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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코로나 확진 외국인 '체험기'..."한국서 기대할 수 있는 것"
정재원 기자  |  sisajjw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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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02  15: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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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CNN 캡쳐]
[정재원 기자]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신규 확진자가 1일 하루 30명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발생 환자는 8명으로 이틀 연속 한 자리 수를 유지, 안정세를 보였다. 반면 해외유입 환자는 22명을 기록했다.

최근의 국내 코로나 환자수는 국내 감염 보다는 국내로 입국한 외국인들의 수가 더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 직접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과정을 겪은 외국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한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2일 가생이닷검은 "한국에서 코로나 확진시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란 제목의 해당 글을 번역하면서 "원문에는 현재 시제로 되어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과거 시제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워서 과제 시제로 번역했다"고 했다.

   
▲ 출처: 가생이닷컴
다음은 해당글 전문이다.

몇 달 전부터 COVID 공포가 고조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손 소독제를 사용하고, 종교처럼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많은 주의를 기울여서 밀폐되거나 번잡한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배달로 모든 음식과 식료품을 주문해 문 밖에 두게 하고, 사람이 가장 적은 시간(예를 들어 오전 3시)에는 빨래방 같은 곳만 방문했다. 물건값을 내기 전후에 신용카드는 반드시 닦고, 편의점에 들어가기 전에 숨을 참기도 했다.

우리는 아무런 증상도 없었고 의심받을 것도 없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했으며 꽤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위생수칙을 잘 지키며) 지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런 안전 의식은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았다.

동반자는 어느 날 고열 때문에 깨어났고 많은 주의심에서 만일을 위해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로 했다. 나는 (바이러스로 의심되는) 그런 증상은 전혀 경험하지 않았으며, 그 증상은 그 주에 겪었던 수면 부족/감기와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었다.

동반자의 테스트 결과는 양성반응이었다. 법에 따르면, 나도 확진자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여기서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일어난 일을 기록했다.

테스트(검사)

시 보건부에서 전화해서 구급차가 나를 데리러 와서 검사 시설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도착하자마자, 이웃들이 마스크를 쓰고 안에 플라스틱으로 덮인 구급차에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외국인을 응시했다.

테스트 부스는 창문이 달린 금속 선적 컨테이너로, 검사 대상의 코와 목에 플라스틱 지렛대를 들이댔다. 그 때 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와사비를 코로 흡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후 같은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공무원들이 나를 다시 부를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호출

나는 몇 시간 후에 전화를 받고 45분 동안 짐을 챙기고 병원에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이 유일한 경고이며, 추가적인 여지는 없었다.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엘리베이터/계단을 타고 같은 문을 만질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집에서 그냥 격리되어 있는 것은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은 나에게 병원으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이때쯤 보건부는 이미 병원으로부터 새로운 사례를 통보받았고, 우리의 정보는 여러 정부 기관과 공유되어 언론에 유출되었다. 나는 옷, 노트북, 전화기, 충전기, 그리고 배낭을 챙겼고, 그들은 나를 데리러 돌아왔다.

사생활 침해의 시작

도착하자마자, 한 사진작가가 뉴스 이야기를 위해 내가 병원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나와 동반자에게 몇 분마다 전화를 걸어서 "편의점에서 어떤 신용카드를 사용하셨나요? 어느 가게를 방문하셨나요? 몇 시에 택시를 탔었나요? 어디 갔었나요? 어디서 일합니까? 어디 사십니까?" 등 이와 정확히 똑같은 질문들을 시청의 또 다른 공무원들이 반복해서 물어보았고, 또 다시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동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물어보았다.

우리의 전화번호는 질문으로 우리를 부르는 "공무원들"의 전화로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정부 관계자를 자처하며 모두 같거나 비슷한 질문을 했다. 공중 보건과 안전을 위해, 우리는 며칠 동안 이러한 전화에 성실하게 응답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이야기할 것이다.

병원에 있는 간호사들은 검진 방문 시에도 비슷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며, 다른 동반자에게 자문자답하지 않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어디서 일하나요? 그들은 어디에 살고 있나요?" 우리는 이 정보가 유출되고, 다른 사람들의 가십거리로 쓰이며, 이야기의 프레임으로 쓰이는 것을 알게 되어서 답변을 거부했다.

음압 감옥

도착 즉시 이중으로 된 음압(진공) 격리실이 제공되었다. 나는 내 사생활의 의무적인 포기 및 책임에 대해 서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CCTV는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방에는 침대와 TV,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린 욕실, 하루 세 끼(대부분 두부, 밥, 김치)가 있었다.

