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희 기자] 교무부장으로 재직 중인 아버지로부터 내신고사 문제를 미리 입수해 시험을 치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숙명여고 쌍둥이'에게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부장판사는 12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 H양 외 1명에게 각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또 각 사회봉사 240시간을 명령했다.

소년법에 따르면 범행을 저지른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에게는 형기를 장기와 단기로 나눈 부정기형을 선고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검찰도 부정기형을 구형했지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할 경우에는 형을 나누지 않기 때문에 아직 19세 미만 미성년자인 H양 등에게 부정기형이 선고되지는 않았다.

송 부장판사는 H양 등의 아버지에게 유죄를 확정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인정되는 간접사실을 종합하면 H양 등이 이 사건 문제 유출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H양 등의 아버지에게 유죄를 확정하며 인정한 간접사실은 ▲H양 등의 교내 정기고사 성적이 이례적으로 급상승한 점 ▲전국 모의고사 성적과 학원 레벨 테스트 성적이 정기고사에 미치지 못한 점이다.

또 ▲H양 등이 정기고사 응시 전 정답 사전 유출 행동을 여러 번 한 점 ▲H양 등 아버지가 출제 서류에 접근하고 사유 없이 초과 근무를 했으며 H양 등이 정기고사 답안지를 다른 경로로 입수했을 가능성이 없는 점도 있다.

송 부장판사는 이같은 간접사실이 모두 인정된다고 봤다.

송 부장판사는 "H양 등과 비슷한 또래의 여학생들이 1년 내 성적이 급상승한 사례가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흔하게 발생하는 사례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례적 사례에 비해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모의고사가 입시에 반영 안 돼 소홀히 할 수 있다 해도 최상위권 학생이면 어느 정도 비례해 성적을 얻는 게 일반적"이라며 "H양 등의 교내 정기고사와 모의고사 성적 차이가 지나치게 많이 난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언니 H양이 시험지에 '깨알 정답'을 적은 점 ▲언니 H양이 서술형 정답 구문을 시험지에 미리 기재한 점 ▲동생 H양이 서술형 정답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미리 기재한 점이 H양 등이 문제 유출에 가담한 정황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동생 H양이 수기 메모장과 포스트잇에 2학년 1학기 전과목 정답을 미리 기재한 점 ▲H양 등이 정정 전 정답을 6건 이상 적어 틀린 점 ▲동생 H양이 물리 과목에서 풀이 과정 없이 정답을 맞힌 점도 지적했다.

송 부장판사는 "H양 등이 아버지와 공모해 위계로써 숙명여고의 학업 성적 관리 업무를 방해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다"고 판단했다.

또 "H양 등의 이 사건 범행은 대학 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시험으로 사회적 관심이 높고 그 어느 시험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치러야 할 고등학교 내부 성적 처리 절차를 1년 동안 5회에 걸쳐 위계로써 업무방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로 인해 숙명여고 학생은 공정한 경쟁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학교 시험의 업무가 방해된 것은 물론 공교육에 대한 다수의 국민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해 사안이 매우 중대하고 죄질과 범정이 상당히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H양 등이 이 사건 범행 당시는 만 15~16세였고, 현재도 소년법이 정한 소년으로 인격 형성 과정에 있다"며 "아버지가 무거운 징역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고, H양 등도 숙명여고에서 퇴학 처분됐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날 판결이 선고된 뒤에도 쌍둥이 자매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법원을 빠져나갔다. 쌍둥이 자매 측 변호인은 항소 여부에 대해 "철저히 본인 의사에 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판사가 대법원 판례를 따라야하겠지만, 도피성으로 판결한 것은 유감"이라며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의 증명을 하지 않고 대법원 판결에 숨어서 하려는 의도인 것 같아 처음부터 실망이었다"고 말했다.

쌍둥이 자매는 숙명여고에 재학 중이던 2017년 2학기부터 2019년 1학기까지 교무부장이던 아버지 A씨로부터 시험지 및 답안지를 시험 전 미리 받는 등 숙명여고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애초 검찰은 아버지 A씨를 지난 2018년 11월 구속기소하면서 쌍둥이 자매는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 소년보호 사건으로 송치했다.

하지만 심리를 맡은 서울가정법원 소년3단독 윤미림 판사는 형사 재판 진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사건을 돌려보냈고, 검찰은 쌍둥이 자매를 불구속 기소했다.

쌍둥이 자매 측은 형사 재판 진행 과정에서 "국민의 눈에 맞춰 재판받을 기회를 받았으면 좋겠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했지만, 송 부장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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