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지배구조의 정점, 경영권 상실 우려하는 듯

 
돈 되는 자산이라면 무엇이든 현금화해야 할텐데 유독 오너 일가의 동부화재 지분에 대해서는 "절대 내놓을 수 없다"며 강한 집착을 보여주고 있다.

애정인가 고집인가. 무슨 이유로 동부화재 지분은 한주도 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인가.

24일 금융권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동부그룹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계자들과 긴급 회동을 갖고 구조조정 계획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채권단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장남 남호씨가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내놓으라고 재차 요구했다.

동부화재 지분에 대한 채권단의 담보제공 요구는 전날 있었던 회동을 비롯해 채권단이 그간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안이었다.

하지만 동부그룹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동부측은 채권단의 요구를 그룹차원에서 공식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동부화재 지분 담보 제출 요구는 동부측에서 '때려 죽여도 그건 못한다'고 버텼다"고 전했다.

그룹의 사활이 걸린 상황에서도 동부그룹이 계열사 지분에 이토록 목을 매는 이유는 뭘까?

해답은 그룹의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동부화재는 그룹 소속들 중 비교적 재무상태가 건실하고 제조업 계열사들과는 확연하게 분리된 상태인 금융계열사 지분을 상당분 보유하고 있다. 지난 3월말 기준으로 동부화재는 동부생명 92.94%, 동부증권 19.92%, 동부캐피탈 10% 등의 주식을 갖고 있으며, 비금융 계열사인 동부엘앤에스 100%, 동부제철 4.99%, 동부엔지니어링 1.98%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동부화재가 사실상 동부그룹의 금융지주회사인 셈이다.

게다가 동부화재는 시장 점유율 15%로 삼성화재보험에 이어 손해보업업계 2위를 달리고 있을 만큼 견실한 회사다. 매년 3000억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내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도 맡고 있다.

채권단이 남호씨의 동부화재 지분을 요구하는 것은 김준기 회장이 아닌 남호씨가 이 회사 개인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기준으로 김남호씨는 동부화재 주식 941만주, 13.29%를 갖고 있다. 김준기 회장은 490여만주로 6,93%를 가진 개인 2대 주주다.

채권단이 남호씨의 주식을 담보로 요구하는 것은 그룹 구조조정이 실패할 경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동부화재를 매각하면 충분히 채권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동부화재의 지분 100%가 매각될 경우 최소 5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4위권인 LIG손해보험이 매각과정에서 경쟁이 과열되며 3조원 넘는 몸값을 받을 만큼 동부화재는 이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에 매각가격이 형성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매각될 경우 인수 후보군도 풍부하다. LIG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고배를 마신 롯데그룹과, 동양생명, 자베즈파트너스 등은 이미 실탄까지 확보한 인수후보들이다. 여기에 국내 다른 대기업과 사모펀드(PEF)들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동부화재를 매각할 경우 손쉽게 '원금+α'를 손에 쥘 수 있는 셈이다.

반면 동부그룹과 김준기 회장 입장에서는 동부화재 지분의 담보제공은 남는 것 없는 장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STX나 동양그룹 사례에서 보듯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룹 경영권을 뺏길 우려가 큰데다, 회사가 매각된 뒤 빚잔치를 하고 나면 김 회장 일가에 쥐어지는 돈이 거의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김 회장 일가는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 상당량을 이미 은행과 증권사 등에 담보로 제공한 상태다.

남호씨의 경우 3월말 기준으로 앨로이에이앤지제일차(주) 200만주(2.28%), 하나은행 154만주(2.18%), 대신증권 130만주(1.84%)우리은행 107만주(1.51%), 외환은행 103만주(1.45%) 등을 주식담보로 제공했다. 이밖에도 국민은행, 전북은행, 한국투자증권, KDB대우증권에도 수백만주가 담보로 들어가 있다.

김준기 회장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하나은행 115만주(1.62%) 외환은행 56만주(0.79%), 광주은행 67만주(0.95%) 등이 주식담보로 제공됐다.

오너일가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막대한 부채가 더 있는 셈이다. 이렇다보니 지분을 담보로 내놓는 것은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김 회장과 남호씨가 동부화재를 주식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비금융 계열사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동부화재 지분을 내놓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동부화재의 그룹내 지위나 자금흐름을 볼 때 오너일가가 최후의 보루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다만 채권단의 인내심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팔아야 할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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