그 이후로 매일 3번 직접 사람이 오거나 인터컴을 통해 우리를 점검했다. 혈압, 온도, 그리고 (육체적, 심리적) 안정 상태에 대한 질문들 등이었다.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이러한 과정은 처음에는 과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했다. 심신 건강이 감옥과 비슷하게 악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방의 비용은 하루에 150달러 정도며, 정부 프로그램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중에 체크아웃에서 항의해도 내가 직접 계산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것은 이 이야기의 다음 부분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이다.

공황 상태

매일 같은 음식, 걷기에 작은 공간, 밤에 복도등이 켜지고, 새벽 4시에 인터컴을 통해 경보가 울렸고, 이방인의 반사작용을 확인하기 위해 (환자의) 방에 들어가는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로부터 사생활이 부족하다는 끊임없는 느낌이 들었다. 주간과 격주로 케이블타이 와사비 테스트를 하고, 외로움, 그리고 직장에 출근할 수 없고, 심지어 청구서를 지불을 위해 카드 갱신 목적으로 은행에 방문하는 것조차 불가능하여 실직(그리고 천천히 쌓이는 경비와 부채)으로 인한 손실로 피해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뉴스를 읽기 시작했다. 기사, TV 뉴스, 블로그가 우리에 대해 갑자기 언급하기 시작했다. 매일의 동향, 무엇을 샀는지, 어디를 방문했는지, 어디서 살았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나이, 국적 등이 그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이것이 지치는 기분에도 불구하고, 공중 보건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날 우리가 30초 동안 방문했던 가게들은 며칠 동안 방역 소독을 받기 위해 문을 닫았다. 여러 기사에서 우리가 COVID가 있는 줄 알면서도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아 바로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잘못(거짓된) 주장했다. 이 노골적인 거짓말은 다른 기사에서도 반복되었고, 이야기를 꾸며내곤 했는데, 이 기사에서는 우리가 모든 것을 FM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납세자들의 피를 빨아먹는다” 거나 “교훈을 줘야 한다” 등 네티즌들이 더 많은 정보를 스토킹하고 검색했다.

법적으로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여 협조했던 공무원들이 엉성하고 부주의하고 우리의 정보를 공유하며 유출시킬 때 이 현실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음에 전화를 받았을 때 우리는 그들이 "그래요, 어려운 거 알아요. 난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았어요. 난 당신 탓을 하지 않아요. 우린 모든 걸 알고 있으니 전화 받고 싶지 않으면 받지 않아도 돼요” 라고 말하는 느낌을 받았다.

변호사는 거의 모든 방법으로 그들이 우리를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들이 우리에 대해 거짓말을 할 때 우리의 실명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되는) 명예훼손/명예훼손자가 없기 때문에 고소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참 귀여웠다.

트라우마

5주 동안 양성반응을 보이고 재검사를 받은 뒤 케이블 타이를 강제로 코에 찌르는 트라우마가 나를 질식하기 시작했다. 7시간, 그 다음 5시간. 고통이 압도적이다. 코뼈가 부러지는 건 순간의 느낌이지만 길게 이어지는 느낌이다. 그들은 더 이상 그 방이 정부에서 지불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검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간은 돈이었다.

인생은 이제 끝이 보이지 않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면도를 하든 안 하든 신경 안 쓰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싫어지기 시작했다. 신용카드, 임대료, 그 밖의 다른 것들의 지불을 부분적 이유로 수입 부족, 또 다른 부분적 이유로는 이동의 자유 부족 때문에 놓치기 시작했다.

끝이 보인다

음성! 5주 만에 처음으로 음성 검사결과가 나타났다!

개인 소지품을 모두 버리고 친구에게 새 옷을 가져오게 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아까 내가 병원 갈 준비를 하라고 해서 옷을 가져왔을 때가 기억나는가? 그렇다.

시간이 부족해서, 나는 버린 옷을 대신하여 내가 집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을 사기 위해 맞춤형 택배원에게 주문했다. 나는 많은 비용을 지불했고 옷이 가방 안에 봉인되어 도착했다. 오염되지 않도록 내가 떠날 때까지 열어보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바깥으로 나가는 날 나는 샤워를 하고 내 모든 물건을 표백제로 비비는 것으로 충분치 않으면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표백제를 선택했지만 왜 그 말이 더 일찍 전달되지 않았는지 약간 혼란스러웠다. 나중에 나는 나에게 원래는 첫 번째로 제시되었어야 할 옵션이었어야 할 세 번째 옵션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즉, 모든 것을 밀봉된 가방에 넣고 10일 동안 햇볕에 놓아두는 것이었다.

