 민주당이 심판받은 선거였지요. 그런데 선거연구로 유명한 학자들 모두가 박성민씨처럼 노무현이 경제 실정으로 심판받았다고 주장했어요.

<2007년 대선 해석 제대로 해야 2020 민주당 대승 이해가능>

3. 손학규의 민주당, 김한길.안철수의 새정연 등 친노가 배제된 민주당의 만년 지지도는 20%였습니다. 여기에 친노 지도부가 들어서면 40%에 육박했습니다. 노무현의 실패가 아니라 정동영이 열린우리당을 깨고 도로 민주당을 만들어 소수당으로 전락한 게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대패의 핵심 이유입니다. 그만큼 정당일체감이 선거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로 제가 2011년에 쓴 논문에 보면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동영보다는 이명박에 표를 더 줬습니다. 영남의 젊은층은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고 호남의 젊은층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하락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정당일체감이 노무현 정부 시기에 처음으로 강고하게 만들어졌고 그들이 노무현이 경제를 망쳤다는 핑계로 새누리당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이 경제를 망쳤다는 게 객관적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에 대한 정당일체감이 이명박 당선의 가장 큰 요인으로 나타나고 경제실정인식은 노무현지지와 무관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명박이 북한에 실용주의를 취하겠다고 해서 비기는 전략으로 가고, 썬그라스를 끼고 박정희 코스프레를 한 게 먹힌 겁니다.

<정당재편성 시동은 2005년 노무현에 의해 시작>

4.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정당일체감이 언제 생겨난 걸까요? 그 이전에도 여야성향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보수정당이 만년 여당이었으니 여는 보수, 야는 민주 이런 구도였는데 이것이 이념이나 정책을 기반으로 한 정당일체감으로 등장한 건 2005년 이후입니다. 노무현의 양극화 담론, 복지정책, 비전2030이 보수 지지자를 발전주의 이념으로 뭉치게 한 거지요. 노무현의 지지도가 낮았던 건 언론의 왜곡보도 탓도 크지만 처음으로 복지와 분배주의가 담론으로 등장한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복지와 분배는 낯선 용어였으니까요. 저는 이것이 노무현에게는 일대 도박이지만 미래에 민주당을 다수당으로 만드는 결단이었다고 봅니다. 그 혜택을 다시 집권할 민주당 대통령이 누릴 것이라고 저도 노대통령도 알았지만 그 분이 문프가 될 줄은 몰랐지요.

2007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발전과 분배라는 균열이 발견됩니다. 정당일체감의 핵심 이념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무엇보다 2002년 압도적으로 고학력, 중산층의 지지를 받고 노무현은 당선되었는데 2007년엔 중하층 지지자가 유입되기 시작하고 중상층이 이탈합니다. 계층투표가 시작된 겁니다. 강남이 원래는 민주당 텃밭이었어요. 김영삼정부 때부터 보수당 지지로 돌아섰는데 노대통령이 부동산과 전쟁을 하면서 강남이 완전히 보수의 아성이 됩니다. 고소득자가 가장 먼저 이익투표를 한 셈인데, 보수당을 지지하던 중하층이 노무현 지지로 선회한 건 지역주의를 깨고 이익투표를 원했던 노무현의 소원이 이미 이루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문덕만이 아니라 이노덕임을 알고 미래를 준비해야>

5. 이번 선거로 돌아와서 3-40대가 가장 높은 비율로 민주당을 지지했습니다. 노사모를 만들어 노무현을 발굴한 세대는 386, 지금의 50대입니다. 당시 20대는 지금의 20대처럼 무당파층이 다수였습니다. 그런데 2002년 대선을 거치고 나서 20대가 30대보다 더 진보적으로 변화됩니다. 선거기간에 노무현에 의한 학습이 이루어진 것이죠. 이들이 노무현 키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을 발굴했던 50대 또한 가치지향적이고 경제는 실용주의를 원하는 탈물질주의 대표 세대입니다. 이들이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갈랐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20대는 민주당과 미통당 지지가 엇비슷합니다. 물론 남녀가 정반대로 다른 당을 지지합니다. 지지비율도 3-40대에 비해 낮습니다. 이 말은 민주당의 주류 위치가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20대에 첫 투표를 어디에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동물도 태어나 처음 본 물체를 엄마라고 인식하고 따라 다니듯이 20대를 잡지 못하는 정당은 미래가 없습니다. 민주당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선거를 치렀고 수도권 선거가 얼마나 박빙이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민주당이 주류가 된 게 아니라 양당이 이제야 노무현 덕분에 균형을 잡게 되었는데 이번엔 코로나 정국에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의 시대는 노무현이 없는 세계에 올 수밖에 없는 이유>

6. 정당일체감은 한 번 형성되면 웬만해선 변하지 않으므로 세대교체와 20대의 동원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자는 충성도가 낮고 까탈스러운 편입니다. 그나마 박근혜의 탄핵과 세월호의 악몽이 세대교체에 의한 변화에 박차를 가해줘서 이렇게 빨리 다수당이 된 겁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로 지속가능한 지지를 만들어낼 새로운 숙제를 받아든 셈입니다.

노무현의 시대가 노무현이 없는 세상에 올 수밖에 없는 건 새로운 정당일체감 형성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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