한 달 동안 배달해 온 물자와 음식(샴푸, 비누, 칫솔, 때수건, 과일 등)을 카운터로 모두 버리고 샤워기에 뛰어든다. 샤워를 마치고 새 옷을 입었을 때, 나는 의사들이 나를 아직 떠나게 하지 않고 내가 더 많은 옷을 살 필요가 없으며, 나중에 산 옷을 다시 쓸 수 있다고 들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어서, 오염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옷을 다시 사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의견은 간호사와 의사가 각각 다르게 지시함에 따라 나중에 다시 바뀌었다. 때로는 우리가 받은 지시사항의 모순된 논리에 상당히 답답했고, 모든 옷이 오염될 것을 우려하여 버리라는 지시와 함께 병원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나는 쓰레기통에서 샴푸와 비누를 다시 꺼내고 내가 구할 수 없는 다른 것들을 다시 주문했다.

자유와 새로운 시작

결국 나는 처음 도착한 지 6주 후에 다시 음성반응을 보였다. 나는 병원 로고가 새겨진 깨끗한 가방을 들고 구급차를 통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동네 전체의 검사를 위해서였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새로운 직업을 찾는데 몇 주를 보냈고, 면접을 볼 수 있도록 시간을 세심하게 정해서 내가 바깥으로 나갈 때마다 일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면접 과정을 시작하고 다른 도시에서 멋진 직업을 얻었다. 시작일은 정해졌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에 계약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옥으로 돌아가다

검역소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나는 나중에 양성 판정을 받은 몇몇 환자들이 퇴원했기 때문에 또 다른 검사가 필수적이라고 들었다. 다시 구급차를 탔고, 케이블타이 와사비 검사를 받고, 그리고 내 물건을 정리해서 병원에 들어갈 준비를 확실히 했다.

추가적인 트라우마

이번이 두 번째인데, 나는 납세자들이 불평하기 시작하는 것보다 두 배나 더 자주 검사를 받고 있고 병원에서는 나중에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들을 퇴원시켰다는 이유로 많은 불만을 받고 있었다. 잠도 없어졌고, 내 새 직장도 잃어버렸고, 버리고 간 모든 것을 다시 주문할 시간(2배)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자유(파트 2)

8주 후에 마침내 풀려났다. 내가 음성반응을 보여서가 아니라 정부에서 음성반응이 보인 적이 있다면 전염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 동반자와 나는 문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집에서 2주일을 보냈다.

병원 전체 청구서는 정부에서 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450만 원이었다. 법률상 의무보험이었기 때문에 내가 내고 싶어도 그 비용을 낼 수 없었다.

퇴원하는 동안 내 이름은 불려졌고 직원은 내 정보를 큰 소리로 읽어서 (전화번호, 이름, 주소 포함) 방에 있는 모든 20명의 낯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한 다음, 내 옆에 서 있거나 뒤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큰 화면에 나의 항목별 COVID 관련 청구서를 표시하고 줄 뒤로 그것을 넘기고 나서 나에게 서명을 부탁했다. 나는 내 청구서(주소, 이름, 비용 등이 표시된 상태로)가 30초 더 화면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자유롭게 집에 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30초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은 내가 화면 앞에 서서 멀어져 가기를 기다린 후 다음 사람이 같은 자리에 섰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트라우마

풀려난 뒤 내 집도, 내 재정도, 생활도, 관계도 모두 엉망이 되었다. 밖으로 나가 바깥 공기를 즐기려는 열망도 강했던 만큼 정부에 의해 강제로 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되는 두려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신을 회복한 뒤 새로운 직업을 찾고,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바깥 산책(혼자서,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며)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지만, 이 시련이 나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 주었다면, 내 자신이 아무리 주의해도 전혀 조심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부터 완전히 보호받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나의 감염으로 인해 문을 닫은 상점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상점들에 가지 않는다. 그들의 보험이 손실을 보상해 주기는 했지만, 이것은 전혀 무관한 문제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는 것을 캠프 화재 현장에서 누군가가 들을 수 있는 공포 이야기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항의하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읽었는데, 만약 그들의 나라가 한국처럼 적극적이었더라면 그들은 똑같이 느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있은 후, 비록 그들이 건강상의 문제를 겪지 않았더라도, 나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쉽게 망가지는지를(직접 그 고통을 겪어서) 알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유지하며, 비행기를 타지 말고, 무엇보다 2020년이 직간접적으로 최악의 해가 될 것을 대비해서 자기 자신의 감정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모두들 안전하게 지내고,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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